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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6.04. 새벽예배 -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자녀들에게(요한이서 1)


요이0101to03-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자녀들(요이01).pdf


20130604D (#1).mp3.zip




  문 : 요한이서 1장 01-03절


오늘 우리는 요한이서의 인삿말 부분을 함께 읽었습니다. 성경의 거의 모든 서신서들이 그렇듯이 그래서 오늘 본문 속에는 누가 편지를 받는지를 알려주는 내용과 그 사람들을 향한 축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냥 보면 매우 의례적인 부분으로만 보이지만 실은 이 세 절에는 우리들, 그러니까 교회에 대한 아주 중요한 진리와 교훈이 담겨져 있습니다. 


먼저 요한은 이 편지를 받는 수신자를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 편지는 그저 교회의 어떤 여자 성도와 그 자녀들이 받는 사적인 편지처럼 보입니다. 물론 그렇게 보아도 요한이서를 읽거나 묵상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그렇게 하면 이 서신서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의 하나를 놓치는 셈이 됩니다. 


우리가 주일날 집에서 나오다가 집 앞에서 이웃을 만났습니다. 그 이웃이 이렇게 묻습니다. “안녕하세요? 일요일인데 일찍부터 어디 가시나 봐요?”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하게 될 것입니다. “네. 교회에 갑니다.” 물론 ‘교회’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이 모이는 장소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어서 우리가 그렇게 대답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원래 교회는 절대로 장소를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라는 말 속에도 이미 그 의미가 포함되어 있듯이 교회는 ‘모임’을 의미합니다. 만약 우리가 장소를 이야기하려면 위의 대답은 “네. 예배 드리러 예배당에 갑니다”라고 해야 정확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오히려 지금은 그렇게 정확한 대답이 어딘가 어색한 대답이 되어버렸지만 말입니다. 


교회는 모임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래서 사실 교회에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모여있을 때에만 교회가 아니고 흩어져 있을 때도 여전히 교회입니다. 가족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산다고 해서 가족이라는 사실이 없어지지 않듯이 성도들이 흩어져 있을 때에도 그 성도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여전히 교회입니다.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면 ‘나는 교회에 다닌다’는 말은 틀린 말이 되고, ‘교회에 속해 있다’는 말이나 혹은 ‘나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다’라는 말이 정확한 말이 될 것입니다. 제가 교회에 대해서 이런 설명을 드리는 이유는 요한이서의 맨 앞에 나오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이라는 말은 실은 이런 의미에서의 교회를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역사가 흐르면서 오래 전에는 익숙하게 사용했고 또 아주 풍성하고 은혜로운 의미를 가득 담고 있었던 중요한 신앙의 언어들을 많이 잃어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말들 중의 하나가 바로 성도들이 속한 공동체인 교회를 일컫는 ‘어머니’라는 표현입니다. 물론 성경에 그런 표현이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고, 교회를 부를 때, 직접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교회는 성도들과의 관계와 또 그 관계 속에서의 역할을  생각할 때는 어머니라고 여겨졌고 또 그렇게 불려졌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아버지시라면 교회는 성도들의 어머니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는 누구나 교회의 보호와 양육을 받는 교회의 자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말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지만 전통적으로 보면 자녀들은 어머니의 몸을 빌어 태어나기는 하지만 항상 아버지가 낳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 생명의 씨앗을 아버지에게서 받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을 낳았다는 표현이나, 혹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났다는 말 또한 이런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고, 실제로 생명은 아버지로 부터 받는다는 것이 성경적인 사고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태어난 자녀들은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먹고 양육되며, 보호되듯이 하나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서 거듭난 성도들은 그 다음부터는 교회를 통해 직접적으로 양육받고 또 보호를 받으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져 갑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일에 있어서 아버지가 절대적인 역할을 하듯이 그 생명이 자라고 성숙하는 일에는 어머니가 절대적인 역할을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정확하게 표현하면 성도가 교회를 통해 영적인 필요를 공급받고 또 견고한 신앙을 가진 성도로 자라가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지만 그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성도의 성장과 성숙에 있어서 교회공동체는 어머니처럼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어머니입니다. 바로 이런 성경적인 사고방식이 요한이 교회를 향해서 ‘택하심을 받은 부녀’라고 부르는 곳에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성도 각자 각자가 자기 마음대로 예수 믿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교회 안으로 모으시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교회가 성도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성도들의 어머니의 역할을 해 주어야 성도들이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층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는 교회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현실 교회의 모습에 실망한 나머지 무교회 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바로 교회가 자신들의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성도로 사는 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자라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어긋나가고 신앙적으로 위험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는 자신들은 다 자신들이 옳은 줄 알지만, 가장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땅 위에 교회들을 놓아두시는 이유는 비록 부족하고 때로는 정말 없는 것만 못한 엄마같은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교회로 하여금 성도들의 어머니 역할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또 하나 사도 요한은 교회를 그냥 부녀라고 부르지 않고 ‘택하심을 받은 부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교회를 먼저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 개인을 먼저 생각하십니까? 아마 대부분은 개인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애초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개인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를 만드실 때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시고 그 다음에 그들을 모으셔서 교회 공동체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먼저 계획하시고 나서 우리들을 불러 교회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성도 개인보다는 교회가 앞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성도들의 신앙 자체가 전체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좁혀서 생각해 보면 교회를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그 교회와 자신의 관계를 이해하는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또 머리로는 알고 있더라도 그것을 믿음의 내용으로 받아들여 그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교회의 구성원과 지체라고 이해합니다. 역할과 기능을 중심으로 교회와 우리의 관계를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들과 교회의 관계에는 이런 측면도 있고 또 그것도 필수적이지만 그 전에 교회 공동체가 성도인 자신의 영적인 어머니이며 또 하나님은 교회를 먼저 생각하시고 나서 나를 그 안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 공동체 보다도 나 자신을 먼저 그리고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마치 자신이 교회를 보호하고 붙들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시고 양육하시기 위해서 어머니 교회에 부어주시는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으며, 교회를 섬길 때도 겸손하게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자신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모두 놓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항상 교회를 여러분의 어머니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못나고 부족해도 이단이 아니고 여러분의 영적인 건강을 헤치는 정도가 아니라면 여러분의 영혼의 어머니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먼저 그리시고 그 안으로 나를 부르셨음을 고백하시며 나보다는 교회를 더 무겁게 생각하는 성도가 되셔서 교회가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유익을 누리면서 건강하게 겸손하게 신앙생활하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