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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4.05.16. 금요기도회 -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5(사도행전 61)



행1036to43 -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5(사도행전6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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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10장 36-43절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 주까지 사도행전 10장을 통해 복음에 대해서 네 차례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 확실히 기억하시겠죠?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이죠?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들과 온 세상의 왕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선포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왕이 되셨고, 부활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왕으로 선포되었다는 내용까지를 포함합니다. 바로 이 모든 것을 믿는 것이 바로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믿는 믿음 안에는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았고, 여전히 땅에 살아도 예수님의 다스리심 속에서 영광스럽고 풍성한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기 때문에 참된 성도들은 자신이 믿는 그 복음을 통해서 성품이 변하고 삶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뜻이 중요해 지는데, 이 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그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고, 그렇게 우리의 속사람도 변하고 살아가는 모습도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니 정말 제대로 된 삶, 이 세상에 묶이지 않은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이란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 성도는 복음 때문에 자기 속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아름답게 변하고 삶이 영광스럽게 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져 갑니다. 그리고 복음은 바로 이런 증인들에 의해서 불 번지듯이 번져 가게 됩니다. 제가 이번에 복음을 풀어 전하면서 진실로 소망하는 것은 여러분 모두가 복음을 경험한 경험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 때문에 속 사람이 아름다워지며 복음 때문에 여러분의 삶이 영광스러워지는 복을 누리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다스림과 하나님 나라를 맛보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정말 내가 예수 믿으면서 이렇게 복음을 믿고 이렇게 복음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런 복을 받고 또 누리고 있는가 꼭 한 번 체크해 보시고 그런 삶을 위한 기도와 간구를 다시 시작하시기를 바라고, 그래서 그런 복을 누리며 사는 참으로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자신들에게 다시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에게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셨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이야기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증거해 줄 것을 특별히 당부한 내용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복음에는 예수님의 세상에 오신 것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와 사람들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통치를 시작하셨고, 죽음과 부활을 위해서 왕이 되시고 왕으로 선포되셨다는 놀랍고 은혜로운 소식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탄의 손아귀에서 건짐을 받아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려지게 되었다는 은혜로운 소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사람들에게 반드시 전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살아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재판장이시라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내용이 복음에 있어서 그만큼 중요하고 또 중요한 내용이라는 뜻입니다.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이 세상에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 중에서 이 둘 중의 하나에 속하지 않는 존재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살아있는 사람이거나 죽은 사람이지 다른 상태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 말은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살았거나 혹은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재판장이라는 뜻이 됩니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말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믿는 사람들조차 하나님의 심판이나 혹은 지옥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어 하거나 아주 유치한 것을 치부해 버립니다. 설마 사랑의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셨고 그 지옥에 사람들을 영원히 가두겠느냐고 말합니다. 지옥은 그저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비유이지 현실은 아닐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원히 불타는 곳, 구더기가 죽은 자들의 살을 영원히 파 먹는 것 같은 그림들은 아주 옛날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사람들을 겁주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사람이 마지막 심판을 받고 가게될 지옥이 정말로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곳을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곳은 과연 갈만할 곳일까요? 가서 지낼만한 곳일까요? 우문이죠? 정말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옥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이 없다면 하나님은 절대로 공의로우신 분이 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곳은 분명히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곳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거하게 될 하나님 나라는 정말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과 만족, 그리고 선함과 풍성함, 따스함과 온전함으로 가득 찬 곳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더 표현할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 정말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그야 말로 극단적인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는 곳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 하나님 나라와는 정반대가 되는 곳이겠죠? 그래서 거기는 아무런 기쁨도 아무런 만족도 없습니다. 선함도 없고 궁핍함만 있을 뿐입니다. 고통만 가득한 곳입니다. 그런 곳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 세상이 이런 모양이냐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사람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악함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그래도 여전히 굴러가고 유지되어져 가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양심과 건전한 양식을 사용하셔서 그래도 이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악을 억제해 주시는 은혜가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아수라장이고 아비규환이 될 것입니다. 