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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3.05.12.주일오전 - 성도의 가정(1)

엡0522to33 - 성도의 가정(1).pdf


20130512SM (#1).mp3.zip




본문 : 에베소서 5장 22-33절


저는 언젠가 ‘누가 좋은 사람인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는가?’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문득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정말 주관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누가 좋은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십니까? 물론 누가보기에도 훌륭한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람은 다들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나에게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사람=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가정이 좋은 가정인가를 판단하는 기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어떤 가정이 좋은 가정이냐고 물으면 이런 저런 대답을 하겠지만, 실제로 개인이 자신의 가정을 생각할 때는 답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이 어떤 모습의 가정이 되면 그 가정을 좋은 가정이라고 느끼시겠습니까? 혹시 나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정은 아닙니까? 나를 존중해 주고, 내 생각의 방향대로 흘러가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었을 때 나는 “아, 우리 가정은 참 좋은 가정, 바람직한 가정이다.”라고 느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가정은 나 혼자가 아닙니다. 가정은 두 사람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나 혼자 우리 가정을 좋은 가정이고 문제없는 가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 가정이 좋은 가정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가정에서 한 사람의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가정에 대해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게 당연한 것이 가정이 내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 중심으로 가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그러면 그럴수록 나머지 식구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합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면 절대적일수록 나머지 구성원들의 불만과 스트레스는 그만큼 커지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개인의 판단과는 상관없이 그 가정은 좋은 가정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얼마전 모 방송국에서 기혼자 4755명을 대상으로 ‘다시 결혼한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느냐?’고 물었답니다. 응답자 중 남자들의 72퍼센트는 다시 결혼해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다고 대답했지만 여자들은 47퍼센트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답니다. 두 수치 사이의 차이가 이 정도에서 머무는 것이 다행이지만 내가 행복하다고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가족 구성원의 입장에서 보아도 그렇지만 가정과 가정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아도 비슷합니다. 모든 가정은 저마다 특색이 있고 가풍이 있습니다. 사는 모습도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도 다릅니다. 그래서, 틀에 넣고 찍어내듯이 어떤 기준에 맞는 가정만이 좋은 가정이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냥 나름대로 살아가면 될까요?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 오던 대로 가정을 꾸려나가면 그것이 이상적인 가정일까요? 그냥 오던 대로 죽 가면 될까요? 그나마 그게 가장 근접한 정답일까요? 물론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아오던 대로 살아도, 그리고 옳다고 여기고 좋다고 생각되는 대로 살아도 괜챦을 것입니다. 또 사회적인 대세를 따라서 가정을 꾸려나가도 좋을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도 없고,  또 평가내릴만한 객관적인 기준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조금 입장이 다릅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일에서도 그렇듯이 좋은 가정, 바람직한 가정이 어떤 가정인가를 평가하고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도 우리 자신이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기준은 우리 머리 속에 있거나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을 따를 때, 그 가정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가정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가장 좋은 가정, 가장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애초에 가정을 계획하시고 또 그 가정을 만드신 분이 다름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하나님의 뜻과 방향에 자신의 모습을 맞추어 갈 때 비로소 가장 바람직한 가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 날이 있고 어버이 날이 있는 모든 가족을 위한 특별한 달입니다. 그저 선물을 주고 받으며 의례적으로 지낼 수도 있겠지만, 5월에는 한번쯤 우리의 가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우리 가정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의 가정, 그래서 우리들에게도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런 가정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일도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세 번에 걸쳐 에베소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은 어떤 가정인지? 그리고 그 하나님 안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은 어떤 가정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정의 중심은 자녀가 되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대구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겠지만, 서울에서는 단지 자녀들의 고액과외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어머니들이 식당 접시닦는 일이나 파출부 일같은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해 달라는 것은 다 해줍니다. 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원하지 않는 것까지, 그것도 최고의 것으로 해 줍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조분 조분 이야기하지만, 아이들은 마구 소리를 질러댑니다. 이렇게 가정의 모든 중심이 아이들이 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심하게 말하면 아버지는 돈 벌어오는 기계가 되고, 어머니는 아이들의 뒤치닥거리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부모들에게 고통스럽기만 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한 일이니 그렇게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어떻고 또 그 부모들이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가와는 상관없이 성경은 가정이 이렇게 자녀가 중심이 되고 자녀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결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정은 자녀 중심이 아닙니다. 