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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5.23. 새벽예배 - 나는 하나님이라(창세기 148)


창4601to07 - 나는 하나님이라(창148).pdf


20140523D (#1).mp3.zip





본   문 : 창세기 46장 01-07절



애굽으로 내려가던 야곱은 브엘세바에 이르자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브엘세바는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곳이기도 했고 또 가나안 지역이 최남단에 위치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만큼 이제 가나안을 떠나는 야곱에게도 굉장히 의미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야곱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조금은 이상한 표현을 사용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1절은 먼저 야곱을 이스라엘로 부릅니다. 그리고 그가 제사를 드렸는데, 그냥 하나님이나 그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드린 제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새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만 상대하라고 그러면 된다는 뜻을 담아서 주신 약속의 이름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그런 이름을 새로 받았고, 그렇게 한 지 정말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만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사를 드리되 여전히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때 브엘세바에 계셨던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 여전히 이삭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브엘세바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그런 야곱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 가기를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두려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아직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야곱의 두려움은 야곱이 하나님을 여전히 자기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 ‘나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두려움이었습니다. 물론 겨우 70명 밖에 안되는 가족을 이끌고 애굽이라는 대국으로 향하는 것은 그 일 자체로는 충분히 두려울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듯이 지금 이들이 애굽으로 가는 것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이 이루어 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애굽으로 가게 될 것이고 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 약속하셨다는 것을 야곱이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애굽을 향해 가는 것은 바로 그 약속이 성취된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야곱은 두려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야곱이 여전히 그렇게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고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도 믿고,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또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도 믿습니다.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믿는 것과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그 믿음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은 실제로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 세상의 주인이며 주관자일 뿐만 아니라 ‘나의 하나님’으로 믿을 때, 그 때부터 우리의 신앙은 참된 능력이 되며 실제로 우리 삶에 힘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을 진짜로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나의 현실과 상관이 있는 하나님이 되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이삭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두려움에 빠져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여전히 온전한 의미에서는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야곱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사람을 택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시며 끝까지 그 언약 가운데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원래는 야곱이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께서 야곱을 붙들어 주시고, 친히 계속해서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더디 믿는 우리가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충분히 신뢰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손을 놓치기 일수였습니다. 또 하나님을 수없이 의심하며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셨고, 계속해서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고 또 보여주셔서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며 살게 해 주셨습니다. 정말 우리 하나님처럼 은혜롭고 자비로우며 또 오래 참으시는 분이 어디있을까요? 저는 이런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그저 은혜를 베푸시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하시기 위함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설득입니다. 이제는 나를 다른 어떤 사람의 하나님이나 그저 이 세상의 주관자인 하나님이 아니라 너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설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그 은혜에 설득되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을 진짜 나의 하나님으로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입니다. 땅은 발에 붙이고 이 세상이라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지만 우리는 이 땅과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과 상관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언뜻 보기에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따라서 움직여 가고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만유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믿게 되어 있는 진리입니다. 그 만유 안에는 전혀 하나님과 상관 없어 보이는 현실적인 일들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정말로 이것을 믿고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확실함에 따라서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의 능력과 견고함도 달라지게 되고, 또 그 삶을 보시며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의 크기도 달라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 모든 일의 섭리자이신 하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항상 이 하나님을 정말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신뢰하며 살아감으로써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 안에서 참된 신앙의 능력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