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501to15 - 근심하지 마소서(창146).pdf
본 문 : 창세기 45장 01-15절
베냐민을 보내주면 자신이 대신 종이 되겠다는 유다의 간청을 들은 요셉은 너무 너무 기뻐했습니다. 기뻐서 대성통곡을 할 정도로 기뻤습니다. 그래서 진짜로 대성통곡했습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바로의 궁중에 까지 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요셉은 자신의 가족이 가족스럽게 변화되어진 것이 기뻤습니다. 감정을 추스린 후 요셉은 드디어 형제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혔습니다. 형제들은 그야말로 아연힐색했겠죠. 애원하는 것을 무시하고 타국의 종으로 팔아 넘겼는데, 자기들 앞에 버젓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앉아 있으니 말입니다. 형제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 수 밖에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정말 죽었구나!’하고 한탄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요셉은 그런 형제들의 마음을 그대로 읽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에게는 형제들에 대한 아무런 악한 감정도 미움도 없습니다. 요셉은 자기 입으로도 형제들이 자신을 팔았다고 말하면서도 전혀 나쁜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려워 하고 근심하는 형제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넓을 수 있을까요? 대개 배신과 상처는 가족에게서 받은 것이 가장 크고 그래서 그것을 용서하기가 제일 힘들기 마련인데, 요셉은 형제들이 용서를 빌기 전에 이미 형제들을 용서했고 오히려 위로하고 안심시키기까지 합니다. 물론 요셉이 정말 훌륭한 성품을 지닌 사람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가 이렇게 비범한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은 단순히 그의 타고난 성품이 좋거나 혹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좋은 성품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가 오늘 본문에서 처럼 이렇게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크고 선한 마음으로 형제들을 대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셉이 형제들에게 한 말 속에서 그 시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첫째, 요셉은 세상 만사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또 믿고 있었습니다. 그가 형제들에게 들려주는 말 전체가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할 줄 모르고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보이게 마련입니다. 형제들이 자기를 팔았으면 그저 형제들이 자기를 판 것입니다. 애굽에서 우여곡절 끝에 성공을 거두었으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고 생각할 줄은 알아도 그게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복을 누릴 줄은 알아도 그 복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할 줄은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알고 있었고 또 믿고 있었습니다. 그 섭리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뚜렷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셉이 처음 자기 앞에 엎드려 있는 형제들을 보았을 때, 그 때 요셉은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는 그림을 뚜렷하게 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형제들이 자신에게 한 일이 선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악한 일은 아무리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더라도 여전히 악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심지어는 그 악한 일까지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았고, 기근으로 인해서 식량을 사러 온 형제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기가 막히게 정확한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유와 과정이야 어쨋든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야곱의 가족을 살리시려는 계획을 그런 식으로 이루어 가셨고 그것이 그런 식으로 드러났던 것입니다.
둘째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요셉은 어려서 부터 아브라함을 통해 자기 집안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을 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던 만큼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도 믿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7절을 보면 그런 생각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이라고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고 계심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은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일하는 사람일 뿐이고, 그런 눈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바라보니 그저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각하면서 어리석고 본능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 가십니다. 그 약속이 실패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눈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보고 또한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확실하고 넓은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나의 삶과 나의 역할을 통해서 약속과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인간적인 눈으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한 것을 숨기기 위해서 그저 다 잘 될거야 하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면서 섭리 가운데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말 그렇게 일하시는 것을 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항상 나의 삶과 이 세상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결국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약속임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믿음과 확신 가운데 살아서 다른 이들을 유익하게 하며 스스로도 확실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