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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2.25. 새벽예배 -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요한복음 84)

요1244to50 -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요한8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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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12장 44-50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조금은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느낌이 드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냥 읽어서는 도저히 이 말씀이 왜 여기에 등장하는지 알 수 없고 실제로 본문 자체를 살펴보아도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런 느낌을 주는 이유는 이 부분이 요한복음 1장부터 12장까지의 요약이자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따로 떼어서 읽으면 안되는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요한복음의 가장 큰 흐름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을 믿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노력과 또 그런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믿음’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이 밝히고 있듯이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 자체가 요한복음을 읽고서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제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 그리고 영광받으시는 일을 기록하기 전에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요약해 줍니다. 


오늘 본문 속에는 이제까지 요한복음이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여러가지 행동들이 모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결과가 영생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외쳐”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시면서 안타깝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오늘 말씀을 그렇게 비중있게 듣고 우리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주님은 믿음은 예수님을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말씀을 합해 보면 믿음은 빛되신 주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을 통해 자신을 보고 세상을 보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눈을 뜨게된 소경처럼 말입니다. 소경은 처음에는 육신의 눈과 영혼의 눈이 다 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멀었던 눈들을 다 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다 안다고 했던 바리새인들은 알지 못하는 것,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았던 것을 알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 앞에서 자신이 알고 또 확신하는 것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이라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습니다. 결코 다시 예전의 어둠으로 되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참된 믿음은 빛되신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보고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다시는 어둠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아는 것과 믿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고 결코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12장 42절에 나오는 출교가 무서워서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해서 말도 꺼내지 못했던 관리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서 명확한 사람입니다. 담대하게 믿는 바를 누구 앞에서나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너무 명확하게 보니까 보이는 것을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을 부인하고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둘째, 믿음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양 우리의 비유에 나오는 양들처럼 말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누가 자신의 목자인지 구분합니다. 그 목소리, 그 말씀을 듣고서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과 영혼의 목자인 줄 알고 그 목소리를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자신의 목자로, 또 주인으로 받아들입니다. 목자를 온전히 신뢰하고 목자에게 자신의 필요와 안전까지 모든 것을 다 맡깁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온전히 의지합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풍성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아 들어오며 나오며 꼴을 얻고, 그러면서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 있는 사람은 만족한 삶을 살아갑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부르며 살아갑니다. 


세째,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때로 그 말씀이 받아들이기 힘들고 또 순종하기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서 그 길을 가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영생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 올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진리가 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칼의 역할은 나누는 것입니다. 칼날을 기준으로 둘로 나누는 것, 그것이 칼의 역할입니다. 원래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의 도구가 아닙니다. 구원의 도구이고 우리에게 영생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 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생명과 영생을 주지만 정반대로 거부하고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생명과 영생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입니다.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생길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영생이 밝은 부분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어둠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믿음의 여러가지 측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다이아몬드는 하나이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서 그 광채가 다른 것처럼 믿음도 하나이지만 보여지는 모습은 여러가지로 나타납니다. 우리에게도 믿음이라는 다이아몬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이아몬드는 어떤 면은 특별히 더 빛나지만 또 어떤 면은 덜 빛나게 되어있습니다.  항상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 말씀에 우리의 믿음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특히 어느 면이 약하게 빛나고 있는지 말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이라는 빛을 통해 나를 보고, 세상을 보고, 또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명확하게 보면서 다시는 어둠으로 되돌아가 가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목자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따라 인도 받는 것이며 또 그 말씀이 영생임을 확실히 믿고 거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약한 부분은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은 어떤 쪽에서 보든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같은 믿음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였으면 합니다. 약한 부분을 강하게 해 달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 더 온전한 믿음, 더 온전히 빛을 발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