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331to35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요한90).pdf
본문 : 요한복음 13장 31-35절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마지막 사랑의 권면과 호소까지 저버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기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빵과 함께 자기 몸을 찟어주시는 가장 큰 사랑과 유혹을 떨쳐버리라는 가장 엄중한 마지막 경고를 무시하고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유다가 나가버린 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유다가 밖으로 나가버린 일은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고, 완전히 선을 넘어가버린 일이 되게 했습니다. 마치 우주선을 발사할 때,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에게 있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셨던 제자 유다의 손에 팔아넘겨지는 일은 십자가를 지시는 일보다 심정적으로는 더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바로 그 일이 자신에게 영광이 되고 그래서 하나님에게도 영광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악한 일, 그 슬픈 일이 이 세상에 구원을 가지고 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가장 큰 계획을 성취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 되었으며 동시에 그 일을 이루신 예수님에게도 영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인간이 행한 가장 파렴치하고 도저히 그냥 참아 넘길 수 없는 악한 일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과정의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악을 선케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탁월한 예가 바로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더 이상 악할 수 없을만큼 악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인간의 구원을 위한 가장 강력한 능력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가룟 유다의 가장 악한 배신을 그 일의 가장 결정적인 분수령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 모든 악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그 모든 악한 일들을 그렇게 바꾸어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 그리고 선하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도 얼마든지 이렇게 일하실 수 있고, 또 지금도 이렇게 일하고 계심을 믿을 수 있고 또 믿어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믿음의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하나님 지혜와 능력이 어떻게 악을 선케 만드는지,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는지를 가장 놀랍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묵상하고 또 십자가를 믿는 일은 단순히 죄 용서의 능력 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악한 일들 때문에 우리 삶에 고통과 괴로움이 찾아올 때 우리가 인내할 수 있게 하고 또 넉넉히 이기게 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고통과 아픔이 찾아올 때, 십자가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그 십자가를 하나님과 예수님의 가장 큰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셨던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자들아!” 주님은 이제 남은 열 한 명의 제자들을 말할 수 없는 깊은 애정을 담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잠시 제자들을 떠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을 지금은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이후에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새 계명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는 13장을 살펴보는 내내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참으로 놀라운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바로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 바로 이런 종류의 사랑을 흉내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과 아주 똑같이 사랑할 수는 없더라도, 그렇게 사랑에 인내를 더해서 포기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에 신실함을 더해서 신실하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사랑’, ‘소망’, ‘기쁨’, ‘만족’같은 단어들을 들으면 자꾸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의미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어가 같다고 뜻이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만 해도 그렇습니다. 성도들도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꾸 친절하고 호의적인 감정이나 태도를 생각합니다. 사랑의 감상적인 측면을 더 많이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언약에 뿌리를 내린 사랑입니다. 왜 우리 주님의 사랑이 그렇게 오래참는 사랑이고 신실한 사랑이며 포기할 줄 모르는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일까요? 물론 그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그렇게 끈질긴 진짜 이유는 그 사랑이 언약에 묶인 사랑, 언약에 뿌리내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깨뜨리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사랑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 포기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 때문에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하고 낭비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의 사랑에는 감정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에는 하나님의 모든 의지와 신실함이 실려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죽음보다도 강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 뿐만 아니라 실은 예수를 믿는 우리들 사이에도 이런 언약, 깨지지 말아야 할 언약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몸된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한 언약을 통해 한 몸으로 묶인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향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신실하신 사랑, 언약에 묶인 사랑을 흉내내면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일에 실패하는 이유들이 많이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자꾸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사랑하는데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들 중 하나가 성도들 사이의 사랑도 감정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 사이, 성도들 사이의 사랑은 감정이기 이전에 언약입니다. 아주 강한 약속입니다. 약속이 무엇입니까? 약속은 좋을 때만 지키고 그렇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약속은 우리의 감정이 어떻든지 지켜야만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사랑은 감정적인 측면보다 의지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성경이, 그리고 우리 주님이 우리를 향해서 ‘서로 사랑하라’라고 명령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약속이기 때문에 언약이기 때문에 지키여야만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사랑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사랑,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사랑과는 전혀 종류가 다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유다를 끝까지 인내하시고, 또 결국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을 향한 한량없는 은혜이기도 했지만 실은 우리를 위한 본이기도 했습니다. 언약적인 사랑이란, 책임을 지는 사랑이란, 주님처럼 사랑하는 온전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그런 본이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세상사람들의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 주님이 본을 보여주신, 그 본을 흉내내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로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방법은 이런 사랑, 우리 주님의 사랑을 닮은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증거가 되어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고, 그래서 우리를 통해, 성도들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또 다시 오실 주님을 생각하면서 해야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의지하는 일과 서로 주님을 닮은 신실한 사랑, 언약에 뿌리내신 오래 참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고 또 우리가 누구인지를 가장 아름답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악을 선케 만드시는 지혜와 능력의 주님을 신뢰하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일에 헌신함으로써 믿음의 능력과 온전한 사랑가운데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주님을 닮은 든든하고 향기로운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