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2.26. 새벽예배 -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한복음 85)

요1301to11 - 끝가지 사랑하시니라(요한85).pdf


20130226D (#1).mp3.zip




본문 : 요한복음 13장 1-11절


성경에는 정말 은혜로운 구절들이 많고,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구절이 다르지만 저는 성경에서 가장 은혜로운 구절 하나를 고르라면 13장 1절을 고를 것입니다. “유월전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이제 자신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물론 그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참 쉽지 않은 길, 고통스러운 길, 사실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께서도 피하고 싶어하셨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가까와 올 때, 주님께서는 고민을 하고 애통해 하거나 혹은 다른 일을 하면서 그 시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 마지막 시간들을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일에 더 집중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내신 마지막 시간들은 다름 아니라 최선의 사랑, 그리고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그런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 시간이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주님의 사람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너에게 마지막 3일이 남아있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진지하게 묻습니다.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실제로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떤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하고 정직하게 대답해 본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잘 깨닫지 못했던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준비하시는 마지막 시간 동안 예수님께서 애쓰셨던 일 또한 예수님께서 가장 소중한 일로 생각하셨던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이 세상이 헤아일 수 없이 크고 고통스러운 사랑을 향해 가면서도 그 분은 온통 자신의 남겨진 삶을 자기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만 쏟아부으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끝까지 말입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요! 얼마나 풍성한지요! 그래서 이 사랑을 영광스러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바로 이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이 사랑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순간에도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베푸시는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묵상하고 또 묵상해야 합니다. 유한한 인간에게 끝은 언제나 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는 끝이 끝이 아닙니다. 두 분은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분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무한한 사랑입니다. 양도 그렇고 길이도 그렇습니다. 깊이고 그렇고 넓이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사랑은 아무리 진하고 깊어도 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진하고 깊은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끝이 있습니다. 어떤 책에서 보니 아들이 죄를 짓고 교도소로 가면 1범, 2범까지는 면회를 오지만 3범이 되면 뜸해지고, 4범이 되면 어머니들도 거의 교도소를 찾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을 어머니의 사랑이 끝난 완전한 증거라고 볼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아들이 어머니의 사랑받기를 포기하지 않아도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든지 먼저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는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가 벌써 가룟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유다는 사실 그저 생각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우리라면 어떻게 할까요? 3년넘게 동고동락한 제자가 자신을 팔아넘기려고 결심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사람취급도 하지 않겠죠. 멱살이라도 잡고 싸우려 들고 공동체에서 완전히 쫓아내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유다와 유월절 식사를 함께 하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실 때 유다의 발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유다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창피를 주시지 않고 그저 넌지시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라는 말로 그 사실을 유다에게만 알려주셨을 뿐입니다.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시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자신을 팔려는 결심을 굳힌 악하디 악한 제자였지만 주님은 유다를 미워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다함없는 사랑으로 그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포기하실까요?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의 부족함 때문에 우리를 포기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십니다. 우리 스스로 주님을 완전히 떠나고 주님의 사랑받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요즘 저는 저 자신의 부족함과 미숙함 때문에 스스로 많이 부끄럽고 힘들고 또 자신에게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습니다. 오래전 20대, 30대 때까지는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다시 힘을 냅니다.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지만 그래도 기도하면서 다시 소망을 회복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바다같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으며, 제가 그 사랑을 받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 사랑의 능력으로 더 온전해 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더 견고해 질 것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부족함이 아무리 큰 들, 저의 미숙함이 아무리 깊은 들 바다같은 사랑으로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이 저의 그 부족함을 마다하시겠고, 그 미숙함을 품어주지 못하시겠습니까? 당신을 팔려는 유다의 더러운 발을 손수 씻겨주신 주님께서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아무리 부족하고 미숙해도 다시 힘을 냅니다. 끊임없이 소망을 품습니다. 제가 주님의 사랑받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분도 저를 놓지 않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더 온전하게 만들어 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부족합니다. 참 미숙하기도 합니다. 스스로도 스스로를 사랑하기 힘들 때가 있을 정도로 그렇습니다. 안그런 척하지만 우리 자신은 항상 스스로에게 불만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끝없는 사랑으로 끝없이 사랑하십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또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그것을 기준으로 여러분을 보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시고, 그 사랑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사랑 안에 머무십시오. 그 사랑을 더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그 분이 언제나 우리를 씻겨 주실 것입니다. 다시 거룩하게 해 주시고, 더 온전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아무리 더러워도, 아무리 연약해도 주님이 감당해 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이 든든한 사랑,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 안에서 빚어져 가고  다듬어져 가며 더 견고해져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