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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6.06. 새벽예배 - 너희는 모여 들으라(창세기 156)



창4901to28 - 너희는 모여 들으라(창156).pdf


20140606D (#1).mp3.zip






본   문 : 창세기 49장 01-28절



오늘 살펴볼 본문은 야곱에 자기 자녀들에게 들려준 예언과 축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제도 살펴 보았지만 이 속에는 참 복되고 듣기 좋은 이야기도 있지만, 정반대로 거의 저주에 가까운 내용들도 있습니다. 전하는 사람도 그렇지만 듣는 사람도 입맛에 맞는대로 고를 수가 없습니다. 그저 전하라고 하시는 대로 전해야 하고 들려 주시는 대로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가 짊어져야 할 거룩한 짐입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짐을 잘 지고 가야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하면서 내 맘에 맞는 말씀들을 골라서 듣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야곱이 자기 아들들에게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이기도 했고 또 축복이기도 했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주의와 경고도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속에서 하나님의 복주심에 대한 중요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고 이것은 우리에게 값진 교훈을 줍니다. 누구를 복 주시고 누구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권한에 달려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 본문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복을 받고 혹은 저주같은 말씀을 들어야 할 당사자들의 지나온 삶이나 성품과 상당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나쁜 일에 대한 말씀들은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에게 저주에 가까운 말씀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그런 예언을 들어야 했던 이유는 과거에 너무나 커다란 잘못을 무분별하게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르우벤은 장자권을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나중 일이지만 시므온은 지파 자체가 사라져 버렸고, 레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자기 소유의 땅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되어진다면 어떻게 중간에 저지른 잘못 때문에 장자권을 빼앗기고 지파 자체가 사라질 수 있으며 또한 땅을 상속 받는 일에서 제외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뜻과 계획보다 더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가운데 있는 언약백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언약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적인 것입니다. 그 언약을 맺은 양쪽 모두가 그 언약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언약에 신실하셔야 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만 믿고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로서 꼭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자신의 성품과 삶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그렇게 하는 사람 자신은 그 언약의 풍성한 혜택에서 제외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적어도 그 언약에 합당한 신실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려고 힘쓸 때 우리에게 무한한 유익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어느 순간 그 언약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히려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야곱의 세 아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는 그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운명이 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 한 가지, 이 열 두 아들들이 받은 복과 저주는 아들들 자신 보다는 오히려 그 후손에 대한 것이었음을 생각할 때,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려고 힘쓰지 않을 때, 그 좋지 못한 열매를 우리의 자손들이 거두어 들여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항상 이런 식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 잘못 했다고 해서 대대손손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 복수를 하고 벌을 주시는 분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별한 은혜와 복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우리 자녀와 자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질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녀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적어도 마이너스가 되는 삶을 살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과 우리 자녀 사이를 더욱 더 견고하게 연결시켜 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28절은 야곱이 그 자녀들을 마지막으로 축복한 일에 대해서 “이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라고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자녀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이 분량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완전히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경우에는 그 분량에 있어서 각자의 성품과 삶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신앙은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보수적인 신앙이 까딱 잘못하면 커다란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너무나 하나님의 은혜만을 강조한 나머지 그 은혜 안에서의 우리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또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게 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요즘 보수적인 교단들이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도 무책임한 모습, 비윤리적인 모습, 비신앙적인 모습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르우벤이나 시므온, 레위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에 무책임한 태도는 은혜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입니다. 은혜는 만능이 아닙니다. 은혜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신실하게 하나님의 언약 속에 거할 때 우리의 풍성함과 능력이 되어 주는 것이지 그 반대의 경우에는 그 반대의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항상 성도가 누리는 복의 분량은 하나님 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성품과 삶의 거룩함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분량이 우리에게 참 영광이 되는 복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