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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5.02. 새벽예배 - 쌓아둔 곡식이 심히 많아(창세기 137)



창4146to57 - 쌓아둔 곡식이 심히 많아(창13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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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41장 46-57절



바로는 요셉에게 자기의 인장반지, 그러니까 옥쇄를 끼워주었습니다. 애굽의 2인자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상징인 수레도 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온의 제사장의 딸까지 그에게 주었습니다. 요셉은 당시의 기준으로는 가히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쥐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이런 권력을 손에 넣었다면, 그것도 억울하게 종살이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이런 성공을 얻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그 성공 때문에 자신의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성도들 뿐만 아니라 목회자들 중에서도 많이 보았습니다. 어렵게 살고 또 힘들게 목회 하실 때는 참 좋은 분들이었는데, 부자가 되고, 그런게 과연 있을지 모르지만 소위 목회자로 ‘성공’하면서 부터 삶도 신앙도 심지어는 성품도 일그러지는 분들을 굉장히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은 어려웠을 때의 경험이 남긴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서 그 자리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은 ‘보상심리’라는 것이 작동하게 되는데, 여기 사로 잡히게 되면, 그 자리와 성공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것에 따라 살아가기 보다는 ‘그 동안 고생했으니 지금 부터는 한 번 누려보자’라는 욕망의 함정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그 사람을 망가뜨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도 상처를 받지 않고서 은혜 안에서 자족하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요셉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믿음과 그 믿음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알려줍니다. 그는 형제의 손에 팔리고 애굽의 종이 되었으며, 정직하게 행하려가다 옥에 갇혀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고생했지만, 요셉에게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습니다. 46절은 처음 총리로서 일을 시작한 그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요셉은 그냥 앉아서 아랫 사람에게 모든 일을 시키고 쉬고 즐기지 않았습니다. 직접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애굽이 좀 넓습니까? 그런데 그는 그 넓은 애굽 땅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했습니다. 물론 혼자 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처음에 자신이 바로에게 제안한 대로 중간관리를 세워서 자기 대신 업무를 맡게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보고나 받으면서 탁상행정을 펴지 않았습니다. 온 애굽을 돌아다니면서 그 일이 제대로 진행되어져 가는지를 잘 살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입니다. 상황이 변하고 신분이 변한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서의 올바른 태도,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감당하는 모습까지 변해서는 안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에도, 그리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도 자신이 맡은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묵묵히 변함없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것을 일컬어서 성경은 ‘신실함’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실함은 성경이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신실함은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정직하고 신실한 섬김 덕분에 다가오는 흉년에 대비하는 계획은 차질이 없이 제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성경은 그 풍년이 얼마나 대단했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쌓아 둔 곡식이 바다의 모래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었더라” 그러나 그런 풍년 또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끝이 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해 부터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엄청난 흉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흉년은 애굽에만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을 포함한 그 지역 전체에 똑같은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말 그대로 식량이 없어서 난리가 났습니다. 곧 굶어 죽게 생길 정도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애굽은 끄떡 없었습니다. 지난 7년의 풍년 기간 동안 쌓아 놓은 정말 헤아릴 수 없는 양식이 준비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양식은 그저 애굽만 살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근동지방이라고 불리는 그 지역 전체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애굽의 백성들도 그 양식을 사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각국 백성들 또한 애굽으로 내려와서 곡식을 구입했고 그것으로 그 극심한 가뭄을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애굽에 그만큼의 곡식이 비축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 지역 사람들은 그 가뭄에 모두 멸절해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애굽에 찾아온 7년 동안의 풍년은 좁게 생각하면 그 다음에 애굽에 닥쳐 올 7년 동안의 흉년을 준비하기 위한 준비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7년 동안 애굽이 경험한 풍년은 단순히 애굽이 경험하게 될 7년 동안의 흉년만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기에는 지나치게 풍성한 풍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이 그런 복을 받았던 이유는 그저 애굽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애굽은 그 어느 지역보다도 비옥한 곡창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7년 동안의 심각한 가뭄기간 동안 애굽의 곡창지역을 그 지역 전체를 위한 양식을 책임질 곡창으로 사용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 이상의 복을 정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 혹은 어떤 공동체나 나라에 왜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필요 이상의 복을 부어주시는지 그 이유를 배우게 됩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와! 신난다. 정말 감사하다.”에서 멈춰 섭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나 가족 정도를 위해서만 사용합니다. 아니면 더 많은 재산을 모으는 도구로 사용하구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 이상의 복을 부어 주시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을 위해서 아니라 그런 복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서 입니다. 그를 가뭄 기간 동안의 애굽처럼 사용하시려는 것이죠. 


제가 예전에 어떤 장로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로서는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디서 들으셨는지는 모르지만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돈 버는 것도 은사다”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 이야기의 속 뜻인 즉, 어떻게든 돈 많이 버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재주이니 그가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사용하든 그 사람 소관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현재 한국 교회 성도들의 상식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백 번 양보해서 돈 버는 것도 은사라고 치더라도, 성도라면 돈을 버는 일에 있어서도 정직하고 바람직한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힘들어 할 사람이 생기지 않을 방법으로, 그리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벌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그것을 정말로 은사로 여긴다면 은사답게 사용해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은사는 단순한 재주가 아닙니다. 은사는 항상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한 도구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남들보다 많은 복을 주신다면 그 복을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돈 버는 것이 ‘은사’가 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다운 복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전혀 상관 없는 애굽을 그렇게 사용하셨다면 우리들은 얼마나 더 그렇게 아름답고 풍성한 도구로 사용하고 싶어하실지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애굽이 받은 복은 애굽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이 애굽만을 위한 복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복이 되게 했던 것은 바로 그 안에서 사심 없이 자신의 소명을 감당했던 요셉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우리 신앙의 문제는 대부분 복에 대한 잘못된 개념에 있습니다. 성경의 복은 결코 그 복을 받은 사람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영적인 자녀들에게는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호수가 아니라 저수지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릇이 아니라 파이프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도 복된 삶을 살아야 하겠지만,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받은 복을 그 복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쌓아놓고 움켜 쥐려고만 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인간은 그 어떤 순간에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복이 있다고 여겨 지신다면 꼭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흘려 보내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흉년기에 애굽같은 역할을 하시고, 또 요셉같은 역할을 하시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스스로도 복된 삶을 사시고 다른 이들도 복되게 하시며,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복 때문에 영적인 손해를 보는 일은 절대로 만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다른 이들을 위한 복으로 섬기는 삶을 사는 영광스러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