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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6.12. 새벽예배 - 단 갓 아셀 그리고 납달리(창세기 159)


창4916to21 - 단과 갓 아셀 그리고 납달리(창15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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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49장 16-21절



야곱의 아들들에 대한 예언과 축복은 계속 이어집니다. 이제 단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단은 빌하의 첫번째 아들이었고 야곱의 다섯번째 아들이었습니다. 단은 첩들을 통해 얻은 아들들 중에서는 첫번째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조상들 중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이 받은 복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가 이스라엘을 정의로 다스릴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말 성경으로는 심판으로 되어 있는데, 원래는 재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단 지파는 다른 지파들을 위한 재판관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송을 정의롭게 판결해 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단은 풀섶의 뱀과 같을 것이고 길 위에 독사 같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양면성이 있는 모습입니다. 분명히 단 지파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것이지만 그 자체로는 크고 번성하지 못하고 소수로 남게 될 것입니다. 뱀이 모여서 사는 짐승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무슨 뜻인지 금방 아실 수 있습니다. 동족들을 정의로 판단하고 다스리는 지파, 그리고 원수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만 정작 자신은 항상 작고 보잘 것 없는 홀로 거하는 지파. 이것이 야곱이 말한 단 지파의 모습인데 이 모습은 사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단 지파의 모습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특히 삼손이 바로 이 단 지파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예언과 복은 단 지파에게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복을 빌어주다가 말고 갑자기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고 단을 위해서 기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강하지만 동시에 항상 위태로운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단지파가 될 것이니까요. 


그 다음 차례는 갓 지파였습니다. 갓 지파에게는 단지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갓은 실바의 첫 아들이자 야곱의 일곱번 째 아들이었습니다. 갓은 순탄한 인생을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후손들은 군대의 추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갓 지파는 쫓기기만 하는 신세로 남아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 스스로 역습하는 군대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갓이 끝내 이기기는 하지만 그 승리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갓 지파는 요단 동편에 정착했는데 모압, 아람, 시리아의 침략을 받았고 그래서 전쟁으로 단련된 용사가 많은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아셀입니다. 아셀은 실바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이것이 아셀에게 주어진 복이고 예언이었습니다. 이것은 이 지파가 왕의 요리사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좋은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기름진 옥토에서 나오는 좋은 음식들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죠. 훗날 아셀지파는 갈릴리 호수 서쪽에 있는 기름진 고원을 차지했습니다. 갈멜산에서 시돈에 이르는 넓고 기름진 땅이 이 지파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납달리입니다. 납달리는 야곱의 여섯 째 아들이자 빌하의 두번째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은 납달리에게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라고 이것은 이들이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갈 것이라는 예언이고 축복이었습니다. 암사슴들이 만족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떼를 지어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 다니는 모습. 이것이 훗날 납달리 지파가 가지게 될 모습이었으니까요. 실제로 나중에 납달리 지파는 갈릴리 호수의 북서쪽에 자신의 땅을 배정받았는데 남쪽으로는 스불론과 잇사갈 지파와 접해 있었고 서쪽으로는 아셀 지파와 접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경계가 없이 열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납달리를 놓인 암사슴같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아들들에게 주신 말씀은 너무도 다양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런 복과 예언을 듣는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만 들을 뿐 도대체 왜 그 지파가 그런 복과 예언을 받게 되었는지 전혀 추측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예언과 복들은 대체적으로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정확한 것을 좋아하고 분명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데 있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움직여 가시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가 ‘아, 하나님은 이렇게 움직이시는구나!”하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이 그 이유를 아시는 방식으로 움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데는 지식과 더불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완전하심, 그리고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만이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불안해 하지 않게 해 줄 수 있으며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셔도 결국에는 가장 선하게 일해 가신다는 것을 확인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 겸손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알 수 있는 한 하나님을 알아가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부분은 그저 믿어야 합니다. 그 분의 성품과 완전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그 안에서 움직여가는 일들이라는 사실을 단단히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렇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서 하나님의 참된 선하심을 보여주실 것이고 또한 얼마나 놀랍게 일하시는지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부분 대문에 우리의 신앙이 멈춰 서 있고 고정된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 움직이고 성장해 가는 믿음으로 변해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우리 삶이 이럴 수도 저럴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이 선하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있음을 기억하면서 더욱 더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볼 수 있는 복을 누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