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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6.12.새벽예배 -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2)

요삼0101to02 - 내가 간구하노라(요삼2).pdf


20130612D (#1).mp3.zip




  문 : 요한삼서 1장 1-2절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저는 무엇을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린시절에 주로 만들던 것이 플라스틱으로 된 조립식 완구였습니다. 별르고 별러서 그거 하나 손에 들면 왜 그렇게 행복했었는지... 그렇지만 막상 그 완구를 조립하다가 다 만들지도 못하고 망쳐버린 경험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것은 급한 마음, 그러니까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만들어 보려고 조립설명서를 무시하고 이건 여기에, 저건 저기에 이리 저리 끼워 맞춰 본드로 붙이다가 잘못 붙여서 망가뜨린 것이죠. 그럴 때마다 자기 실수이면서도 어린 마음에 얼마나 속상하고 화가 나는지... 다음에는 안 그래야지 했다가도 또 반복하게 되고 욕심때문에 생겨나는 급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그런 실수를 여러번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타락하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인생을 최고의 인생이 되게 핼 수 있는지 사용방법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사용방법 중에서 이것이 깨지면 모든 것이 다 망가져 버리는 가장 중요한 원칙을 깨뜨려 버렸고, 그 때 이후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그 이전처럼 완전한 형태로 자신의 인생을 사용할 수는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 하나의 설명서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물론 성경은 단순한 인생설명서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 여기 저기에는 우리를 위해서 우리 인생의 사용법들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도 그러한 사용법 중의 하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사용법은 우리가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된 삶을 원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복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마도 모든 사람들의 목표이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수많은 복들을 어떻게 순서짓고 조율할 때 자신의 인생을 가장 성공적으로 살 수 있는지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복이 최고의 복이며, 그 복만 붙잡으면 다른 것은 자동적으로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복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그것을 얻으려고 따라가죠. 우리 믿는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여전히 눈에 보이는 복을 빌어주고 그 복을 약속하는 설교들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성도들조차도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물질적인 복이 최고의 복이고, 그 복만 있으면 다른 복은 따라오고, 저절로 행복해질까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게다가 하나님 앞에서 말입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눈에 보이는 복 때문에 이전보다 더 성공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더 많이 보아왔습니다. 복을 받는데도 순서가 있고, 그 복들에도 경중이 있습니다. 먼저 받아야 할 중요한 복을 받지 못하면 나머지 복들 또한 그다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질 못합니다.  


요한은 가이오를 정말 최고로 사랑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합니다. 복을 한 번 빌어 주어도 최고의 복을 빌어주고 싶어하고 또 기도를 한 번 해 주어도 정말 최고의 기도를 해 주고 싶어합니다. 그런 점에서 2절은 그러한 요한의 마음과 또 고민이 그대로 담겨있는 축복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의 가이오를 향한 사랑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열매이고 또 거울이라면 우리는 요한의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진실로 복을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최고의 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더불어서 그런 복들이 우리 삶과 영혼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된 것들이 어떻게 하면 우리 삶에 순작용만을 하게 되는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신앙생활이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에 맞추어 가는 것이라고 할 때,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복주심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읽고 거기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 가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고,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한 것들 때문에 망가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요한은 가이오를 위해서 세 가지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영혼이 잘 되는 것이고, 둘째는 범사가 잘 되는 것이고 세째는 몸이 건강한 것입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가이오에게 이 세 가지 복을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잘 사는 것,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 그리고 영혼의 복을 누리는 것. 보이는 대로 입니다. 이런 복들에 특별한 의미를 가져다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 가지만 모두 붙들 수 있다면 우리 삶에는 전혀 부족할 것이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저도 여러분의 삶이 이런 복들로 채워져 가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잘 살펴보면 사도 요한이 이 세가지 복을 빌어주는 방식이 조금 독특합니다. 그저 세 가지 복을 주욱 나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본문에서 꼭 배워야 하고 또 지키려고 애써야 하는 참으로 복된 인생, 부작용 없이 복된 인생의 원리가 있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하면서 축복을 시작합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우리말 성경으로는 영혼이 잘 되는 복도 빌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문장을 보면 이 복은 이미 가이오가 누리고 있는 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네 영혼은 지금 잘 되고 있다. 그러니까 그것처럼...”이라고 해석해야 정확한 해석이 될 것입니다. 요한은 가이오의 영혼이 지극히 바람직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복을 빌어줄 필요는 없었습니다. 요한이 보기에 가이오는 그의 영혼이 온전하고 바람직한 상태에 있는 것처럼 그가 하는 일들도, 그리고 건강도 바람직한 상태로 되기만 하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잘 되고, 건강하기를 빌어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이 가이오의 복을 빌어주는 중심과 맨 첫자리에 가이오의 영혼의 복이 놓여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받아야 할 복에 대해서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첫째는 우리가 받을 복에도 차례가 있는데, 가장 먼저 받아야만 하는 복이 영혼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대개 우리들은 영혼의 복 보다는 형통이나 건강의 복을 먼저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중요하고 제일 먼저 받아야 할 복은 영혼이 잘 되는 복입니다. 둘째는 순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이 복을 먼저 받아야 비로소 다른 두 가지 복은 복다운 복, 부작용이 없고 순작용만 있는 그런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우리 인생의 사용설명서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이 복을 받기를 원해야 하고, 또 이 복을 누려야 합니다. 사실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 그리고 몸이 건강한 것도 큰 복이기는 하지만 그런 복들은 꼭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런 복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차별을 원하고 또 승부를 내려고 하면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복들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로는 중립적인 것이고,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 주어지면 오히려 그런 것들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우리 인생의 사용설명서는 우리 머리나 본능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 속에 있습니다. 복 하나 받는 것도 그 사용설명서의 차례에 따라서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가장 균형잡히고 건강한, 모든 면에서 온전한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혼을 잘 챙기셔서 하나님 앞에서 영혼이 잘 되는 복을 누리시며,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른 복들을 주실 때, 그 복으로 가장 큰 유익을 누리며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