지옥이란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억제해 주시는 은혜가 전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숨겨져 있고 억제되었던 인간의 악함이 있는 그대로 다 터져나와서 가득 차 있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세상이 상상이나 가십니까? 지옥은 이런 곳입니다. 정말 지옥같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그런 곳입니다. 더 이상 악할 수 없는 사람들이 더 이상 배고프고 목마를 수 없는 상태로 더 이상 불행하고 더 이상 슬퍼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로 영원한 고통과 분노 속에서 거하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지옥이 이런 곳인데 과연 한 번 가볼 수도 있는 그런 곳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지옥은 말 그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절대로 가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죽었든 살아있든 간에 모든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가게 할 것인지 혹은 지옥으로 가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복음은 예수님께 그 모든 권한이 속해 있다고 선포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원칙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그렇게 하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불안을 느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예수님께 그런 권한이 있는 것만큼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심판주 되심에 대해서 말한 후에 43절에서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람을 받는다 하였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복음이 들려지는 순서입니다. 복음은 구원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인간이, 그리고 우리가 은혜가 없다면 지옥 밖에 갈 곳이 없는 죄인임을 분명하게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복음으로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실 심판주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소식이 정말 두렵게 들려질 때, 비로소 그 사람은 복음을 참으로 복되게 들을 수 있습니다.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감격이 없는 것은 예수님이 심판주라는 사실과 그 분이 우리를 보내실 수도 있는 지옥이 얼마나 참혹한 곳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감격이 없는 사람들은 결코 그것 때문에 영적으로 긴장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나태해지고 느슨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사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견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심지어는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할 수 없다고 고백할 정도로 든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믿음도 열심도 그를 따라갈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이 고린도 전서 9장 27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 함이로다” 바울에게 구원의 확신이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저 형식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너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지옥은 정말 가면 안되는 곳이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것을 결정하실 자신의 재판장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좋은 믿음을 가지고서도 계속해서 말씀 앞에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던 것입니다. 


복음은 너무나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들려 주시지 않으셨다면 절대로 들을 수 없었던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식입니다. 그렇지만 복음은 절대로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을 나태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 복음은 거짓 복음이거나 아니면 턱없이 부족한 복음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선포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 분 안에서 안전하고 풍성하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복음은 그 예수님을 온 우주와 모든 사람들의 심판주로 선포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고 두려워 하게 만듭니다. 복음은 애초부터 이 두 가지 모두를 말해 줍니다. 너의 죄를 위해서 돌아가시고 너의 왕이 되신 그 좋으신 예수님이 너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시는 심판주이기도 하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도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그저 선하신 우리의 왕이시니 그저 편하고 느슨하게 예수 믿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심판주이시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들은 우리, 그 복음을 통해 예수를 믿게 된 우리는 그 분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요? 분명히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며 우리의 왕이 되어주신 일에 대해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 은혜를 누리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합니다. 우리는 동시에 긴장해야 합니다. 영적인 긴장을 늦추면 안됩니다. 우리의 구원을 놓치면 안된다는 긴장, 절대로 지옥에 가면 안된다는 두려움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예수님이 심판주이시기에 그 분 앞에서 두려워 하며 긴장하며 살아야 합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분명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할 것 다 하면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예수를 믿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즐거움과 행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할 것 다하면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사는 사람들을 알 수 없는 참된 행복과 만족, 기쁨과 즐거움이 참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주어지니까요. 성도 여러분, 두려움이 없는 신앙, 그래서 긴장이 없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할 것 다하고 누릴 것 다 누리는 신앙은 적어도 참된 복음 위에 세워진 진짜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믿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에 합당한 삶을 지닌 성도들이 되기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정말로 복음을 믿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의 목사로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믿는 바에 대해서 참되게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심판주이신 예수님에 대한 건강한 두려움을 가지고 복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로, 그 은혜와 영광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또 성품을 지닌 사람이 되기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열정을 꼭 회복하시고 정말 열정적으로 예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삶에서 예수님의 왕되어 주시는 풍성함과 심판주 되시는 영광이 모두 드러나도록 결단을 내리시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영적인 게으름을 추방해 버리십시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부지런히 주를 섬기시고 또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구원자 되심과 심판주 되심을 단단히 붙들어서 확신과 영적인 긴장 가운데 사는 참 복음을 믿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