철저히 부부중심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나이가 많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 단순히 부모가 부모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가정의 영적인 리더십을 자녀가 아닌 부모에게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모는 자녀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공급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자녀가 한 사람의 인격체로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기까지 부모는 자녀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분별력 없이, 자신의 부모로서의 리더십까지 상실하면서 까지 자녀들에게 끌려다녀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원래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시면서 계획하셨던 것도 아니고 그래서 결국은 그 가정의 구성원들까지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일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는 5장 22절부터 6장 4절까지 16절에 걸쳐서 가정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5장 22절부터 33절까지 열 두 절은 부부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가정에서의 부부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가정의 중심인 부부 이야기를 하기 전에 미리 여러분에게 꼭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말씀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부부에 관한 말씀을 들으실 때, 꼭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해 달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아내들이여…..”, “남편들아….”라는 말로 구절들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내들이여...’라고 시작하는 말씀에는 아내들이, ‘남편들아...‘라고 시작하는 말씀에는 남편들이 각자가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시면 됩니다. 괜히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시는 이야기까지 들으시고 ‘내 남편은 안 그런데’, ‘이건 내 아내가 꼭 순종해야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속상해 하시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남편에게 하시는 말씀과 아내에게 하시는 말씀이 분량면에서 볼 때,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내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세 절입니다. 반면에 남편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다섯 절입니다. 남편에 대한 말씀이 훨씬 더 많습니다. 성경이 아내들보다는 남편들에게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남편들이 가정에서의 역할이 그만큼 크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무게가 더 나가니 추가 더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남편을 가정, 특히 아내의 머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가정에 있어서 모든 리더십이 남편에게 있음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으니...” 분명히 남편은 아내의, 그리고 가정의 머리입니다. 아내되시는 분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어떻든지 간에 남편을 쥐고 흔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의 가정에서의 리더십을 인정해 주고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이고 신앙적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편이 가정의 머리라고 할 때, 남편들은 자신이 머리다운 머리가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머리의 머리됨은 자기가 머리라는 것을 내세움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자동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남편이 가정의 머리, 그리고 아내의 머리라고 할 때, 이 말이 우리에게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는 것은 머리라는 말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어야 할 것은 주님께서 부부관계를 말씀하실 때, 머리와 꼬리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머리와 몸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 머리가 되면, 나머지는 꼬리가 되는 사회에 살고 있어서, ‘머리’라는 말을 비인격적인 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고방식을 떠나야만 오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머리가 머리 노릇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머리가 머리 역할을 하는 것은 자신이 속해 있으며, 자신이 살아있게 하는 몸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는 위치가 아니라 역할입니다. 물론 리더십은 머리에 있지만, 그 리더십은 몸을 위한 리더십이지 머리 자신을 위한, 머리가 머리임을 증명하기 위한 리더십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남편의 머리됨을 말하면서 그 역할을 25절에서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주님은 남편이 머리이기 때문에 아내를 다스리고 군림하라고, 그래도 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주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신 것같이 그렇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그리고 가정에 대한 리더십은 군림과 주장이 아니라 사랑과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내가 아니라 아내를, 그리고 가족들의 유익을 위해서 나를 내려놓는 일을 통해서 제대로 행사되어 집니다. 물론 대부분의 가장들과 남편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정말 수고하며 희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에 여전히 한 가지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격적인 측면에서의 희생이 아닌가 합니다. 때로 많은 아버지들이 자녀들을 위해서 정말 희생했다고 생각하고 또 실제로도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서 외롭고 힘든 세월을 보내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살아오는 동안 자녀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정말 애쓰고 힘쓰기는 했지만,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성격과 자기 욕심, 자기 성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가족들을 대합니다. 그렇게 하는 자신은 아마 편하고 좋겠지요. 그러나, 그러는 사이 가족들은 상처로 멍이 들고, 아버지는, 그리고 남편은 집안에서의 참된 리더십을 잃어가게 됩니다. 아버지들은, 그리고 남편들은 가족들이 내 말을 잘 듣는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가정에서 참된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걸 알지 못하면 결국 그 힘이 자녀에게로 넘어가는 시기가 되면 남편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로 가족 중에서 따돌림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남편이 자기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할 것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인격입니다.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인격적으로 헌신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남편은 항상 가정의 머리로서 인격적인 측면에서 내가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지를 살피고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의 모난 성격을 그대로 고집하면서 사랑으로 섬기는 머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머리가 되는데 방해되는 성품이 있다면, 가정에서 자꾸 갈등을 일으키는 내 성품이 있다면 그 성품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려놓고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가정을 사랑하는 사랑의 출발점이고 그것이 머리됨의 출발점입니다. 


