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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5.03.새벽예배 -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요한일서5)


요일0203to06-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요일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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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 요한일서 2장 3-6절


요한복음 8장 32절을 보면 어쩌면 성경구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구절은 말 차제로도 멋있지만 그 의미도 참 좋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참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말씀은 많이 인용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만큼 오해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이 말씀에서 ‘안다’는 말이 원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안다’는 말은 객관적이고 형식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1=2인 것을 안다. 나비는 곤충이라는 사실을 안다.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등등... 그저 어떤 사실과 원리 자체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말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실 때 단순히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그 진리를 아는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그 전 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말씀, 그러니까 진리에 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진짜 제자가 되고 그러면 비로소 진리가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원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진의’입니다. 어떤 사람이 진리 위에서 살면서 진리에 순종하게 될 때, 그 때 진리를 알게 되고 비로소 그 진리가 그 사람을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참된 유익을 누리려면 이것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결코 형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모든 진리를 일단은 그것이 맞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 이후에 그 진리 위에서 살아가고 또 그 진리에 순종하게 될 때, 그 때에야 비로소 그 사람에게 유익과 능력이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아무리 많은 진리를 알고 있어도 그 진리는 그 사람에게 자유를 주지 못하고 능력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약속된 은혜들과 능력들을 우리 것으로 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도 비슷한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전에 사도 요한은 우리가 아무리 빛 가운데 행한다고 해도 여전히 죄를 완전히 떠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는 실망하고 좌절하지 말고 죄 용서의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들여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그래서 더 죄를 짓고 용서를 가볍게 생각하게 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를 생각하며 죄를 떠나고 빛 가운데로 행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죄 용서의 은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 은혜에 힘입어서 비록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된다는 것이 사도 요한이 들려준 이야기였습니다. 


3절에 나오는 ‘계명’은 예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진짜로 아는 사람,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죄 용서의 은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킵니다. 그 계명에 순종하려고 애씁니다. 자신을 구원해 주시고, 또 계속해서 용서해 주시는 분의 말씀이니, 또 그 구원과 용서는 자신을 빛가운데서 살아가게 하시려고 주신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 말씀을 지키려고 애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때 그 사람이 얻게 되는 어마 어마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예수님을 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확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에 순종하게 될 때, 그 순종을 통해서 예수님을 경험하여 알게 되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일반적인 교훈이나 진리와는 완전히 그 종류가 다릅니다. 일반적인 교훈들이나 진리는 그 교훈을 말하고 그 진리를 이야기하는 사람하고 별로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야 말로 옳기 때문에 말하여 지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어지는 그런 것들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나 교훈이 그 사람을 떠나는 순간 그 진리는 그 진리를 말하는 사람과 분리되어 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과 진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분 자체가 사람들을 구원하는 진리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스스로 그렇게 사시면서 말씀하신, 당신의 삶을 통해 행하여지고 또 증명되어진 확실한 진리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예수님께서 주신 진리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진리들과 완전히 다르지만, 또 한 가지 정말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을 담고있는 그릇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할 때, 그 순종을 통해서 예수님을 경험하여 알도록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렇지 않으면 진짜로 예수님을 알 수 없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 스스로 우리가 예수님을 진짜로 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 아노라”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며 또 그 사람의 사랑을 확신하게 될 때, 내가 그 사람과 친밀하고 의미있는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들은 쉽게 표현하면 사랑으로 묶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게 되고, 그 관계가 주는 행복과 기쁨을 제대로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5절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될 때,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말씀합니다. 


이 계명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두고 두고 설명되어지겠지만, 우선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킬 때, 비로소 주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절을 보면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이외에는 예수님을 진짜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안다’는 말은 곧 ‘하나님을 안다’는 말이며, 사도 요한에 의하면 이것은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만큼 더 중요하고 절박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5절에서는 이 계명을 지키는 일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실을 온전히 확신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일은 우리 믿음에 있어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이 부족하고, 또 예수님을 경험하여 아는 풍성한 기쁨이 부족하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과 누림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오늘 사도 요한의 진단에 따르면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지키며 빛 가운데서 살아가지 않거나 혹은 그렇게 사는 삶이 우리에게 너무 부족하기 때문인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의 말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만을 생각하면 참 부담스럽고 무겁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지기 싫은 짐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계명 속에 구원의 참된 확신과 예수님을 아는 풍성한 기쁨이 담겨져 있다면,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담겨져 있다면 비록 그 계명을 지키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래도 그 수고는 충분히 감당할 가치가 있는 수고임에 분명합니다. 


주님의 계명을 더 소중히 여기시고 그 계명에 더 많이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믿는 예수님을 더 많이 알아가고, 더 많이 누리며, 주님이 주시는 기쁨 가운데 흔들림 없는 구원의 확신 안에 거하는 복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