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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3.07. 새벽예배 -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92)

요1401to03 -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9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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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요한복음 14장 01-03절

우리 주님은 사람의 중심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 마음 속에 어떤 것이 있는지 다 아십니다. 우리 속에 어떤 불안이 있는지, 어떤 두려움이 있는지, 어떤 실망이 있는지, 어떤 연약함과 아픔이 있는지 때로는 우리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까지 다 아십니다. 또 우리 안에 어떤 생각들이 있는지 다 아십니다. 어떤 고민과 갈등이 있는지, 또 무엇으로 유혹을 받고 있는지 속속들이 다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이든지 주저없이, 그리고 거리낌 없이 다 주님께로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분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해결책까지 다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불안해 하고 근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자꾸 주님이 떠나신다고 하시니, 그리고 지금은 나를 따라올 수 없다고 하시니 그것 때문에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서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근심이 더 크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베드로가 그렇게 무너져 버린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를 걱정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대화를 끝내신 후에 제자들 모두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것이 제자들의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근심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내려주신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처방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는 말씀은 그 느낌을 잘 살려서 다시 말씀드리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을 계속 믿고 또 나를 계속 믿으라”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 이것이 제자들의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근심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내리신 예수님의 처방이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불안함과 근심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제는 제자들을 떠나신다는 것과 또 자신들도 베드로 처럼 예수님을 배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제자들의 불안함과 근심, 그리고 두려움의 진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의 이유가 바로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다시 되돌아온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진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있는 그 분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한 든든한 중보자로 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제자들의 불안과 근심의 문제는 바로 이 믿음, 이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믿음’이라는 처방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두렵게 만드는 이런 저런 일들을 만납니다. 물론 그런 문제들은 작지 않은 문제들임에 분명하고 우리의 안정적인 삶을 방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안과 두려움의 문제, 근심의 문제의 해답은 현실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 문제의 해답은 믿음에 있습니다. 변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하나님, 그리고 그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영원한 중보자로 서 계신 주님을 신뢰할 수 있다면 불안과 두려움의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중요한 진리, 이 은혜롭고 능력있는 진리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 좋은 방법, 이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어도 계속해서 현실만 보고 자신의 부족만 바라볼 뿐, 믿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투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답을 아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정말 안타까울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근심과 불안의 문제가 다름 아닌 하나님과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신 후에 이렇게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먼저 가서 우리 집에 방들 좀 치워놓고 다시 올께. 그 다음에 우리 집에서 함께 살자.”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제자들을 떠나는 것은 그저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늘 아버지의 집에 제자들이 거하게 될 거처를 마련하려고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대저택에 올 손님을 위해서 먼저 자기 집으로 가서 방들을 준비하는 주인처럼 말입니다. 


