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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5.14.새벽예배 -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요한일서12)

요일0304to09-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요일1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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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 요한일서 3장 4-9절


복음은 복된 소식, 혹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복음은 그냥 기쁘고 복된 소식이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만약 이 사실을 부인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어떻게 말하든 절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복음은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복된 소식이 될까요? 그것은 복음이 사람은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렇지만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되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도 하고, 복음 자체가 그 해결책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는 바로 죄입니다. 죄는 복음이 오기 전에는 그 누구를 통해서도,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 죄의 결과요 형벌인 영원한 죽음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었다는 뜻이 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인간의 죄와 죽음의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결책이며, 우리는 그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죄와 죽음의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답임을 믿기만 하면 죄와 죽음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이유이며, 최고의 은혜가 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의 능력과 은혜를 제대로 누리려면, 그리고 그 능력과 은혜 가운데서 넉넉한 구원을 받으려면 이러한 복음의 내용 중에서 “우리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대개 성도들은 “우리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의 죄는 용서되었으며 그래서 우리는 하늘나라행 티켓을 약속받았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이 말 자체에는 틀린 곳이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이 가지는 의미의 전부가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 죄를 용서받게 해주고, 그래서 죽음에서 건져주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아얘 우리와 죄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달라지게 만듭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기 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 때는 우리 삶 자체가 죄 가운데서, 그러니까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기 전의 우리의 삶은 결코 죄를 벗어날 수가 없었고, 죄와 싸워서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믿고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해결책을 나의 해결책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사탄의 수하에서 건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죄 가운데에서 살다가 하나님 안으로 이사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죄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충분히 죄를 짓지 않고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고 죄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싸워서 이길 의지와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그 동안 내가 죄와 그 형벌인 죽음 때문에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그리고 두려워하면서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치르신 엄청난 댓가를 깨닫게 됩니다. 이 두 가지 깨달음 때문에 그 사람은 죄에 대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과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때로 예전의 습관 때문에, 그리고 잠시의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지을 때가 있기는 해도 죄를 굉장히 싫어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를 짓고 다시 예전의 죄에 휘둘리는 죄의 종의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을 그 어느 것보다도 싫어합니다. 죄를 쉽게 생각하거나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짓는 일은 하지 않게 됩니다. 또 이미 죄를 용서받고 죄가 우리를 묶어 꼼짝 못하게 하는 올가미들로부터 놓여났으니 죄와 싸워서 이기는 빈도수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집니다. 내가 만약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님께서 내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행하신 일들을 알고 있다면 나에게는 반드시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4절과 5절에서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믿음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면 그는 죄와 죄를 짓는 일을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귀에 들려오는 복음 중 많은 것들은 바로 이런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죄가 용서되었으며 하늘나라가 허락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들려주지만 그 은혜 안에서 일어난 우리 자신의 변화와 그것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지녀야할 죄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는 별로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의도적’이라고 말씀드린 것에 주의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저도 설교자니 너무 잘 압니다. 목회자도 여전히 인간입니다.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자주 죄에 빠지는 인간입니다. 또 죄 이야기를 하면 듣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서먹 서먹해 질 것도 잘 압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그것도 구체적인 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 이야기를 빼고 넘어가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제가 이제까지 그 유혹들을 다 이겨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 적당히 물을 탄 적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전해지는 복음은 죄와의 싸움과 죄에 대한 고민이 없는 복음이 대부분입니다. 그저 용서와 구원만을 이야기합니다. 치유와 은혜, 축복만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죄를 빼놓고, 그리고 죄와 우리 사이의 관계의 변화, 그리고 죄와의 싸움을 빼놓고 복음을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죄에서 풀어놓아 다시는 죄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 죄를 짓는대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백성을 만드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복음이 과거의 죄의 용서에서만 끝난다면 그 복음은 우리를 위한 실제적인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과거의 죄는 용서해 주고 구원은 주지만 지금 당장 계속해서 죄를 짓고 죄와 싸워 승리하지 못하며 다시 죄에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된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의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불완전하고 능력없는 복음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은 완전한 복음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복음은 그 복음을 제대로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를 죄와 싸우게 하고 그 죄를 이기게 합니다. 더 이상 죄에 휘둘리지 않게 해 주며 그래서, 그 형벌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복음이 복음인 것은 복음 안에 이런 능력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 안에 제대로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점점 더 죄와 싸워 승리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날만 죄에 대한 이야기를 뺀 복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요한일서가 쓰여지는 시대에도 그런 복음이 들려지고 있었습니다. 전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부담없으니 그런 복음, 아니 복음아닌 복음이 들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7절과 8절에서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명령합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죄와 싸울 것을 말하지 않고 그 죄를 끊어버릴 것을 권면하지 않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 미혹입니다. 그런 복음은 우리를 다시 죄에 대해서 무뎌지게 하고 그래서 죄를 쉽게 생각하게 하며 다시 죄짓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절대로 죄와 싸우지 말라고, 죄와 싸울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과거의 죄 뿐만 아니라 지금의 죄와 앞으로의 죄와 싸우게 하고 이기게 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을 때 우리 안에는 이미 하나님의 씨, 그러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성품이 우리 속에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 거룩한 씨앗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 씨앗은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조금씩 조금씩 아름답게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가 그 성품을 더 온전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리 듣기 좋아도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난 하나님의 자녀답게 우리 속에 주신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더 온전하게 만들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