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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7.16. 새벽예배 -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애굽기 14)



출0313to15 -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1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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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출애굽기 3장 13-15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 애석하게도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하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저와 같은 목사들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더 쉽게 믿게 하려고 과잉친절을 베풀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성도들이 성경이 아니라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기준으로 해서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친절한 목사들의 메세지, 그리고 현대의 심리학이 주장하는 것의 공통점은 “내가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다”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러 저런 이유를 들어서 자신이 가장 귀하고 중요하다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설교자나 강사들은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가 그만큼 우리를 열등감에 빠지게 하고 또 가치없다는 생각에 빠지게 하기 쉬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장 가치있고, 내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 이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 자신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으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온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도 아니고, 가장 가치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무엇이든 내가 우선이 되고 기준이 될 자격이 우리에게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고 성경이 들려주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입니다. 우리로서는 별로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죠. 그렇지만 이것이 출발점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 신앙은 헛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죄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긍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부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신앙을 이해할 때, 그 신앙은 오히려 우상숭배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은 항상 나에게 맞춰 주셔야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앙이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꾸 권리를 주장하게 되고 삐치고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 힘을 과시하려고 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에 있어서 참으로 가치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치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덧붙여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가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 내라고 하시자 모세는 만약에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고 할 때, 그들이 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말씀 중에서 이보다 더 하나님을 정확하게 표현한 구절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전부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있게 하셨기 때문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것 자체로 영원하거나 혹은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께 기대어서 살며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아무런 부족함도 없고, 밖에서 채워져야 할 것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우리의 섬김이 꼭 필요할까요?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꼭 필요할까요? 하나님의 일을 우리심에 있어서 우리의 도우심이 없으면 안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면 더 이상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을 마치 적선하듯이 하기도 하고, 자신이 없으면 하나님이 안저부절하시는 것처럼 생각하고 마치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큰 일 나시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원래 '스스로 있는 자’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한 번 더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할 영원한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그러니까 이제 부터 하나님을 부를 때는 그 이름으로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하나님이 이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삼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이 세 사람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또 그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그런 식으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사실 출애굽 또한 하나님의 즉흥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 세 사람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신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 그 누구의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으신, 당신 한 분만으로 완전히 충분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에 스스로를 영원히 묶어 놓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정말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아무 것도 필요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스스로를 깨지지 않는 영원한 언약에 묶어 놓으셨다니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거두지 않으시고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겠다는 것을 보증해 주셨으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우리가 이런 하나님 앞에 무엇을 내세울 수가 있으며 어찌 감히 나를 기준으로 해서 신앙을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 것도 필요한 것이 없고,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신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그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들을 용서하신 것도 은혜요,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것도 은혜요, 무엇보다도 그런 우리들에게 언약을 통해 구원과 은혜를 보증해 주신 것은 정말 헤아릴 수 없는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 언약의 이름은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이름입니다. 항상 이 하나님, 영원한 언약의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이루실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 언약을 잊는 경우는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잊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에 믿음의 닻을 내리고 우리를 뒤흔들려고 하는 이 세상에서 항상 든든한 믿음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