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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4.05.23. 금요기도회 -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6(사도행전 62)


행1036to43 -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6(사도행전62).pdf


20140523FE (#1).mp3.zip





본문 : 사도행전 10장 36-43절



오늘이 같은 본문으로 설교를 하는 여섯 번째 시간이고 또 마지막 시간입니다. 정확하게는 일곱번째 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할 때, 두어 번쯤 설교하면 이 본문의 설교가 끝날 것 같았는데, 첫번째 설교를 마치고 나서 든 생각은 이 말씀의 설교를 그런 식으로 끝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 되든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부담을 주시는 내용이 다 마쳐질 때까지는 몇 번이 되든 설교를 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고, 그래서 오늘까지 일곱 번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회수로만 보면 굉장히 많이 설교한 것 같지만 저는 이렇게 설교를 하면서 저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풍성함과 영광에 대해서 제가 아는 것이 너무나 일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 되어서 이것도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꾸짖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너는 목사가 되어서 복음에 대해서 그 정도 밖에 알지 못하니?”라고 꾸짖으시는 것 같았고, 또 “너는 네가 전하는 복음을 정말로 믿고 있고 거기 순종하고 헌신하면서 살아가고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죄송스럽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서 두 가지 아주 소중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이제라도 정말 복음의 풍성함과 영광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되자는 결단이었고 둘째는 이제는 정말 복음을 제대로 믿고 그 복음에 제대로 순종하자는 결단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결단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풍성하게 복음을 알게 하시고 또 경험하게 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이 꼭 기도해 주십시오. 장목사가 복음에 미치고 또 복음에 진실로 순종하는 목사가 되도록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어떤 사람이 복음을 듣고 아주 극적인 회심을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출발점이지 끝이 아닙니다. 복음이 우리의 몸에 익숙한 옷처럼 되어지고 우리 삶과 인격에 스며들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처음 복음을 듣고 그 복음에 반응할 때, 복음은 우리가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의 역할을 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복음을 듣고 신앙의 세계로 들어오면 복음은 그 때부터 우리가 가야할 길과 또 길 안내자가 되어 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게 되거나 혹은 길을 잃어버렸을 때 다시 돌아가야 할 기준점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또한 신앙의 감격과 풍성함이 사라졌을 때는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는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역할을 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복음은 그 어떤 순간에라도 필요 없는 순간이 없습니다. 처음 영적으로 출생할 때부터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복음을 붙들고 있어야 하며 그 복음으로 돌아가고 또 돌아가는 일을 그만두면 안됩니다. 


