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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3.06.17.새벽예배 - 선한 것을 본받으라(요한삼서 5)


요삼0109to15- 선한 것을 본받으라(요삼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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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 : 요한삼서 1장 9-15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요한삼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요한서신으로 보아도 마지막 부분이구요. 오늘로 요한서신 설교는 모두 마치게 됩니다. 요한이 전하는 메세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메세지입니다. 사실 요한일이삼서의 거의 모든 메세지는 이 하나의 문장으로부터 다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진리 중의 하나는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영원히 사랑하시는 아들의 목숨까지도 내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그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성도가 사랑하면서 살아가야할 이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습니다. 하나님의 그런 사랑 덕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자녀인 우리들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흉내내며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의 사랑 덕분에 새 생명을 얻은 자녀들이라면 그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니까요. 


    이렇게 보면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는 것, 그리고 진정으로 구원받은 거듭난 백성이 된 것은 사랑을 통해서만 확인될 수 있고 또 증명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요한서신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셨을지 모르지만 메세지를 전하는 저 또한 마음이 편하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아킬레스건과도 같은 것이니까요. 그러면, 왜 이런 당연한 메세지가 이렇게 부담스럽고 불편할까?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이런 메세지를 들으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지 않았고, 그런 채로 너무 오랫동안 달려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예수 믿고 사는 일에 서로 사랑하는 일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듣고서 신앙생활을 해왔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사랑하기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하고 또 더 많이 애썼을테니까요. 그러나, 이제라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의 뜻을 듣게 되었으니 이제라도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기도하며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려고 애쓰면 될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과거는 문제삼지 않으시니까요.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오늘 본문이 요한일이삼서의 결론으로 너무 적절한 말씀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항상 명심하고 또 사용해야 할 실제적인 교훈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름은 아주 멋있지만 욕은 엄청 먹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디오드레베가 스스로도 사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사랑하는 일과 교회 전체가 사랑하는 일까지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은 그 당시 교회에서 굉장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저마다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크기가 다 다르지만 말입니다. 영향력은 다른 말로 권력이나 힘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든지 힘이 있는 사람이 조심해야 합니다. 영향력이 큰 사람이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작은 행동이 전체에는 태풍과 같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이 그게 선한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자신이 어떻게 생각했든 그의 작은 행동은 큰 문제를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특히 그 사람이 일부러 부정적인 방향으로 자기가 속한 곳을 이끌려고 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곳이 어디이든지 간에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향력이 주어질 때 그 영향력을 어떻게 하면 선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하며, 또 그럴 수 있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그 영향력이 나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디오드레베의 행동을 잊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디오드레베는 악한 말로 요한과 다른 사람들을 비방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마땅히 맞아들이고 도와주어야 할 순회 선교사들을 교회로 맞아들이지 않았고 또 맞아들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금하여서 내어쫓기까지 했습니다. 그 사랑많던 요한이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잊지 않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디오드레베의 행동은 도를 넘어섰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행동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악행에 속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금요일 새벽에 요한이 가이오를 그가 형제들을 사랑한 일로 칭찬했던 것을 보았는데요. 가이오의 사랑이 더 가치가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자신보다 더 힘센 디오드레베가 사랑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상황에서 베풀어진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디오드레베를 반드시 책망하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가이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하나님보시기에 아름답고 칭찬받을만한 삶을 살아가려면 우리는 이 평범한 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지만 사람은 선한 것보다는 악한 것을 배우는데 더 빠릅니다. 우리 속에는 여전히 악한 쪽으로 기우는 성향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악한 것은 본받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하지만 반대로 선한 것은 본을 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 원칙이 항상 예수믿는 사람들의 삶의 기준을 세워주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오래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리고 교회에 있으면서도 더 선해지기 보다는 그렇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 쉬운 것은 우리가 이 단순한 원리를 마음에 새기고 또 선택과 행동의 원리로 삼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도 잘 섬기지 않으니 나도 섬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착하게 하지 않으니 나도 착할 필요가 없다. 남들도 사랑하지 않으니 나도 사랑하지 않는다. 남들도 베풀지 않으니 나도 베풀지 않는다. 그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이렇게 흐르도록 내버려 두니까 우리 속에 있는 예수님의 성품이 그렇게 더디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요한이 말해 준 그 원리를 중심에 놓고 자꾸 그리로 향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악한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무엇이 선한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이런 노력에 있어서 더 효과적이고 정확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꼭 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선하지 않은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악하지 않다고 해서 그냥 따라 행하면 선한 것을 선택하고, 또 선을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꼭 어떤 것을 선택하고 행하기 전에 ‘이것은 선한 것인가?’하고 먼저 묻는 습관이 들여져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항상 선한 것만을 선택하고 또 선한 것만을 행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 어떤 것을 선택하고 또 행할 때, 그것이 선한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면,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정직한 답을 얻는다면 그만큼 악한 일에서는 멀어질 수 있고, 또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질 것입니다. 


    요한서신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사랑하라는 주님의 새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면 이런 습관이 필요합니다. 미워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랑하는 일은 누가 뭐래도 선한 일입니다. 셋 중에 선한 것은 사랑하는 것이니 그것을 하면 됩니다. 그렇게 선한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됩니다. 그러면 선한 것을 본받고 또 자동적으로 악한 것은 멀리하게 됩니다. 


    결코 이렇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요한서신을 모두 끝마치면서 단 한 가지 우리가 이것 한 가지만 기억하고 또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항상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 가장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항상 그렇게 하지 못하시더라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자신에게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느니라” 


   항상 선한 일을  생각하고 선한 쪽을 선택하심으로써 하나님께 속한 기쁘고 충만한 사람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