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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4.26.새벽예배 -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요한복음 128)


요2124to25 -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요한12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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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 요한복음 21장 24-25절



성도 여러분, 오늘이 무슨 날일까요?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함께 요한복음을 묵상한지 128번째 되는 날인 동시에 마지막 날입니다. 항상 그렇지만 성경의 한 책을 다 설교하고 나서보면 참 부족하고 엉성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다음에 요한복음을 설교할 기회가 있다면 그 때는 좀 더 충실하게 설교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하면서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달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부족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많은 깨달음을 주셨고 또 은혜와 기쁨을 주셨습니다. 


오늘 함께 묵상할 본문은 두 절 밖에 안되는 짧은 구절들이지만, 그리고 어찌보면 별로 필요없어 보이고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구절들이지만 요한복음  전체의 최종적인 결론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굉장히 무게있는 구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은 다른 책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말씀과 하신 일을 증언하는 책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에서 사람으로 오셨으며, 하늘나라의 진리를 보여주신 분이심을 증거하는 책입니다. 이런 책, 이런 하나님의 말씀의 마지막 두 구절이기 때문에 이 두 구절의 의미는 그만큼 무겁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들의 사실보다는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들은 아주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말씀은 뜻과 교훈을 찾아내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삶으로 옮기는 것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사실이 중요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은혜롭게 생각하는 내용들, 삶의 교훈으로 삼는 모든 내용들은 마치 소설 한 편을 읽고 느낀 감동이나 잘 쓰여진 글을 읽고 느끼는 교훈과 하등의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참으로 의미있는 뜻과 교훈이 되는 것은 그 모든 기록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덕분에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도 그런 것들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의 기록이 결코 틀림이 없는 사실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정리하는 첫 번째 말로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일을 증언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사랑하시는 제자”로 자신을 제 3자처럼 표현했습니다. 이 구절에서도 자신을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라는 말로 마치 다른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요한 자신입니다. 요한이 요한복음에 기록한 내용은 모든 것이 직접 경험한 일들이었습니다. 물론 요한복음이 예수님에 대한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도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기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만, 요한이, 아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인 요한을 통해서 특별히 우리들에게 알리시고자 하신 모든 내용은 그 안에 충분히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런 요한복음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우리가 갖게되기를 바라시는 확신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왕이신 하나님”이라는 확신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바로 그 믿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자로, 나의 왕으로, 그리고 하나님으로 확신하고 따르며 온전히 섬기게 되는 변화가 바로 이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일어나야 할 일들입니다. 요한복음의 모든 기록들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참된 기록인 이유는 우리가 그 참된 기록들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참된 지식과 믿음에 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21장의 짧은 요한복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풍성한 요한복음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예수님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지는 않습니다. 사실 성경 전체로도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2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이것이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마지막 증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깊이있게 기록한 요한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또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구약을 통해서는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되고, 신약, 특히 사복음서를 통해서는 오신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서 알게되며, 나머지 부분들을 통해서는 그러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제자들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이어져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가 아무리 풍성하게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증언해 주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부가 아닙니다. 사복음서가 아무리 예수님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전해준다고 해도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지극히 일부분의 지식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속에서 깨닫고 배우게 되는 것들도 그 일부분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 일부의 지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의 직접적인 목격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기록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만약 이 땅에 계실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하신 일만 기록한다고 하여도 이 세상을 채우고 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지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의 양에 대한 말이 아닙니다. 3년 반동안 하신 일이 그렇게 많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 말씀과 행하신 일들의 크기와 무게에 관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요한이 보고 들은 예수님에 대한 일들이 요한에게는 그렇게 엄청난 무게와 크기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요한에게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셨으며, 하나님의 진리 자체였고, 생명 자체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예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이십니까?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게 되고 만나게 되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얼마만한 크기로 느껴집니까? 우리는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그 분은 이 온 우주를 채우고도 남는 크고 광대한 분으로 느껴져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분을 믿고 섬기는 사람임이 깨달아 져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알고 알아도 여전히 천만분의 일도 알지 못할, 우리의 지식과 머리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에 대한 확실하고도 흔들림이 없는 지식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기초 위에 우리의 믿음을 세워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예수님에 대한 기록은 모두가 실제로 일어난 사실입니다.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내 머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거부한다든지, 혹은 마음대로 상상해서 진실을 왜곡한다든지 하면, 우리의 믿음 자체가 흔들리고 맙니다.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믿음은 거짓 위에 세워진 상상이나 착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록된 성경만으로도 예수님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그 지식 위에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에 대해서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해도 그것은 그 분에 대한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겸손한 확신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태도나, 통달한 듯한 태도는 성경을 수 천 번 읽더라도 결코 가져서는 안되는 교만한 모습입니다. 


요한 복음의 마지막 두 구절은 우리에게 바로 이 점을 분명히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사실에 근거한 주님을 향한 겸손한 확신을 가지라고 말해 줍니다.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이 겸손한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입니다. 우리 모두의 확신이 이런 확신이 되기를 바랍니다.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처럼 알면 알수록 겸손해 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