물론 주님의 이 말은 마지막 날에, 혹은 개인적으로 믿음을 지키다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제자들에게 일어나게 될 일들을 말씀하신 것이지만 이 말씀은 그 일을 마치 오늘 내일쯤 일어날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너무나도 확실한 일, 마치 손님을 잠시 세워두고 방을 치우러 들어가는 일처럼 그 뒤의 결과가 너무도 당연한 일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나도 들어갈 곳이 있을까? 내 방도 있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항상 넘칩니다. 항상 남습니다. 아무리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여도 여전히 거할 곳이 많습니다. 혹시 천국이 좁을까, 내가 갈 공간이 있을까, 내 방이 있을까 걱정하시는 분들은 안계시죠? 성도 여러분, 그 나라는 넉넉한 나라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의 주인이셨으면서도 태어날 방이 없어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고, 하늘나라를 전파하시는 동안에도 머리둘 곳 조차 없이 살아가셨지만 하늘나라는 우리가 거할 거처가 언제나 넉넉한 곳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맞아들이시는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사람들에게 넉넉한 거처를 제공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제자들처럼 지금 우리들도 주님과 헤어져 있습니다. 물론 우리 속에 성령 하나님께서 계시고 항상 함께 거하고 계시지만 우리 예수님과는 헤어져 있습니다. 지금 주님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네. 우리의 거처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영원히 거할 영원히 복된 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우리 주님이 승천하신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고 계신 일일 거라는 발칙한 상상이 듭니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섬기셨던 주님이 그 나라에서라고 섬기지 않으실리가 없습니다. 오고 오는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하늘나라로 초대되고 있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도 주님은 여전히 가장 많이 섬기셔서 가장 높이 계신 분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게 될 것이 확실하다면, 정말 확실하기만 하다면 사실 그 때가 빨리 오거나 나중에 오거나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늘나라가 우리를 위해서 준비되고 있고, 다 준비되면 우리 주님이 우리를 영접하러 오실 것이 분명하기만 하다면 그것이 우리 살아생전에 일어날 일이든, 우리의 사후에 일어나게 될 일이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그렇게 되고야 말 일이고, 그러면 우리는 그 때부터는 영원히 우리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준비해 놓으신 영원한 거처에서 지극히 복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다시 오셔서 우리를 준비된 거처로 인도하실 것이고, 그러면 그 때부터는 영원히 주님 없이 살아가지 않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으니 우리는 그것만 기다리면 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꼭 오실 것이라는 믿음, 오시면 우리를 반드시 하늘나라로, 그 찬란한 영광의 나라로 맞아들여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거하실 것이라는 그 믿음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그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이 확실하면 근심을 이기고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믿음에 반드시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치 조금 있다가 돌아올 것을 이야기하듯이 그렇게 내가 너희가 영원히 거할 곳을 준비하러 갔다가 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또 예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우리를 영접할 우리를 위한 영원한 거처를 준비하고 계심을, 결코 부족하지 않을 넉넉한 거처를 준비하고 계심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이 땅의 근심과 두려움을 이겨내시고, 또 그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우리 주님이 허락하신 이 복되고 넉넉한 약속을 믿으며 근심과 두려움을 이기는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 요한복음 14장 01-03절




우리 주님은 사람의 중심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 마음 속에 어떤 것이 있는지 다 아십니다. 우리 속에 어떤 불안이 있는지, 어떤 두려움이 있는지, 어떤 실망이 있는지, 어떤 연약함과 아픔이 있는지 때로는 우리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까지 다 아십니다. 또 우리 안에 어떤 생각들이 있는지 다 아십니다. 어떤 고민과 갈등이 있는지, 또 무엇으로 유혹을 받고 있는지 속속들이 다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이든지 주저없이, 그리고 거리낌 없이 다 주님께로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분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해결책까지 다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불안해 하고 근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자꾸 주님이 떠나신다고 하시니, 그리고 지금은 나를 따라올 수 없다고 하시니 그것 때문에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서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근심이 더 크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베드로가 그렇게 무너져 버린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를 걱정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대화를 끝내신 후에 제자들 모두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것이 제자들의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근심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내려주신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처방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는 말씀은 그 느낌을 잘 살려서 다시 말씀드리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을 계속 믿고 또 나를 계속 믿으라”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 이것이 제자들의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근심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내리신 예수님의 처방이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불안함과 근심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제는 제자들을 떠나신다는 것과 또 자신들도 베드로 처럼 예수님을 배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제자들의 불안함과 근심, 그리고 두려움의 진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의 이유가 바로 제자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다시 되돌아온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진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있는 그 분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한 든든한 중보자로 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제자들의 불안과 근심의 문제는 바로 이 믿음, 이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믿음’이라는 처방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두렵게 만드는 이런 저런 일들을 만납니다. 물론 그런 문제들은 작지 않은 문제들임에 분명하고 우리의 안정적인 삶을 방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안과 두려움의 문제, 근심의 문제의 해답은 현실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 문제의 해답은 믿음에 있습니다. 변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하나님, 그리고 그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영원한 중보자로 서 계신 주님을 신뢰할 수 있다면 불안과 두려움의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 중요한 진리, 이 은혜롭고 능력있는 진리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 좋은 방법, 이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어도 계속해서 현실만 보고 자신의 부족만 바라볼 뿐, 믿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투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답을 아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정말 안타까울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근심과 불안의 문제가 다름 아닌 하나님과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신 후에 이렇게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먼저 가서 우리 집에 방들 좀 치워놓고 다시 올께. 그 다음에 우리 집에서 함께 살자.”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제자들을 떠나는 것은 그저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늘 아버지의 집에 제자들이 거하게 될 거처를 마련하려고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대저택에 올 손님을 위해서 먼저 자기 집으로 가서 방들을 준비하는 주인처럼 말입니다. 


