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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8.07. 새벽예배 - 이 모세와 아론이었더라(출애굽기 27)



출0610to27 - 이 모세와 아론이었더라(출2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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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출애굽기 6장 10절 - 27절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거듭 거듭 난관에 부딛히고 또 하려던 일이 막히게 되면 주눅이 들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확신이 있었던 일도 이게 맞나, 이게 정말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제가 목회를 해 보니 이 시험을 이기는 일이 굉장히 힘들고 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시험이 흔들릴 때면 별 것 아닌 일에도 굉장히 힘들어 지지만 이 시험을 거뜬히 이겨내면 그것보다 더 힘든 일들도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일은 자기 자신만의 일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이 시험을 해결하는 일이 정말 정말 중요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목회자가에게는 목회자로 살면서 일하는 것이 분리할 수 없는 소명이라면 성도들에게는 성도로 성도답게 살면서 일하는 것이 분리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확실한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적인 지지를 얻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에 뛰어들었지만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간 것이 아니라 첩첩산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산을 넘는 일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지만 그 산은 두 사람을 정말 정말 힘들게 했습니다. 이미 살펴보았지만 첫번째 난관은 이집트 왕인 바로 였습니다. 바로는 순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들을 광야로 내보내 달라고 요구하는 모세와 아론의 이야기를 듣고는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강도의 노역을 부과했습니다. 두 번째 난관은 그 이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을 지지해 주었던 백성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바로가 자신들을 힘들게 하자 태도를 바꿔서 두 사람을 맹렬하게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어쩌라고 이러시느냐고 하나님께 항변했고, 다시 하나님의 답변과 보증까지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 주었지만 백성들은 전혀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모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달라고 요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이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처음에는 일이 잘 풀려나가는 것 같았지만 결국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그 누구도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바로는 그렇다고 쳐도 백성들 마저도 결국에는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동족도 설득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바로를 설득하겠느냐는 모세의 말 속에는 그런 좌절감과 열등감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람들이 흔히 경험하는 좌절감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 자신을 쉽게 믿어주고 따라주어야 할 사람들이 자신을 신뢰하고 지지해 주지 않을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런 일들은 흔히 가장들이 많이 경험하는데요. 가정에서 존중받고 신뢰를 받지 못하는 가장들은 밖에 나가서도 기를 펴지 못합니다. 항상 스스로에게 ‘집안에서도 그런데….’라는 꼬리표를 붙여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세가 딱 그런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 다음 구절에서 마치 출애굽기 전체를 요약해 놓은 듯한, 이미 출애굽이 끝난 듯한 그런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그들로 아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그리고 나서는 굉장히 뜬금 없이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뒤를 잇고 있습니다. 족보가 이야기하는 바는 요약하면 딱 두 가지 내용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야곱의 열 두 아들들 중에서 셋째 아들인 레위의 자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을 선택하셨고 그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책임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26절과 27절은 이 족보의 결론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내보나라 말한 사람도 이 모세와 아론이었더라” 


비록 바로는 물론이고 동족들까지도 두 사람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주눅들 대로 주눅들었고, 모든 자신감을 잃어 버리고 열등감에 빠졌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도 확신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희미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순간 말합니다. 그래도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는 일을 한 사람은 그 두 사람이었다고 말입니다. 그 두 사람은 당당한 이스라엘 레위지파의 후손으로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우신 이스라엘의 구원자라고 말입니다. 다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심지어는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이 두 사람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대행자가 된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성도답게 살고, 목사로서 목사답게 살며 맡기신 일을 감당하려고 할 때, 그 일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를 믿어주고 또 나를 지지해 주어야 할 그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고 힘들게 할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거의 항상 우리의 확신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자기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도 흔들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확신도 흔들립니다. 일이 망가지는 것보다 실은 이것이 훨씬 더 어려운 시험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가치있는 일이 난관에 부딛히고 사람들은 오해하고 또 나 스스로도 나를 믿지 못하게 될 때라도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삶과 소명을 바뀌지 않습니다. 그 때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믿어 주시고 너의 삶과 너에게 맡긴 나의 일을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성도로 살고 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가는 길과 우리 자신에 대한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나를 누구라고 하시는지, 하나님이 나를 어떤 삶으로 부르셨는지 그것을 기억하고 그것에 우리의 생각을 고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성도로 부르시고 우리로 하여금 성도로 살며 또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내가 거룩한 하나님의 성도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성도의 삶을 맡기셨음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실은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세상이 나에게 등을 돌리고 나 스스로도 나에게 좌절한다고 해도 절대로 변할 수 없고,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맡겨신 삶을 살려고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끝까지 그 영광스러운 삶을 살며 소명을 이루게 해 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이며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삶을 맡기셨는지 잊지 마시고 꼭 붙드셔서 좌절과 절망을 이기고 승리하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사람들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