지난 시간까지 이런 복음을 믿는 일에 대한 여러가지 내용을 살펴 보았는데요. 어떠셨습니까? 복음을 믿는다는 것, 참으로 복음에 순종한다는 것이 전혀 간단한 일이 아니죠? 죄를 회개해야죠. 주인을 나 자신에서 예수님으로 바꿔야죠. 그렇게 바뀐 주인에게 순종하며 살아아죠. 또 재판장 되시는 주님 앞에서 긴장하며 살아아죠. 이게 정말 복음인지 율법인지 헷갈릴 정도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고 또 요구 하나 하나가 무겁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교회에서는 복음 다운 복음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복음은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율법이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는 능력이 있는 것이지,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할 일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만들어 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이 할 수 없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것은 율법이 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쉽게 비유한다면 율법 안에 있는 인간은 기껏해야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됩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종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실까요? 자녀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실까요?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종은 그저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인은 만족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이미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녀로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마음을 다하여 진심으로 굳이 요구하고 명령하지 않아도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살아갈 것을 바라십니다. 이게 무리한 요구일까요? 아닙니다. 만약 이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녀의 삶이 아니라 종의 삶을 요구하시고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하나님은 정말 이상한 아버지이실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진짜 아버지시라면 독생자를 내어 주시면서 우리를 자녀 삼으신 아버지시라면 그 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고상하고 거룩한 삶을 살라고 요구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일을 시작되게 하고 지속되게 하며 또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애초부터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고 붙들고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43절은 그렇게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복음을 믿는 것은 ‘그’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하느냐?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믿음만이 예수님의 이름을 힘 입어 우리에게 죄 사함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이 죄사함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밖에는 다른 것을 통해서 절대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기죠? 그러면 왜 우리는 꼭 죄 용서를 받아야만 하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그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한 구절이 있는데 바로 이사야서 59장 2절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게 함이니라” 죄는 정말 무서운 역할을 합니다. 그 죄가 단지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죄가 정말 무서운 이유는 그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기 때문입니다. 그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려서 하나님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그렇게 무서운 일이 될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야고보서 1장 17절 말씀이 가장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변함 없이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언제나 선한 것을 주고 싶어 하시고 또한 선한 것을 주십니다.  구원도 주시고 은혜도 주시고 복도 주시고 영광도 주시고 기쁨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정말 모든 좋은 것은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 부터 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런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죄가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좋은 것들, 하나님께서 주고 싶어하시며 또 우리가 꼭 받아야 할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각종 좋은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런 좋은 것들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받을 수 없으니 인생은 항상 풍성함이 없고 기쁨과 만족을 모르며 참 행복과 거리가 먼 인생이 되고, 게다가 그 죄 자체가 만들어 내는 악한 것들만 쌓여가는 그런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영원한 형벌 밖에 없게 되고요. 그래서 죄는 반드시 처리되어야만 하는데, 인간에게는 그 죄를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원죄이든 스스로 짓는 죄이든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꼭 믿어야만 하는 이유,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무리 많고 무겁더라도 그 복음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그 죄가 처리되고 용서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다시 하나님을 향하는 길이 열리고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각양 좋은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사를 할 때, 장사에 들어갈 돈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그렇게 투자했을 때 얼마가 되돌아 올 것인가에 집중해야 장사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믿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댓가에 집중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절대로 복음을 복음답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그렇게 복음을 믿었을 때, 그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풍성할 것인가 하는 것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크고 많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복음을 복음답게 받아들일 때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정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은혜, 그 기쁨, 그 풍성함, 그 자유함, 그 영광스러움 … 우리는 복음 안에서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참 복들을 풍성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36절에서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면서 이 복음을 “화평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결국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평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이런 역할을 하는 이유는 복음이 우리 힘으로는 절대로 허물 수 없는 죄라는 장벽을 허무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단지 처음 예수를 믿을 때 뿐만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그렇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래서 죄의 형벌인 죽음으로 부터도 자유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죄의 협박과 두려움에 묶이지 않고 충분히 죄를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또 복음은 우리가 죄를 지어도 다시 용서받고 다시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길을 항상 열어 놓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죄를 이기게 만들어 주고 또 죄를 지어도 용서받게 해 주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게 해 주고 그 화평이 더 커지게 만들어 줍니다. 그 화평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더 좋은 것들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이런 화평인데, 그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조금 크고 어렵다고 해서 그 복음을 복음답게 받아들이는 일을 포기한다면 이 세상에 그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 화평이 바로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가능하게 하고 또 더 풍성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바로 그 화평을 가져다 줍니다. 복음은 죄 때문에 갈라졌던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다시 회복되게 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각양 좋은 것들과 은사를 가져다 줍니다. 영생을 얻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맛보며 살게 해 줍니다. 그 풍성함과 자유함, 기쁨과 영광을 여기서도 누리게 해 줍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놓치면 안됩니다. 이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에 무관심하면 안됩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중에 복음을 복음답게 믿고 받아들인 적이 한 번도 없는 분들이 계신다면 꼭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주신 그 복된 기회를 그냥 흘려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 십년 교회 다니셨어도 여전히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모시고서 살고 있지 못하다면 이제는 꼭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정말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습니다. 나도 참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은 이 길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그렇게 하셨지만 지금은 많이 느슨해 지신 분이 계신다면, 이제 다시 복음으로 되돌아 가셔야 합니다. 다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순종하며 사는 믿음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잃어버렸던 복과 영광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정말 복음 안에 거하는 참 복음의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각양 좋은 것들로 충만한 삶,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빛나는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