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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5.01.새벽예배 -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요한일서3)


요일0108to10 -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요일3).pdf


20130501D (#1).mp3.zip




  문 : 요한일서 1장 8-10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 덕분에 죄사함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를 묶고 있는 죄의 사슬이 끊어졌고 죄와 죄책으로부터 자유로워 졌습니다. 여러분, 이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습니다. 100퍼센트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 자체가 건강하지 못한 곳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죄 용서를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이 두 가지가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가 받게 되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은혜를 부작용 없이 누리려면 우리가 죄 용서를 받았다는 말도 그렇지만, 특히 의롭다하심을 받았다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의롭다하심을 받았다는 말은 단순히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받을 때, 그 때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받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의로워 집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오해 때문에 신앙에 혼선이 생기고 또 커다른 부작용이 생겨나게 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비록 아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엿한 한 명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그 아기가 태어나자 마자 사람노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기가 어엿한 사람 노릇을 하려면 한참을 성장해 가야 합니다. 성숙한 인격을 갖춘 후에야 아기는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됩니다. 우리가 처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하심을 받는 일은 마치 우리가 아기로 태어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 때 우리는 분명히 의인이 되지만 아직은 의인답지 않은 의인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자라나야 하듯이 의인된 우리도 계속해서 의인다워지기 위해서, 더 온전한 의로움을 향해 성장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장이 아무리 많이 진전되고 또 계속된다고 해도 우리가 이 몸을 가지고 땅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완전히 의로워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는 항상 죄가 있고 또 죄를 짓는 일이 생겨날 수 밖에 없습니다. 애쓰며 기도하며 죄와 싸움으로써 죄를 줄여갈 수는 있지만 죄를 완전히 없애버리거나 죄와 상관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해하여, 내가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었으니 나의 의로움은 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 사람은 죄에 대한 두 가지 심각한 착각에 빠지고 맙니다. 첫번째는 나는 죄가 없다고, 자신은 죄된 성품이나 죄로 기울기 쉬운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완전한 죄사함을 받았으니, 그래서 완전히 의로워졌으니 죄가 있을 수 없다고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자신의 내면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죄악들을 보지 않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또 자기 안에 남아있는 죄성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절대로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죄를 지어도 그것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아얘 자신이 지은 죄를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계속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 죄의 용서를 위해서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여기지 않으며 그래서 그런 은혜를 구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죄성과 죄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여기다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를 믿고 나서 얻게된 의로움에 대한 오해까지 더해지게 되면 우리는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신앙과 점점 더 죄로 더럽혀져 가고 죄에 대해서 둔감해져 가는 영혼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우리는 갑자기 완전해 지지 않습니다. 죄 용서를 받고 의롭다하심을 받으며, 또 의인으로 다시 태어나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의는 완전한 의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는 의는 완전한 의라는 말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덧입혀주신 의가 우리를 구원하고 또 우리를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데는 전혀 부족하고 흠이 없는 완전한 의라는 뜻에서 사용된다면 그것은 전혀 틀림이 없는 말이지만, 그 말이 그래서 우리에게 이 의가 있는 한, 우리에게는 아무런 죄성도 없고 또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뜻으로 말해진다면 그것은 완전히 틀린 이야기입니다. 그런 측면에서라면 우리의 의는 완전히 불완전합니다. 우리의 의는 언제든지 죄로 더럽혀지고 망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의로워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불의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속에는 여전히 죄성이 있습니다. 또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러나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한 우리는 이런 사실 때문에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계속해서 죄성을 처리해 나가며 죄를 용서받고 다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우리의 죄성을, 그리고 우리가 지은 죄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자백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죄인됨과 저지른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용서의 은총을 구하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기 시작했을 때처럼 똑같이 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용서가 주어지고 다시 더럽혀진 부분이 깨끗히 씻겨지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것이 우리와 항상 함께 있는 복음입니다.  우리가 항상 의지해야할 가장 은혜롭고 풍성한 복음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죄가 발견될 때마다 그저 진심으로 우리에게 죄가 있고 또 우리가 죄를 범했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면 됩니다. 용서를 구하면 됩니다. 그러면 용서는 주어집니다. 빛 가운데로 행하다가 저지른 모든 죄들은 그렇게 씻겨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죄 용서의 은혜를 약속하신 하나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 약속을 어기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 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돌아보는 것, 나의 죄를 정직하게 바라보며 고백하는 것. 이것을 즐거워하고 편안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항상 껄끄러운 일이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는 한 없는 복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얻고 계속해서 의인의 자리로 되돌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주에 실제로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 동안 사실 별로 구체적으로 제 죄를 고백하지 않고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죄를 고백했습니다.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놀랍게도 저를 괴롭게 했던 죄악된 마음과 유혹들로부터 훨씬 더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아마도 저의 죄고백과 용서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를 통해서 저에게서 불의를 치워주셨기 때문에, 그만큼 불의한 것으로 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죄를 가지고 있고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부족한 사람들로서 항상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받고 그 용서를 통해서 더럽혀진 의를 깨끗하게 되돌려 받는 이 복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죄에서 자유로워지는 복을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짓고, 아무리 고백하기 힘든 죄를 반복하시더라도 항상 하나님의 미쁘심과 의로우심에 의지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셔서 다시 용서하시고 다시 의롭게 하시는 은혜 가운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