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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7.25. 새벽예배 -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출애굽기 20)



출0418to23 -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출20)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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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출애굽기 4장 18-23절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자신이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건져 낼 적임자가 아니라고 이야기 했지만 계속되는 하나님의 보장과 설득에 결국 설득이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시겠다는 그 일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사람이 다양하듯이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단번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거나 소명에 응답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성도들은 그 일을 하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각자의 성품이나 믿는 속도가 모두 다 똑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둘 중에서 일방적으로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이야기할 수 만은 없습니다. 빨리 믿고 빨리 순종하는 것은 그것 자체만 보면 하나님 앞에서 참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그만큼 중간에 흔들리기가 쉽고 또 실수를 하기도 쉽습니다. 반면에 더디 믿고 천천히 순종하는 것 자체는 하나님 앞에 우유부단하고 믿음이 부족한 모습인 것이 사실이지만 일단 그렇게 천천히 믿고 또 순종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런 사람들은 이미 다 확인하고 활실해진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흔들림도 적고 중간에 시행착오를 범할 가능성도 훨씬 적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에게 똑같은 과정과 속도를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즉각적으로 순종을 요구하시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느릿 느릿 과정을 밟아 가십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설득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모세와 같은 반응을 보이더라도 결국에는 모세처럼 하나님께 설득되어 그 뜻에 순종하는데 까지 가야 합니다. 그래서 묻고 확인하며 천천히 과정을 밟더라도 그것은 아니라고 안된다고 말씀드리기 위해서 핑계를 대고 시간을 끌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더 확실히 믿기 위해서 밟아가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전체가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드디어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애굽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장인인 이드로에게 자신이 애굽에 있는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살아있는지 알아보아야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성경에 따르면 이드로는 두 말 하지 않고 평안히 가라고 말합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주시는 방식일 때가 있습니다. 모세의 경우에야 애굽으로 가는 것이 200퍼센트 확실한 하나님의 뜻이지만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할 지 결정할 때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죠. 그럴 때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잘 살펴 보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더 확실하게 확인하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당연히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흔쾌히 동의를 한다든지, 예상치도 않았던 사람들에게서 망설이고 있는 일에 대한 권면을 받는다든지 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지지와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미디안에서 모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이것은 모세의 마지막 망설임을 한 번에 없애주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어쩌면 모세가 마지막으로 걱정하던 것이었으니까요. 우리는 모세가 부르심을 받기 까지 40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던 것을 잘 압니다. 당연히 모세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겠지요. 그렇지만 그 세월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엄청난 일을 해내야 할 모세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는 그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은 그러기 위해서만 필요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간이 흘러가게 하신 것은 그렇게 해서 모세를 아는 이집트 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떠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렇게 모세가 두려워 할 사람들을 모두 사라지게 해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대개 우리들의 한계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은 잘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은 그렇게 훤히 드러나는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더 중요한 부분은 뒤에 숨겨져 있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우리가 느끼기에 부정적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때로 그런 일들이나 경험들이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일과 시간 뒤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확실히 알지 못하더라도 항상 우리의 생각을 두어야 할 곳이 바로 이 곳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그 뒤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위해서 움직여 가고 계신다는 것 말입니다. 


이제 모세는 홀가분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하는 것이 면제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도 하기 전에 방해가 되고 두려워 해야 할 것들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40년이라는 세월이 길고 지루했지만 그 세월이 지나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모세와 상황을 준비하시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시간이었고 그래서 그 시간은 완벽한 타이밍이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모세는 가족들과 함께 애굽을 향해 갑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모세의 모습을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라고 기록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게 정말 하나님의 지팡이입니까? 아니죠. 그 지팡이는 모세가 거의 40년 동안 양떼를 돌볼 때마다 손에 들고 다녔던 아무 것도 아닌 지팡이 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더 이상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고 또 모세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제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지금 모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이전에 모세가 들고 다녔던 너무도 익숙한 도구,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있는 도구로 사용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세의 능력이 근원이 될 것이고, 또한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력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의 재능이나 능력의 탁월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록 그것이 평범하고 아무 것도 아닐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질 때, 그것은 더 이상 부족하고 형편 없는 나의 것이 아니라 능력있는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능력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 전체, 우리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내어 드려서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한다면 우리의 삶과 존재는 것은 얼마든지 모세의 지팡이처럼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삶과 존재를  내어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신 후에 다시 우리에게 돌려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전히 우리로 살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미 예전의 우리가 아닙니다. 똑같이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었지만 하나님의 것이 된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다른 의미와 능력을 지니게 되었듯이 그렇게 하나님께 다시 돌려받은 우리의 삶과 존재는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가치와 능력을 지니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도가 사는 법입니다. 여전히 마른 막대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기에 전혀 다른 가치와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 말입니다. 항상 지금 내가 사는 인생은 이미 하나님의 손에 들린 하나님의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꾸 자꾸 더 온전하게 하나님께 내어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조율하시면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십니다. 또한 하나님께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갈 때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또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길 수만 있다면 우리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항상 주님의 인도 속에서 주님 손에 붙들린 우리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