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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4.05.02. 금요기도회 -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3(사도행전 59)


행1036to43 -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3(사도행전5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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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10장 36-43절



오늘은 ‘화평의 복음’에 대해서 배우는 세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난 두 시간에 걸쳐서 복음과 관련된 아주 아주 중요한 내용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이 두 가지를 잘 기억하고 계시지요? 다시 한 번 되짚어 볼까요?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죠? 그것은 바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인데, 복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그러니까 온 우주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왕으로 선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따라해 볼까요? “예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복음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한 번 잘 못 세워 놓으면 웬만해서는 무를 수도 없고 그 임기가 끝날 때까지 그의 지도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그야 말로 홍역을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그가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 아니라 한 왕국의 왕이라면 실제로 그 나라와 백성들은 그 왕이 죽을 때까지 그 왕의 통치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 왕이 어떤 왕이냐 하는 것이 정말 정말 중요해 집니다. 하물며 그 왕이 영원히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라면 그 왕이 어떤 왕이냐 하는 것은 얼마나 더 중요해 지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내어 주신 선하신 분이 우리의 왕이시라는 사실보다 더 기쁘고 든든한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낮아지심을 최고의 영광으로 삼으신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메시야, 우리의 왕이시라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장 복된 소식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유익을 끼치게 되려면 우리 편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예수님의 다스리심 아래에 자신을 복종시켜야만 합니다. 왕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 왕의 다스리심을 받지 않는다면 왕이 제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야 말로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복음이 복음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이 회개란 단순히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회개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 복음을 듣기 전에 우리가 우리의 왕으로 섬기며 따랐던 사탄과 우리 자신에게서 돌이켜서 참된 왕이신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분을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다스리심 아래 순종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왕이신 예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들은 버리고 떠나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회개라는 말을 꺼려하고 힘들어 하지만 그것은 하나를 버리고 백을 얻는 것이고, 불완전한 것을 버리고 완전한 것을 얻는 것입니다. 나쁜 것을 버리고 지극히 좋은 것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투자의 가치는 투자하는 액수 자체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투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에 따라 가치가 결정됩니다. 100만원을 투자했을 때 10만원만 건질 수 있다면 누구도 그 투자를 지혜로운 투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100억을 투자하더라도 1000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나게 가치있는 투자입니다. 회개는 투자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를 속입니다. 그 투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어마 어마한 유익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투자해야 할 액수가 너무 많다고, 회개를 통해 내려놓고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말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회개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큰 대가가 있습니다. 그 동안 살아온 삶 전체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게 해서 얻는 은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말 새 발의 피이고,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를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왜 그렇게 커다란 복이 될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이 세상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삶의 방식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은 마치 전구를 건전지에 연결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밝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 빛이 흐려지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꺼집니다. 회개란 그렇게 건전지에 연결된 선을 빼서 절대로 꺼지지 않는 발전기에다가 연결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 밝기는 건전지에 연결해 놓았을 때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차이가 날까요?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차이가 납니다. 발전기에 연결해 놓은 전구는 절대로 꺼지지 않습니다. 항상 그 전구가 발할 수 있는 최고의 밝기를 유지합니다. 건전지에 연결된 선을 떼서 발전기에다 연결할 때, 그 사이에 전구는 꺼집니다. 우리가 회개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고통이나 손해는 바로 그 사이에 경험하는 어둠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도 아니고 금새 더 풍성하고 완전한 은혜로 되돌아 오게 되어 있습니다. 회개를 불쾌해 하거나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열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려면 이런 의미의 회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우리의 진짜 왕이 되어주시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다스리심 아래에서 다른 것을 따라 살 때에는 전혀 경험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십자가 이야기 먼저 꺼내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셨던 일들로 부터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이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메세지를 떠올립니다. 물론 이것이 복음의 핵심인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일들까지도 모두 포함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셨던 일들은 이제 드디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왕으로 다스리시기 시작하셨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이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들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8절을 다시 한 번 함께 읽어볼까요?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들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할렐루야! 정말 영광스러운 말씀입니다. 너무 좋고 소망스러운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을 부으셨다고 말합니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은 누가 받습니까? 제사장도 받고 선지자도 받습니다만, 무엇보다도 기름부음을 받는다고 하면 그가 왕으로 인정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을 부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왕은 왕이되 하나님의 권한과 능력을 지닌 왕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그래서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유대를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들을 고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셨던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 짧은 구절 뒤에는 구약성경의 굉장한 예언 하나가 배경이 되어 숨어 있습니다. 이사야서 61장 1절부터 3절인데요. 거기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기록되어 있는 일 모두가 바로 왕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면서 행하신 선한 일과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들을 고치신 일입니다. 


