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0208to17-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창11).pdf
본 문 : 창세기 2장 8-17절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 묵상할 부분은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셨던 사람, 아담이 거했던 에덴동산에 대한 내용과 그 동산에서 맺었던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약속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둘은 따로 따로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담이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지킬 때에 한해서만 허락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에덴 동산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어서 관리하고 돌보도록 하신 곳이기도 하지만, 사실 하나님과 아담이 친밀하고 직접적인 교제를 나누는 교제의 장의로서의 의미가 더 컸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저녁마다 동산으로 찾아오셨고 그렇게 아담과 나중에 지음받을 하와를 만나셔서 가장 즐거운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에덴동산은, 정확하게 말씀드려서 하나님께서 에덴에 만드신 동산은 최초의 성막, 그리고 지성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나중에 보면 성막 안에는 여러가지 나무모양의 장식들이 많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 성막이 바로 잃어버린 에덴동산, 그리고 회복해야할 에덴동산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덴이라는 말은 풍요함, 기쁨, 즐거움,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시고 사람에게 주셨던 에덴의 동산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곳은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풍요하기만 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즐거움이 충만했으며 정말 행복한 곳이었습니다. 에덴이 그런 곳이었던 이유는 바로 그 곳에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 있었고, 사람이 하나님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교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세상의 중심, 그 곳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가장 귀한 피조물 살게하셨던 하나님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요? 또 거기 거했던 처음 사람은 얼마나 큰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살고 있었을까요?
에덴은 온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그 동산에서 네 개의 강이 발원했고, 사방으로 흘러가며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풍요하게 만들었습니다. 온 세상은 바로 에덴으로부터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 아담을 이끌어 에덴의 동산에 거하게 하셨고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위에서 에덴의 동산이 실제로 처음으로 지어진 성막이었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아담에게 맡겨진 역할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맡기신 일은 단순히 농사를 짓고 보호자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작하다’라고 번역된 말은 구약성경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경작한다는 뜻도 있지만, 하나님을 섬긴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며, 예배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담을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역할은 에덴동산을 중심으로 한 세상을 다스리고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아담은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도록 그렇게 지음받고 또 그 에덴에 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리의 일상생활과 그 안에서의 우리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에 있게 하셨듯이 우리를 우리 삶의 자리에 두셨으며, 하나님께서 그가 그 에덴을 돌보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게 하셨듯이 우리가 우리의 일상과 우리에게 맡겨진 사회적인 역할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성막은 우리의 삶의 자리이며, 우리는 우리 삶의 제사장이고, 우리의 일상생활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요 제사가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우리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적인 예배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그 어떤 것보다도 영적인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에덴동산의 중앙에 아주 특별한 나무 두 그루를 놓아두셨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열매가 맺히는 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가 맺히는 나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그 두그루의 나무를 보여주시면서 동산에 있는 어떤 나무의 열매도 먹을 수 있지만 단 하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금하셨습니다. 먹는 그 날에는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입니다. 이것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으셨던 언약이었으며, 또 유일한 금지사항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원래 인간은 거의 무한정의 자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산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앞으로는 온 세상에 있는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만드셨느냐고, 그것을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이 범죄하게 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들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 나무가 거기 있어야 했던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선악의 기준은 철저히 하나님에게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시는 것은 선한 것이고 악하다고 하시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스스로 선악을 구별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의 하나님이 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나중에도 살펴 보겠지만 그래서 선악과에 대한 유혹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라는 유혹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가 맺히는 나무를 만드시고 그것을 동산 중앙에 두신 것은 그것이야 말로 다른 모든 것이 허락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자신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장치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열매를 먹는 것을 금지하시면서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순종 했으니 죽음이라는 벌을 내리시는 것일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실은 이것은 그 열매를 따먹는 일이 가져올 수 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원래 인간은 인간의 자리, 그러니까 피조물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제 자리에 있을 때에만 원래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리를 이탈해서 하나님의 자리로 가려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관계를 완전히 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풍성한 생명은 없어지게 되고 남는 것은 죽음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사용해서 선택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말 기쁘고 즐거우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에덴에 살듯이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꼭 해야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내 삶을 위한 선악의 기준을 다시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무엇이 나에게 유익한지, 그렇지 않은지, 무엇은 해도 좋고 하면 안되는지... 물론 우리 스스로도 고심하며 판단해야 하겠지만, 그 기준을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둘 때, 내 생각이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의 원리에 둘 때,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가장 풍요롭게 공급해 주시는 에덴의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조금씩 조금씩 에덴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자리에서 내 삶의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듯 정말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손대지 말라고 하신 것에는 손을 대지 않고 예배의 삶을 살면 내 인생과 내 삶의 자리는 에덴의 동산이 될 것입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심으로써 여러분의 일상을 에덴의 삶으로 가꾸어 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