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0501to04-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21).pdf
본 문 : 요한일서 5장 1-4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다 인정하는 가장 아름다운 미덕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사랑일 것입니다. 요즘은 세상이 이상해서, 겸손도 싫어하고 희생도 싫어하며 섬김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사랑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마 ‘사랑’이라는 말,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서 화를 내거나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말을 이렇게 기분좋고 가볍게 생각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볼 때,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결코 부담되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이란 좋은 감정이고 또 받는 것을 먼저 생각하며, 또 실제로 의무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사랑에 대한 강제성을 느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는 사랑이란 이렇게 가볍고 유쾌하게 여겨지지만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에게 사랑은 그저 막연히 좋은 감정도 아니고, 적극적인 선행이 있어야 하며, 우리는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어떻게 보면 강제성을 지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는 사랑해야 하지만 누구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 것이어야 하며, 상황을 가리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사랑의 모델은 예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랑을 무거운 짐처럼 여기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니라” 그러니까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은 우리 생각처럼 전혀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요한 사도는 그 이유를 우리가 남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면 어떤 관계가 됩니까? 형제와 자매가 됩니다. 우리 모두는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세상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우리 서로의 관계만 놓고 보면 우리는 형제와 자매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났고, 그래서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형제와 자매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랑하지 않고 있다면, 서로 사랑하는 일이 부담스럽고 힘들게만 여겨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진실로 서로를 형제와 자매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가족이라면 아버지만 아버지로 받아들이고 형제와 자매들은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받아들인다면 성도들은 자동적으로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심만 누리고 성도들의 형제 자매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것이 1절의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게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나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둘째로 4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왜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진단해 주고 있으며 우리는 이미 그 이유를 넘어서 있기 때문에 서로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바로 이것 때문에 주님의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우리에게 더 이상 무거운 짐이 아닌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사랑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세상을 이기는 믿음 이야기가 나오는지 의아해 질 수 있지만, 실제로 사랑하는 것과 세상을 이기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세상에서 사람들과 경쟁해서 성공을 거둔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에서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죄를 이긴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세속적인 원리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죄가 있지만 성경적으로 볼 때, 그 죄의 기초는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흔히 이기심이라고 부르는 ‘자기 중심성’입니다. 그러니 세상을 이긴다는 것, 세속적인 원리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이 이기심과 자기 중심성을 극복해 내는 것을 뜻합니다. 이 말을 원래의 구절에다 넣어서 읽어드릴테니 한 번 들어보십시오. “무릇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이기심을 이기느니라 이기심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렇다면 왜 믿음, 그러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우리의 이기심을 극복해 내는 능력이 될까요? 그것은 그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 때부터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족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복이고, 그래서 우리가 이 약속을 정말로 믿으면 그 사람은 정말 말 그대로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기심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더 이상 나만 챙길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것은 이미 배부른 사람이 더 이상 음식욕심을 낼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미 배가 부른 사람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면 그 사람은 그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지 않습니까?
믿음은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이기지 못하는 이기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만 싸우면서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만족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어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일은 더 이상 무겁기만한 억지춘향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2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서로를 사랑하게 될 때, 그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녀인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또 느낄 수 있으니 이 사람은 기꺼이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짐으로 여겨지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하나님께 받아야할 은혜가 많이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 줍니다. 이것은 첫째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와 자매가 되게 해 줍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의 사랑은 더 이상 상관없는 남을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 가족을 사랑하는 일이 되게 해 줍니다. 또 둘째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와 만족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줍니다.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것, 사랑이 여전히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것은 이 두 가지가 아직 우리의 현실이 되어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로 배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남이 아닌 가족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이 되시는 아버지이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믿음으로 취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의 짐은 가벼워지고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온전한 믿음을 갖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우리를 참된 가족이 되게 하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기꺼이 가벼운 사랑의 멍에를 지며 그 안에서 더 풍성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아 알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