물론 주님의 이 말은 마지막 날에, 혹은 개인적으로 믿음을 지키다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제자들에게 일어나게 될 일들을 말씀하신 것이지만 이 말씀은 그 일을 마치 오늘 내일쯤 일어날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너무나도 확실한 일, 마치 손님을 잠시 세워두고 방을 치우러 들어가는 일처럼 그 뒤의 결과가 너무도 당연한 일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나도 들어갈 곳이 있을까? 내 방도 있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항상 넘칩니다. 항상 남습니다. 아무리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여도 여전히 거할 곳이 많습니다. 혹시 천국이 좁을까, 내가 갈 공간이 있을까, 내 방이 있을까 걱정하시는 분들은 안계시죠? 성도 여러분, 그 나라는 넉넉한 나라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의 주인이셨으면서도 태어날 방이 없어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고, 하늘나라를 전파하시는 동안에도 머리둘 곳 조차 없이 살아가셨지만 하늘나라는 우리가 거할 거처가 언제나 넉넉한 곳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맞아들이시는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사람들에게 넉넉한 거처를 제공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제자들처럼 지금 우리들도 주님과 헤어져 있습니다. 물론 우리 속에 성령 하나님께서 계시고 항상 함께 거하고 계시지만 우리 예수님과는 헤어져 있습니다. 지금 주님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네. 우리의 거처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영원히 거할 영원히 복된 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우리 주님이 승천하신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고 계신 일일 거라는 발칙한 상상이 듭니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섬기셨던 주님이 그 나라에서라고 섬기지 않으실리가 없습니다. 오고 오는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하늘나라로 초대되고 있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도 주님은 여전히 가장 많이 섬기셔서 가장 높이 계신 분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게 될 것이 확실하다면, 정말 확실하기만 하다면 사실 그 때가 빨리 오거나 나중에 오거나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늘나라가 우리를 위해서 준비되고 있고, 다 준비되면 우리 주님이 우리를 영접하러 오실 것이 분명하기만 하다면 그것이 우리 살아생전에 일어날 일이든, 우리의 사후에 일어나게 될 일이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그렇게 되고야 말 일이고, 그러면 우리는 그 때부터는 영원히 우리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준비해 놓으신 영원한 거처에서 지극히 복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다시 오셔서 우리를 준비된 거처로 인도하실 것이고, 그러면 그 때부터는 영원히 주님 없이 살아가지 않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으니 우리는 그것만 기다리면 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꼭 오실 것이라는 믿음, 오시면 우리를 반드시 하늘나라로, 그 찬란한 영광의 나라로 맞아들여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거하실 것이라는 그 믿음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그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이 확실하면 근심을 이기고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믿음에 반드시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치 조금 있다가 돌아올 것을 이야기하듯이 그렇게 내가 너희가 영원히 거할 곳을 준비하러 갔다가 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또 예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우리를 영접할 우리를 위한 영원한 거처를 준비하고 계심을, 결코 부족하지 않을 넉넉한 거처를 준비하고 계심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이 땅의 근심과 두려움을 이겨내시고, 또 그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우리 주님이 허락하신 이 복되고 넉넉한 약속을 믿으며 근심과 두려움을 이기는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