남편이 가족, 특히 아내에게 리더십을 행사하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또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남편의, 그리고 가장의 리더십은 하나의 영적인 목적이 있는 리더십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가정을 잘 이끄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잘 이끌되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26절과 27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은 교회의 머리십니다. 머리되신 주님은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자신의 리더십을 발휘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그러한 희생은 결코 목적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희생 자체가 고상하거나 의미가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데에는 아주 중요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가 흠이 없이 거룩하여 지고, 영광스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남편이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는 일도 똑같은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일로 가장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단순히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자신이 믿는 가장이라면, 믿는 남편이라면 목적이 분명해야 하는데, 그 목적은 나를 가정의 머리로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과 같아야 합니다. 그것은 ‘아내를, 그리고 자녀들을 주님 앞에 흠이 없고, 거룩하며, 영광스럽게 세우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은 삶의 모든 것들을 주님을 중심에 놓고 주님과 연관지어 생각하며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그렇지 않고서 참된 크리스챤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믿는 남편은, 그리고 가장은 자신의 가정을 이끌되 항상 자신의 가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가정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이끌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순결한 가정, 하나님 보시기에 흠이 없는 가정, 영적으로 건강하고 열정적인 가정이 되게 하기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사는 것은 결코 힘들기만 한, 손해보는 장사는 아닙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도록 지음받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지음 받았습니다. 그렇게 살 때 가장 만족스럽고 최고로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가정 안의 가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이 자신을 가정의 머리로 세우신 목적에 맞게 움직여 갈 때, 가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순결과 정직이라는 방향으로, 신앙 안에서 나아가도록 이끌어 갈 때 우리가 사랑하는 가정은 최고로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나도 최고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모인 성도님들 중에서는 이미 자녀들을 다 키워놓으신 분들이 더 많습니다. 이미 자녀들도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여러분과는 별로 상관없는 말씀으로 들리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자 성도 여러분, 여전히 여러분은 아버지이며, 남편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계신 한 확장된 가정의 머리입니다. 사랑하고 자신을 내어주시는 일로 계속해서 그 리더십을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힘이 없어졌다고 실망하지 마시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속상해 하지 마시고 사랑하시고 인격적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는 일로 여러분의 리더십을 사용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가정을 위한 여러분의 아름다운 영향력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그렇게 변해 가면서 가정의 가장된 자녀들을 향해서 이런 가장이 되도록, 이런 남편이 되도록 권면하시고 교훈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의 자녀들이 정말 주님 앞에서 흠없고 온전하며 거룩한 자녀들이 되도록 기도하면서 도와 주십시오. 아마 이 일은 남자 성도님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장성하여 가정을 이룬 여자 성도님들께서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역할일 것입니다. 


더불어 아내들에게 권면합니다. 나의 남편이, 내 아들이 이런 남편과 가장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그저 가정을 행복하고 유복하게 하는 남편이 아니라 우리 가정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게 세우는 그런 가장이 되도록 나아가도록 부드럽게 권면도 하시고 필요하다면 간청도 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남편이 이런 남편과 가장이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머리가 머리다운 머리가 될 때, 그리고 머리로 귀하게 여김을 받을 때 아내도 가정도 비로소 건강한 몸이 될 수 있는 법입니다.

 

남편된 성도 여러분, 마지막으로 같은 남편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우리의 작은 노력으로 온 세상이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가정 만큼은 나의 사랑과 희생의 리더십, 우리에게 리더십을 주신 주님의 목적과 방향이 맞는 리더십의 행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모습으로 변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어쩌지 못하고 이 세상을 어쩌지 못하겠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가정을 향한 뜻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애쓴다면 하나님은 분명 우리 가정을 온전하게 새롭게 해 주실 것이며,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울로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의 참된 머리됨으로 인하여 우리 자녀들이, 그리고 아내들이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게 설 수 있게 되며, 그래서 그들이 훗날 바로 우리의 영광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