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 요한일서 5장 18-21절
오늘은 요한일서를 함께 묵상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하면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으실지도 모르지만 저는 이번에 요한일서를 설교하면서 정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굉장히 부담스러운 말씀들도 많았지만, 그 부담스러운 내용들은 이미 우리가 그런 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영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고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이미 얻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놀라운 것들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 무엇보다도 이제는 정말 사랑해야하겠다는 절박함을 가지게 된 것은 저에게는 영적으로 볼 때 정말 커다란 소득이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만능열쇠를 찾게 된 것이니까요.
우리가 형제와 자매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기심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고,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고....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 안에 다 들어있는 능력이고 은혜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가진 믿음이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그런데, 이 모든 능력과 은혜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말씀드린 대로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그러니까 사랑을 통해 일하고, 사랑을 통해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엄밀하게 말씀드리면 우리가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또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능력이지만, 이 사랑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행함과 진실함을 가지고 사랑하려고 애쓸 때에만 행할 수 있는 주님의 계명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믿음에 대해서 반복해서 말씀드린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은 은혜를 받는 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사랑을 통해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된 은혜를 받으려면, 적어도 그 은혜의 풍성한 유익을 누리려면 우리에게는 반드시 사랑을 통해 일하고, 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요한이서에도 또 나오겠지만, 요한일서를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간절하게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자가 되십시오. 행함과 진실함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성도에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랑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핵심과도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흉내내는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얻고 보며 확신할 수 있게 되고 또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제 요한일서를 마감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요한은 요한일서를 마감하면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이 구절은 우리로 하여금 요한복음 10장 28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확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이라면, 하난님께로부터 태어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께 속하기 때문에 악한 자는 우리의 영생을 빼앗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건드릴 수도 없습니다. 물론 이것이 우리를 유혹할 수도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유혹은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옛날처럼 억지로 죄를 짓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들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싸움이 그렇습니다만, 영적인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이미 그 싸움은 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전이 우리가 죄의 유혹에 대해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고 하더라도, 나는 거듭났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만유보다 크신 분이 지키시며, 그리스도께서 나를 악한 자가 손대지 못하도록 지켜주고 계시다, 그래서 나는 충분히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믿으면 항상 지던 죄와도 충분히 싸워볼만하며 이길 수도 있습니다. 아니 많이 이길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것은 결코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이미 그렇다고, 이미 우리에게는 이런 놀라운 변화와 은혜가 주어졌다고 이야기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이것을 믿고 계속해서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 은혜의 능력 안에서 죄와 싸운다면 완전하게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굉장히 많은 승리를 거둘 수는 있습니다. 욕심도 이길 수 있고, 욕심이 만들어 내는 이런 저런 수많은 죄악들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욕심이 움직여 가는 이 세상도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약해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는 고백을 자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여전히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고 그래서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있습니다. 실은 이런 우리의 불완전함에서 우리의 범죄함이 나오는 것이구요. 그렇지만, 이 말은 그저 우리의 존재가 처해있는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지 결코 그래서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다는 필연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여전히 필연적으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사역은 어떻게 된 것이고, 우리의 거룩함을 위해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은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로부터 자유를 얻었고,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돕고 계신데 어떻게 여전히 우리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상태로 남아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죄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령님이 계시고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지켜주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고 죄를 이기도록 능력있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기심을 이길 수 있고, 죄를 이길 수 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우리가 죄를 지을 가능성보다는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길 가능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우리는 악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참된 자를 알아볼 수 있는 참된 지각을 주셨고 그래서 우리는 참된 분,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참 하나님이시고 영생이신 분께 속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이미 이것을 모두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우리들에게는 이미 사실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모든 것들이 과거에 일어났으며, 그리고 지금도 자신은 그런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죄에 약하기만 한 상태에 있을까요? 계속해서 내가 약하기 때문에 죄 지을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만 계속하면서 죄와 싸우고 세상과 싸우려는 의욕도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여전히 이기심과 욕심을 동기로 해서 살아가는 일을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면서 살아갈까요? 그럴 수가 없겠죠? 그렇다면 우리가 십자가를 믿는 일도, 성령님을 의지하는 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요한은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왜 갑자기 우상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이제까지 요한일서에서는 우상이야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말이 갑자기 등장했다면 그 말은 굉장히 중요한 말인 동시에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상라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뜻하고, 그래서 우상을 피하라는 말씀은 그런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구절은 사실 요한일서 전체에 대한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는 영생과는 전혀 상관없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챦다, 죄는 이길 수 없고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라는 등등... 우리를 편하게 해 주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변화나 영적인 의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해 주지 않는 그런 주장이나 메세지를 일컬어서 우상이라고 말하며, 그래서 그런 것들을 피해서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사도 요한이 말한 우상, 그러니까 우리를 편하게는 해 주지만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는 전혀 맞지 않는 그런 메세지들을 피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고 이제는 우리의 욕심이나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을 동기로 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죄를 이기시고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상 우리 안에 일어난 이 영광스러운 변화를 놓치지 마시고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는 능력있는 성도들로 자신을 넉넉히 지켜내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