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0105to07 -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2).pdf
본 문 : 요한일서 1장 5-7절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이었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목적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계속해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런 말씀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것이고,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들었고, 또 예수님 곁에 머물면서 손으로 만지듯이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게다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고 또 예수님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자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가장 생생하게 알았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바로 요한사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요한사도만큼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요한사도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된 하나님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진리 는 바로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하고 순전한 빛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어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빛이시기 때문에 어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는 어둠과 상관있는 부분, 어둠과 겹치는 부분, 어둠에 속한 성품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어둠을 싫어하실 뿐만 아니라 어둠에 속한 일들을 혐오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의 서론을 마치고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이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만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과 본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자신이 정말 필요로 하고 또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면서 그 사람으로부터 유익을 누리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성품과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을 모르는 채로는 오히려 그 사람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그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있고, 오히려 그 사람과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대상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그 분이 없이는 구원도 없고, 은혜도 없으며, 소망과 평강, 능력 등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선한 것들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얻고 또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한 것들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과 성향을 알아야 합니다. 아주 자세하게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커다른 틀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래서 무엇을 좋아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계속 유지될 뿐 아니라 더 친밀한 관계 안에 머물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좋은 것들을 받아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설명은 어쩌면 하나님의 성품과 성향을 가장 큰 틀에서, 그렇지만 가장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어둠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고 성향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빛에 속하는 일만 행하신다는 뜻이고 빛을 닮은 것들만을 좋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둠에 속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신다는 뜻이고 어둠을 닮아 있는 일들은 절대로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만 알아도 우리가 하나님과 계속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 관계의 유익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대번에 파악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져 가고 그래서 그 분께 가까이 가 있는 자들만이 알 수 있는 복을 누리려면 우리는 빛에 속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어둠에 속한 일들을 피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어둠에서는 될 수 있는대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둠을 더 좋아하고 어둠에 속한 일들을 계속하면서 나는 하나님과 친밀하다,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은혜 충만한 신앙생활을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물과 기름을 아무 문제 없이 완전히 섞어 놓았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빛되신 하나님과 관계과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사귐의 유익을 누리는 사람은 결코 어둠에 속한 일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첫째는 그가 이미 빛으로 나아왔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가 그 빛 안에 거하며 그것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회복된 사람은 그 성향이 이제는 빛을 좋아하고 빛에 속한 일을 좋아하게 됩니다. 물론 뒤에서 보겠지만 이 말이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전처럼 기쁘게 죄를 짓는 일은 있을 수가 없고, 죄를 지은 후에 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도 없습니다. 죄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더라도 그 뒤에 그것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너무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 수록 죄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죄의 유혹을 당하고, 더러는 죄를 짓기도 하지만 그 죄를 싫어하고 또 그 죄와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빛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고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들은 완전함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완전함으로 가까이 가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사귐을 유지하고 그 사귐이 주는 풍성함을 누리려면 우리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빛을 닮은 삶을 살아가야 하며, 하나님께는 어둠이 없으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어둠을 몰아내려고 애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도들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도 꼭 필요합니다. 성도들의 관계 또한 빛 되신 하나님 안에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이론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 간의 관계 안에 죄가 끼어들면 그 관계는 깨어지고 맙니다. 이기심, 미움, 질투... 그리고 그 밖의 현저한 죄들이 끼어들 때, 성도들 사이의 사귐이 주는 유익은 거의 다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시는 죄 용서의 은혜도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빛 가운데 거하려고 노력할 때,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고 또 더 풍성하게 하려고 애쓸 때, 그 때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왜냐하면 죄를 떠나 다시 빛 가운데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노력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증거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노력 중에 우리가 범하는 죄들은 용서해 주시고 다시 그 관계 안으로 받아들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 분에게는 어둠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분과의 사귐을 유지하고 그 사귐이 주는 풍성한 유익을 계속해서 누리려면 우리들 또한 빛 가운데 행해야 하며, 우리 안에 있는 어둠과 어둠에 속한 일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관계 또한 빛 되신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관계가 주는 유익들 또한 똑같은 애씀을 필요로 합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죄가 용서되는 일 또한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할 때, 빛되신 하나님을 닮은 삶과 존재를 지니려고 애쓸 때, 그 때 주어지는 회복의 은혜입니다.
빛 가운데 거함으로써, 삶과 성품, 그리고 존재 안에서 어둠을 몰아냄으로써 하나님과의 사귐이 주는 풍성한 유익들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