우리 왕이신 예수님께서 유대 땅을 돌아다니시면서 그 땅을 다스리실 때, 그 곳에서는 정말 이사야서 61장에 기록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들이 고침을 받았으며 무언가에 붙들리지 말아야 할 것에 붙들려 포로가 되었던 사람들은 모두 자유를 얻었습니다. 슬퍼하는 자들은 기쁨으로 화관을 썼고 근심하는 자들은 찬송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렇게 회복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세상의 왕으로서 행하신 일들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복음서에 그야 말로 부지기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복음이 전해졌기 때문에, 복음이신 예수님께서 일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기도 했지만 이런 일들 자체가 복음, 그러니까 사랑의 왕, 겸손의 왕이신 우리 예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신다는 복된 소식이기도 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 그래서 왕이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이 일의 유익은 이렇게 어마어마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셔들이면 그분은 우리의 상한 마음을 고치십니다. 열등감, 비교의식, 세상과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 상처로 거칠어지고 찟겨진 마음을 고치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닮은 마음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으십니까? 그래서 그 상처 때문에 내가 아프고 남을 아프게 하십니까? 자꾸 여기 저기 부딛히시나요? 자신이 못 났다는 생각 때문에 화가 날 때가 있으신가요?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 마음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 분이 다스리시고 온전히 고치시도록 그 분의 손에 우리의 마음을 올려놓아 드려야 합니다. 그 분이 왕이 되시면 고쳐집니다. 그 분이 다스리시면 온전해 집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 포로되고 갇힌 자들이 자유를 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에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이 묶여 계십니까? 여러분의 삶은 무엇에 묶여 부자유하십니까? 반복되는 죄입니까? 욕심인가요? 사람들의 이목입니까? 아니면 과거의 경험이나 지금의 현실인가요? 미래에 대한 근심과 걱정, 그리고 두려움 인가요? 그 무엇이라도 우리를 묶어 놓아 사탄의 포로가 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주님께 내밀어야 합니다. 나는 풀 수 없으니, 나는 끊어낼 수 없으니 왕되신 주님이 그 능력으로 끊어주시고 풀어 달라고 묶인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의 태도를 주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왕이신 예수님이 끊어주시고 풀어주셔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 주십니다. 재대신 화관을 주시고, 슬픔대신 희락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찬송의 옷으로 입혀 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이 땅에서 죄를 지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이런 죄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재를 뒤집어 쓰고 금식하며 옷을 찟고 회개하듯이 그렇게 애통해 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 때문에 재를 뒤집어 쓰고 애통해 하며 기도할 때, 머리에 뒤집어 쓴 재를 씻기시고 우리 머리에 화관을 씌워 주십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슬픈 금식을 그치게 하시고 기쁨의 기름으로 발라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대신 찟겨진 옷을 벗기시고 찬송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인의 자리에서 일어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의로운 나무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높이는 사람들이 됩니다. 다른 문제들도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죄의 문제를 절대로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보게 될 때, 그 죄 때문에 견딜 수 없어 애통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애통함이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 애통함이 우리 죄를 용서하고 죄로 인한 슬픔을 기쁨으로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주님 앞에 내놓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애통함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상한 심령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기시고 우리를 다시 기쁘고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광스럽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들이고 그 분의 은혜의 통치 아래 거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상하고 찟긴 마음이 치유함을 받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묶고 있는 온갖 것들로 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죄로 인한 슬픔과 애통을 찬란한 용서의 기쁨으로 바꿔 주십니다. 죄인을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꿔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우리를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나요? 그 누가 이런 은혜를 줄 수 있습니까? 그 누가 우리를 이러한 복 가운데서 살게 해 줍니까?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아직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그저 약속만 있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이미 이런 일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수없이 현실이 되었던 그런 일들이며, 그 후에서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의 참 백성이 된 사람들에게 수도 없이 일어나고 또 일어난 기적이었고, 부어진 은혜 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왕이시라는 이 복된 소식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왕이 되실 때, 우리가 그 분의 다르심 아래에 거할 때에만 누릴 수 있는 지극한 복, 이 세상은 세상 전체를 다 준다고 해도 줄 수 없는 그런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자신의 참된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 그 분께 순종하며 그 은혜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삶, 이것보다 복된 것은 없습니다. 이것보다 좋고 이것보다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혹시 아직 여러분의 삶 속에 아직도 복음이 비춰지지 않은 구석이 남아 있다면 이제 그 곳까지 온전히 복음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삶의 구석 구석까지 다스리시도록 온전히 의탁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그 시절 갈릴리와 유대 온 지역에 퍼졌던 그 복된 소식을 듣고 최고의 복이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