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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2.04. 새벽예배 -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한복음 89)

요1321to30 -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한8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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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요한복음 13장 21-30절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궁금해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이다, 궁합니다 해서 헛돈 들여가며 자신의 미래를 알려고 하며, 점술가가 던진 몇 마디 말에 일희일비합니다. 또 말도 안되는 그들이 내려 준 처방을 그대로 따라합니다. 예수믿는 사람들도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예언기도를 해 준다고 하면, 쫓아가서 기도해 달라고 하고, 그가 해 주는 말이 마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가진 계획인양 생각하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거기다 맞추어 갑니다. 그러나, 자기 미래를 아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미래를 알게 되면 좋을 것 같지만, 먼저 피하고 준비하며 살 것 같지만, 미래를 아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미래를 모두 안다면 그가 행복할 것 같습니까? 미래의 일이 좋은 일이라면 기대하며 살겠지만, 지극히 절망적인 미래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앞으로 자신에게 어떻게 대할 것을 안다면, 그 사람과 관계를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항상 좋은 게 아닌데, 지금은 나에게 진심으로 선대하지만, 나중에 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나를 버릴 것이나, 혹은 나를 배반할 것을 안다면 그 사람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미래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다 알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아주 뒤죽 박죽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아니 아예 살지 못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자신의 미래를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가장 큰 은총들 중의 하나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알면서도, 그리고 그 미래가 결코 달콤한 미래가 아님을 잘 아시면서도, 참으로 향기롭고 조화로운 삶은 살아간 분이 계신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확실히 아셨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얼마나 처절할 것과, 또 그렇게 처절한 죽음을 죽도록 내어 줄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삼 년 동안이나 자신을 따라다닌 제자 중의 한 명인 가룟 유다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계속해서 향기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그만두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마지막 시간을 제자들과 보내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면서도 그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으시고,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는 말로 넌지시 그리고 안타깝게 경고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요? 아마도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슬프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러한 마음을 먹은 유다를 불쌍하고 측은하게 여기셨습니다. 어떻게든 그가 그 길을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애쓰셨습니다. 그래서, 또 한 번 유다가 그러한 죄를 짓지 않도록 넌지시 경고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속에서 죄의 소원과 욕망을 볼 때, 그것을 더러워 합니다. 자기 속에도 그런 마음이 있지만 그 사람을 불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죄와 상관이 없고 순결한 우리 주님은 연약하여 마음에 죄의 소원을 품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우리가 범죄하는 것을 피하게 하시기 위해서 항상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달해 주십니다. 때로는 양심에 찔림이나 갈등을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주변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죄의 유혹을 이기라고, 죄에 빠지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이러한 주님의 목소리를 모두 외면하고 모른 채 할 때입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양심에 경고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다면 치명적인 죄에 빠지는 일은 많이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거듭난 양심에 전해지는 주님의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이 두 가지에 실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많은 죄악들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고를 듣고 제자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무슨 생각을 하며 서로를 향해서 어떤 마음을 품었을까요? 나만 아니면 되는데, 제자들은 나는 아니니까 저 사람인가 하고 서로를 향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것입니다. 아마 친한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저 사람들 중에 있을꺼야, 이 사람들 속에 있을거야 하고 이야기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다가 문득 생각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들 속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거나 설교를 들을 때 말입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가 그 말씀의 경고를 들을만한 상태가 아니라면 잘 간직해 두었다가 나중의 교훈으로 삼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 종종 나에게 직접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면, 그런 상태에 있는 다른 사람을 머리에 떠올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물론 그 말씀이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자꾸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적용하려 할 때에 우리는 그를 정죄하게 되기쉽고,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제자들처럼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나아가서 그를 업신여기게 됩니다. 만약 한 교회 안에 있으면서, 한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면서 서로가 이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항상 그 말씀을 거울 삼아서 내 속 사람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당장 드러나는 죄가 없더라도, 내 마음 속에 그런 죄악된 마음은 없는지, 그런 죄악의 그림자는 없는지 그 말씀에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우리에게 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은 오히려 우리에게 독이 되기가 더 쉽습니다. 그 옛날 제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 다음에 가룟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극단의 조치를 취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자기가 먹은 악한 마음이나 계획을 들키면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는 힘듭니다. 게다가 주님은 떡을 떼어주시며 그렇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그게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복음서들을 보면 주님은 그 유월절 식사 중에 분명히 “이 떡은 너희들을 위해 주는 나의 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떡을 떼어주시는 주님의 모습, 그것은 주님께서 몸을 주셔서 유다를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그래도 그렇게 하겠느냐? 제발 하지 말아라”라고 주님과 유다만 아는 언어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룟 유다가 그 말씀을 듣고 곧 나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밤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자신을 향한 주님의 안타까운 마음과 경고를 무시하고 나갔을 때, 그의 영혼에는 모든 빛이 사라진 밤이 찾아온 것입니다. 


영혼의 어둠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도 어둠은 찾아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나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에 합당한 응답을 보이지 않고 고집을 피우며 자기가 하려고 하는 일을 하려고 할 때, 우리 영혼에는 어두운 밤이 찾아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흙같이 어두운 밤 말입니다. 우리 마음의 상태가 여기까지 이르면 우리 영혼은 어두워져서 분별력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 고집이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독극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분별력을 마비시켜 우리를 어두운 곳으로 내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어두운 곳으로 내몰리게 되면, 우리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일인지 조차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됩니다. 결국 유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중에 자신이 한 일을 깨달았지만, 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으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둠에 있으면서 한 일은 이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를 넘는 엄청난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 마음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죄 지으려 할 때에 우리 양심을 건드리심으로써 주님의 우리를 향한 심정을 전해 주시고, 계속해서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정죄하는 마음이 아니라 안타깝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어둠 속에 내 몰았을 때, 우리에게 일어날 일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 속에 항상 말씀하시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유다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탄도 항상 우리를 죄악속에 집어넣으려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두 목소리 중에 어떤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의 책임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한 나의 책임입니다. 


항상 우리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 음성 속에 담긴 그 깊은 마음을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 항상 그 쪽에 서계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의 밤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언제나 빛 가운데 거하면서 빛에 속한 빛의 자녀들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결코 자신의 영혼을 어두움에 내어주지 않고 그 안에 빛되신 주님의 말씀을 담아 빛에 거하며 빛나는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