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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3.08.23. 금요기도회 - 아나니아와 삽비라2(사도행전 27)


행0501to11 - 아나니아와 삽비라2(사도행전2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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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5장 1-11절


처음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믿는 사람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자기의 소유를 내어놓아 그것으로 교회 안에 있는 가난한 형제와 자매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이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을 때, 이미 그들의 마음과 삶 속에는 하늘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 동안 이 땅을 하늘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움켜쥐고만 있었던 재물들을 아낌없이 부족한 형제와 자매들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는 이제 심하게 가난하여 끼니걱정을 해야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일인지 모릅니다. 교회는 이 일로 사람들로부터 큰 칭찬을 받고 융성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이 한번에 깨뜨려 버릴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땅을 팔아 교회에 내어놓으면서, 일부를 전부라고 거짓말을 하려고 하다가 하루에 모두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우리가 보기에 이렇게 극단적으로 처리하신 이유를 모두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건을 보면서 몇 가지 반드시 깨닫고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훨씬 더 무겁고 심각한 문제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정말 커다란 죄를 저지르면서도 당장 벌을 받지 않는 것을 봅니다. 죄인인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할 정도죠. 그렇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런 죄들을 가볍게 보시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사람들의 죄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심각하게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죄들을 그냥 보고만 계실까요?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이고, 둘째는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바로 잡고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징벌하시기 보다는 용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벌을 내리실 수도 있고, 또 하나님께서 죄를 바로잡으시는 날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이런 저런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들 또한 그 사람들처럼 죄 자체를 가볍게 생각하게 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모습 속에서 오히려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러면서도 언젠가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실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죄가 가지는 악한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굉장히 개인화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까지도 개인적인 문제로만 생각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개인적이기만 한 죄는 없습니다. 일단은 그 죄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저질러 집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을 계획하고 또 실행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속이고, 성령님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랬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겠죠. 그렇지만 알든 모르든 그들은 교회를 속이고, 사도들을 속이려고 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실은 그들의 죄를 그렇게 큰 죄로 만든 것입니다. 모든 죄는, 비록 그것이 겉으로는 사람들을 향해 있을 때에라도 결국에는 하나님께 대한 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알든 모르든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는 교회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성도 개인의 죄는 어떤 모양으로든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손가락을 다쳐도 온 몸이 몸살을 앓습니다. 두통이 생기면 꼼짝을 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몸의 특징입니다. 몸은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 곳이 문제가 생기면 전체가 그 문제를 떠안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몸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머리되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도들 모두가 영적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이것이 교회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성도 한 사람이 죄를 가지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 죄가 밝혀지든 그렇지 않든 그 영향은 교회 전체에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사실 예루살렘 교회를 크게 시험들게 하고 또 와해시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아마도 사탄도 그것을 알았기에 그런 식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유혹해서 범죄하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그런 충격적인 사건에도 거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2절을 보면 여전히 사도들의 사역은 계속되었고 교회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한 사도들, 특히 베드로의 올바른 리더십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결코 이 일을 숨기려 들거나 비공식적으로 은밀하게 처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저지른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제대로 파악했고, 이 일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이 일이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오히려 더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성도가 심각한 죄를 짓거나 혹은 교회에 어떤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겼을 때, 교회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을 그저 숨기려고만 하고 유야무야로 만들어 버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주로 두 가지입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은혜롭지 못하다는 것과 그러면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에 따라서 그저 덮어주고 용서해 주어야 할 것들도 있고 다른 성도들에게는 비밀로 해 주어야 할 일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래서는 안될 문제들까지도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용서일까요? 그게 은혜를 지키는 방법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넘어가 주면 잘못한 사람이 정말 크게 뉘우치며 회개할까요? 