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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6.05. 새벽예배 -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창세기 155)


창4901to02, 28 -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창155).pdf


20140605D (#1).mp3.zip





본   문 : 창세기 49장 01-02, 28절



여러분은 제가 돌보는 성도들이시고 저는 여러분이 목사입니다. 목사의 역할이 여러가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러분이 저와의 관계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이 바로 저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목사이며 설교자이며 말씀의 교사인 저에게 어떤 말씀을 듣고 또 배우기를 원하십니까?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꿔서 드려 보겠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부임한지 벌써 2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1년 9개월이 지났습니다. 굉장히 빠르죠? 그 동안 여러분은 저에게 정말 많은 설교를 듣고 또 강의를 들으셨습니다. 그 모든 것의 내용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제가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시고 알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여러분에게 전해 드리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살피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진리들도 전해 드렸구요. 그런데, 성도 여러분, 어떠셨습니까? 제가 설교하고 강의한 모든 내용들이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나요? 여러분이 듣고 싶어하는 것들이었나요? 여러분이 편하고 은혜롭게 들을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까? 그런 것들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설교를 하면서 만나는 여러분의 표정에서 그것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여러분의 표정이 점점 더 밝아지는 날도 있었지만 반대로 점점 더 여러분의 얼굴이 굳어져 가고 무관심한 표정으로 변해 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뒤쪽의 경우에는 제 설교와 가르침이 여러분에게 조금 부담스럽거나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며, 때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내용인 경우도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라고 그 모든 이야기들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것이 항상 즐겁고 기쁘기만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성경에서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고 묵상을 하다 보면 제 마음 속에서 “이런 내용은 그냥 빼먹고 넘어가라. 너도 하기 힘들고, 성도들도 듣기 힘들어 하잖니?”라는 음성이 들려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 유혹을 겨우 이기고 그 말씀을 들고 단위에 선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지 없이 성도들은 그 메세지를 그렇게 즐거워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 끝까지 설교를 하고 강의를 마치는 일이 저에게도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목회자는 이런 말씀들을 성도들에게 전해야 하고, 성도들은 목회자들에게 그런 말씀들을 전해 듣고 배워야 할까요? 그것은 성도들도 그렇고 목회자들도 그렇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들어야 하는 것은 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 여러분이 관심 있어 하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들어야 할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전해 주어야 할 것도 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전해주고 들려 주어야 할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저나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의 ‘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짐은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절대로 벗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 짐을 벗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 또한 무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한 야곱은 이제 다른 아들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유언을 하고 축복해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아버지가 아들들을 만나는 마지막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복을 빌어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해 주는 시간입니다. 보통의 아버지라면 좋은 이야기만 들려줄 것이고 빌어줄 수 있는 복이란 복은 다 빌어줄 것입니다. 위로하며 힘을 주고 떠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야곱이 자기 아들들에게 들려준 그들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 빌어 주었다고 하는 복에 대한 이야기를 곰곰히 살펴보면 야곱이 그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그렇지 않은 이야기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유언이나 축복이라기 보다는 꾸중이고 심지어는 저주에 가까운 경우도 있습니다. 아들들이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화가 잔쯕 나서 쏟아붓는 욕설도 아닙니다. 그저 이제 아들들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말들을 더욱 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야곱은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해야만 했고 또 아들들은 그 안타까운 순간에 왜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야 했을까요? 그것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야곱도 개인이 아니었고, 야곱의 자녀들도 개인의 자녀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아버지들은 다른 일들에 있어서도 그랬지만 축복과 예언에 관한 한 단순히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 였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전해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때로는 전하는 아버지도 기쁘고 복되며, 듣는 자녀들에게도 복된 내용일 때도 있었지만 반대로 아버지도 아들도 전혀 기뻐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일 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미 살펴본 대로 순서를 무시하고 동생을 후계자로 세우고 형을 밑으로 내려 보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주시고, 또한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게 아버지와 자녀들 사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말씀 이외의 것을 전하고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전해야만 했고 자녀들도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들려져야 하는 것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며, 들어야 할 것 또한 나를 기쁘게 하는 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각자가 짊어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가 그 짐을 벗어버리려고 하지 말고 때로는 조금 불편하고 때로는 조금 힘들지라도 그 짐을 잘 지고 가기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내가 그 짐을 기뻐하고 그 짐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로 여길 수 있는 영적인 겸손함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좋은 말씀들만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과 존재는 항상 어딘가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고 어긋나 있어서 그것을 바로 잡기 전에는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 하나님의 말씀이 부담스럽거나 짐스럽게 여겨질 때, 오늘 말씀 속의 야곱과 야곱의 아들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들을 도리 밖에 다른 수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그래도 겸손하게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또한 복이 될 것입니다. 그 또한 나에게 커다란 유익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혹은 전하는 자로 혹은 듣는 자로 하나님께서 지워 주신 이 거룩한 짐을 기쁘게 지고 가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