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0633-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특새5).pdf
본문 : 마태복음 6장 33절
어떤 사람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됩니다. 그가 가장 관심있게 그리고 가장 반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의 주된 관심사이며 그래서 그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는 기도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종의 ‘말’이고 신앙에 속한 모든 행동들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한 성도가 아무도 듣는 이 없을 때 드리는 기도만큼 그 사람의 삶의 모습과 신앙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우리 삶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기도는 동시에 우리의 삶의 길을 지시하는 안내등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기도가 삶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하고 싶은 기도보다는 성도이기 때문에 꼭 해야할 기도를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도다워져 갈 수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내가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드리는 기도, 처음에는 그런 기도들이 별로 절실하지도 않고 무덤덤하지만 계속 기도를 하다보면 그런 기도제목들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인 기도보다도 더 절실하고 중요한 기도제목이 됩니다. 그리고 그 기도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바뀝니다. 이것이 놀라운 기도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 그런 계획을 세워놓으시고 말입니다. 처음에 아담과 하와는 그런 삶에 충실했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한 이후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에 대한 감을 잃어버렸고, 더욱이 이전의 풍성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과 하늘나라를 위해서 살기보다는 자기 유익과 땅을 위해서 살아가는 그런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원래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셨던 삶의 원리까지 깨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채워주시는 그런 풍성한 삶의 원리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조차 그런 삶의 방식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합니다. 아직도 그런 삶의 원리가 유효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되어도 그리고,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어도 여전히 예전의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그냥 자신의 삶을 자기 자신이 책임지려고 하고, 자기 자신이 채우려고 하는 예전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근심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이렇게 사는 것은 예전의 방식을 계속해서 따르는 것이니 별로 불편하거나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계속해서 삶과 신앙이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때로는 신앙이 짐이 되고 때로는 삶이 짐이 되는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들로 충만한 삶을 사는 복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저도 몇 년전까지만 해도 이런 삶이 성도에게 허락된 삶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항상 삶에 대한 근심과 걱정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정상적인 성도의 삶인 줄 알았습니다. 부끄럽지만 목사이면서도 말이죠. 그런 상태에서 설교를 하니 성도들과 공감하기는 좋았습니다. 저나 성도들이나 먹고 사는 문제에 붙들려 있는 똑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 때 저는 오늘 말씀이 포함된 주님의 말씀을 읽을 때면 ‘그저 그렇다는 것이지 그게 정말로 가능할까? 저건 이상을 말하는 것이고, 위로를 주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지 현실은 아니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읽고 또 해석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알지도 못하면서 설교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도의 삶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지 압니다. 내가 내 삶의 모든 짐을 계속해서 지고 살아가는 것, 그렇게 내가 내 삶의 모든 필요들을 채우고 책임지느라고 땅만 쳐다보고 사는 것, 그러면서도 근심과 걱정을 벗어나지 못하며 사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놓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그 모든 것, 그러니까 내가 먹고 쓰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저 더해 주시는 것”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삶이 정말로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삶이 꿈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저에게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그걸 알고나니 이제 저는 더 이상 먹고 사는 문제로 미리부터 걱정하고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득 문득 부족함을 느낄 때면 잠깐 잠깐은 예전의 마음으로 되돌아 갈 때도 있지만 정말 잠시 뿐입니다. 잠깐의 시험은 있어도 예전과 같은 넘어짐은 없어졌습니다.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오래 자리잡을 공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느냐 하면 바로 이러한 삶의 방식이 진짜로 가능하다는 것을 믿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정확하게는 믿어지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사실 삶이 변한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정말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 믿어지자 제 마음 속에서 미래에 대한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살아가려고 애쓰기 시작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면 정말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더해 주실까요? 삶의 필요를 채워주실까요? 그렇습니다. 성도가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줄로 믿고 그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삶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적어도 남지는 않아도 크게 부족하지 않을 만큼은 분명히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억지로 안되듯이 이런 은혜를 경험하는 일도 억지로 안됩니다. 믿음도 은혜도 결국 하나님이 주셔야만 받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할까요? 저는 두 가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그런 믿음,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면 정말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지금까지 드리던 기도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필요중심의 기도, 땅 중심의 기도를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 중심의 기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 기도가 내 기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가 되도록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기도를, 우리가 구하는 것을 그렇게 만들어 간다면 그 기도가 우리를 바꾸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게 할 것이고, 그러면 진짜로 우리의 삶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그런 복된 삶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꿀 수 없고,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더할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바꿔야 하고 그 기도가 우리를 바꾸고 그 기도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기도가 우리를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약속된 삶으로 인도하게 해야 합니다. 이제 이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분명히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 기도가 우리의 삶을 바꾸고 우리가 누리는 삶의 넉넉함을 바꿀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서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