본문 : 요한복음 16장 24절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다른 내용은 몰라도 절대로 빼먹지 않고 기도 속에 꼭 포함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기도의 내용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도 생략하면 정말 큰 일 날 것처럼 여깁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이라는 구절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대표로 기도를 드리고 나서 이 구절, 특히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면 아마 그 사람은 이단은 아닐지라도, 굉장히 이상한 신앙을 가진 것으로 오해받을 것이고, 사람들의 비난을 면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구절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 이름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를 드리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덧붙여야 하는 이유는 그 말을 덧붙여야만 기도가 기도로 완성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야 효험있는 기도가 되거나 그 말을 덧붙이지 않으면 불경한 기도가 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형식적으로는 “내 이름으로 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명령은 명령이라기 보다는 “이제부터는 내 이름으로 기도해도 좋다. 이제부터는 너희들에게 내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복과 특권을 준다”는 은혜로운 허락입니다. 마치 제가 제 아들에게 장난감을 선물로 주면서 “너 이거 가져!”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명령같지만 명령이 아니라 은혜로운 허락이죠. 우리가 기도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덧붙일 때마다 우리는 “아,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은혜구나. 특권이구나. 특별한 선물이구나.”라고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는 항상 감사로 끝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고, 또 우리가 그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왜 그렇게 큰 은혜가 되는 것일까요?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로,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들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는 온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는 그런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거리낌 없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거리낌 없는 관계를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저런 죄를 짓게 되고 바로 그 죄는 끊임없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아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가로막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중보자되심을 의지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드릴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통행증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자격이 없지만,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통행증을 믿고 의지하면 언제든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왕되신 하나님, 아버지되신 하나님 앞에 가서 우리의 필요를 아뢸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이름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통행증일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 창고의 문을 열고 무엇이든 청구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이라는 통행증에 하늘나라 창고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번호까지 입력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담대함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 하지 않고 좋은 것을 달라고 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너무 너무 사랑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 믿음의 기둥같은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로마서 8장 32절의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도 이 말씀에 여러분의 믿음을 합하게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축복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얼마나 풍성한 말씀인지, 얼마나 넉넉한 말씀인지, 또 얼마나 확실한 말씀인지... 생각하고 묵상할 때마다 저를 굳건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논리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이신,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서 죽도록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까워하실 것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서 주실 때 그 속에 그 아들보다 귀하지 않은 모든 것을 담아서 함께 주셨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시간에 묶여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주어지는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한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면서 그 뒤에 줄줄이 사탕으로 달아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이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주셨다는 말씀의 의미 속에는 이렇게 놀라운 은혜와 약속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를 드릴 때,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풍성하고 힘있어 질까요? 게다가 얼마나 유익하고 능력있어 질까요? 그러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우리를 넉넉하게 하고 자유롭게 하며 하나님께서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들이 주어지는 복된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입니다.
주님은 이 구절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나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우리가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사실 주변에는 우리에게 기쁨을 더해 주는 것보다 기쁨을 빼앗아가려는 것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더해주는 기쁨이라고 해봐야 일시적이고 허무한 기쁨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려면 땅이 주는 기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마 시간이 흐를 수록 우리의 기쁨은 줄어들기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에서 오는 기쁨을 꼭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 기쁨으로 이 세상을 이기며 힘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어디서 옵니까?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데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아버지를 향해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권면합니다. 전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으셨더라도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시고, 이미 허락된 풍성한 은혜를 확신하며 당당하게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런 믿음으로 계속해서 기도한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는 기쁨으로 충만한 삶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기뻐하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결코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우리들의 기쁨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저와 여러분들을 기뻐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특권입니다. 자신의 기쁨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를 통해 받는 자의 기쁨이 충만하여 믿음을 지키며 세상을 이기는 능력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