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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6.06.새벽예배 -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요한이서 3)


요이0104to06-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요이0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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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 요한이서 1장 01-03절


편지를 쓰는 사도 요한은 마치 자녀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서 교회를 바라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목회자가 교회를 바라볼 때, 진짜 아버지의 심정이 되어서 바라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실제로 저는 저의 목회를 생각하면서 기도할 때, 계속해서 아비의 마음과 목자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목회는 이 두 가지 마음이 없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목회를 해 보니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했어도 진실로 그 마음이 되어서 교회를 바라보고 또 성도들을 돌본다는 것은 정말 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요근래에 아버지의 마음과 비슷한 마음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어떤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기쁘고 기특한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뭐 아주 대단한 신앙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지만 그 하나의 행동이 얼마나 기쁘고 또 예뻐 보이든지... “아,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마음이 저희 집 아이들이 기특한 행동을 했을 때 느끼는 감정과 닮아 있었으니까요. 


아버지가 가장 기뻐할 때는 자녀가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아버지의 선한 뜻을 헤아리고 순종할 때인 것 같습니다. 요즘 스마트폰 문제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은데요. 특히 아직 자기 조절 능력이나 뇌의 발달이 완전해 지지 않은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휴대폰은 정말 독 중의 독입니다. 저의 집 큰 아이에게도 그랬습니다. 거의 못 만지게 하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그것부터 들여다 보고, 학교 가면서 들여다 보고, 잠 자기 전에 들여다 보고... 도저히 그냥 내버려 두면 안되겠다 싶어서 그저께는 저녁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혁아. 너 니 힘으로 폰 들여다 보는게 조절이 안되지?”라고 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는 작은 기계 하나 때문에 아들이 망가지는 것을 보고싶지 않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너 휴대폰 없이 지내면 안되겠니?”라고 했더니 너무나 순순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안된다고 고집을 부릴줄 알았는데 너무 쉽게 따라와 주어서 놀랄 정도였습니다. 물론 고 3 졸업할 때까지 휴대폰 없이 지내면 휴대폰 사용료를 적립해서 선물로 주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아빠로서 기쁜 것을 넘어서서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고맙다고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기뻐하는 것은 아무 때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기뻐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녀가 어긋나가는데, 바른 길을 알면서도 그 길을 따라가지 않는데, 또 부모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않은 채로 순종하지 않을 때 그 때도 자녀를 기뻐하는 부모는 사실 정상적인 부모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할 때, 그 말도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기뻐하실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말이 그저 우리가 무엇을 하든, 아무리 부족한 채로 자기 고집만 부려도 그렇다는 뜻이 아닙니다. 요근래에는 이런 메시지들이 난무하고 또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기를 즐겨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선하신 아버지의 뜻에 기쁘게 순종할 때, 그 때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기뻐하기만 하신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도 아니고, 선하신 아버지도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에 따라 살아갈 때, 그 때 기뻐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때 그 때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됩니다. 부모가 자녀때문에 기뻐하면 그 기쁨은 곧 자녀들의 기쁨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진정으로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는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사실 우리가 누리는 영적인 기쁨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믿음으로 순종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을 때  누릴 수 있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바라보았던 사도 요한은 아버지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 중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진리를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명을 따라 진리를 행한다’는 말은 우리가 요한일서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랑을 동기로 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리며 살아가는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로 살아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요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아마도 추수날의 얼음냉수처럼 사도 요한과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사도 요한이 교회를 다시 부녀라는 한 사람처럼 부르는 이유는 교회를 이루는 모든 성도들이 한 사람처럼 사랑하자는 권면을 받아들여야 모두가 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는 어떤 교회든 모든 성도들이 100퍼센트 바람직한 상태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는 사랑해야 하지만 누구는 그 의무에서 제외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른 모든 권면이나 계명들도 그렇지만 사랑하라는 계명도 그렇습니다.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마치 그 교회 전체가 한 사람인 것처럼 사랑에 있어서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그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교회는 거리낌과 안타까움 없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고, 성도들이 바라는 대로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사랑이 부족한 문제는, 자기가 속해 있는 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사랑하라는 계명에 진심으로 순종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려는 사람이 부족하니 받을 수 있는 사랑도 그만큼 적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사랑의 악순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이 계명에 순종하면서 스스로도 풍성하고 행복한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려면 ‘사랑하자’라는 계명이 들려올 때, 그것을 나에게 주시는 명령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가야 교회에 사랑이 회복될 수 있고, 그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 ‘사랑하자’라는 계명은 갑자기 들려온 생소한 계명이 아닙니다. 이 계명이야 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그게 누구이든지 간에 처음부터 끊임없이 들어온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계명에 순종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기뻐하십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사랑이기시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또 우리 자신도 기쁨을 누리며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사랑을 생략해서는 안됩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 처음부터 들었던 오래된 계명에 순종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회복되어져 가게 하고, 또 서로가 교회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사랑의 크기도 커져가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가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의 풍성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영광스러운 기쁨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을 따라 여러분에게 거듭 권면합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합시다. 하나의 기뻐하심 가운데 기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중요한 계명에 순종합시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한 사람처럼 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진보를 보이며 사랑의 기쁨과 풍성함을 함께 누리는 교회가 되어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