그리고 일어났던 빌미스러운 일들은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교회일수록 문제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런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교회 안에서 함부로 행하게 됩니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무조건 용서해 주고 이해해 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아이들을 혼내고 바로 잡아야 할 때,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아이들은 뭐가 바른지 뭐가 그른지를 배우지 못 합니다.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도덕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굉장히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음에도 또 그렇게 하게될 가능성이 굉장히 큽니다. 또 잘못해서 혼이 날 때도 자신이 왜 혼나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 부모들은 화가 나지 않아도 화를 내야할 때가 있고, 꼭 그만큼 혼낼 필요가 없을 때에도 일부러라도 따끔하게 꾸짖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나 성도도 비슷합니다. 교회나 성도도 따지고 보면 인간이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의 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움과 댓가를 치르는 것을 통해서 해서는 안되는 일들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또 해야할 가치가 있는 일들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죄인인 인간에게는 부끄러움도 필요하고 댓가를 치르는 것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움을 당하고 징계를 당했다고 해서 용서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용서를 받는 일과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혼동하니까 징계가 행해지려고 하면 무조건 교회가 사랑이 없다느니, 용서를 모른다느니 하는 오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받아도 책임을 지는 태도는 가르쳐 져야 하고 또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에 대한 분별력과 조심성을 배우지 못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징계를 받아야만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용서를 했다고 해서 반드시 징계가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두 가지는 별개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징계는 사실 교육과 훈련을 위한 것이지 징벌을 위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적어도 성도라면 누가 문제삼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행한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사과를 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용기와 정직함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도 인간이어서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할 수 있지만, 정직하게 사과하고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일 때, 그 죄가 자신을 더럽히고 또 공동체를 힘들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사과를 하고 정당한 댓가를 치른 죄만이 더 이상의 후유증과 부작용을 남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 그냥 묻어버리고 넘어가면 언젠가 그게 다시 삐죽이 튀어나와 다른 문제들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죄는 언제든지 또 다른 죄악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심어두고 묻어두면 안됩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베드로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비록 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을 그냥 묻어두지 않고 바르고 정직하게 처리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보면 그 일을 그렇게 처리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자신이 가르치는 사랑하는 성도들입니다. 게다가 비록 거짓이 섞여 있기는 했지만 땅을 팔아 교회를 위해 내놓겠다고 가지고 왔습니다. 굳이 그 자리에서 그들의 위선과 거짓을 밝힐 필요가 있었고, 그런 식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오히려 그 자리에서는 적당히 칭찬하고 넘어간 다음에 나중에 따로 불러서 조용히 타이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이 일을 정직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그 결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위선과 거짓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그래서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그것을 보고 들은 사람들을 커다란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가 이렇게 함으로써 결국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으로 인해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엄위하신 분이신지를 몸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커다란 죄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죄를 짓는 일에 대해서 살아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목격했거나 전해 들은 사람들 중에서 그 누가 감히 이런 비슷한 죄를 또 다시 범할 수 있었겠습니까? 추측해 보건데,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 일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교회를 바르고 건강하게 지켜내는 방패의 역할을 해 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교회 안의 모든 잘못과 죄악들이 이런 식으로  처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 하나의 일은 저마다 예민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바라보고 또 판단해야 하며, 교회 안에서는 분명히 덕과 사랑이라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그렇지만 오늘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는 이 말씀이 전해주는 원칙만큼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한 것, 교회 안에서 이런 저런 죄를 저지르는 일에 대해서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잘못을 해도 잘못인줄 모르고, 잘못인줄 알아도 사과를 하거나 최소한의 책임을 지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당장 사람도 어떻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도 가만히 계신다고 해서 그 일이 별 일이 아닌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들을 굉장히 무겁고 심각하게 보고 계십니다. 교회와 성도는 공히 하나님의 이런 생각과 판단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성도와 교회의 잘못에 대해서 정직하게 판단하며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처리하고 또 책임지려고 노력해야 하며, 성도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정직하게 인정하며 기꺼이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려는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그 잘못이 교회와 연관되어 있다면 교회 앞에서 공식적으로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또 권징을 받아야 할 일이 있다면 교회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좋은 교회는 잘못이 없는 교회도, 실수가 없는 교회도 아닙니다. 좋은 교회는 목회자나 성도나 정직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교회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르게 지켜주시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결코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정직하기는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직함으로써 우리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지켜주시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