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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8.17. 주일오전 -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룻기 9)



룻0413to22 -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2(룻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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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룻기 4장 13-22절




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 국민들은 모두가 다 자신의 나라가 최고로 행복하고 풍성한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 나라의 국민들이 그러면서도 나라 전체의 유익과 영광은 생각하지 않고서 그저 자신이 잘 되는 것만 생각하면서 자기 편리와 유익만을 추구한다면 과연 이 나라는 어떤 나라가 될까요? 그 나라는 과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으며 그 나라의 국민들은 그들이 그런 나라의 국민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까요?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혼자서 자기만 생각하면서 사는 것과는 다릅니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을 그 나라 전체의 일부로 여기면서 그 눈으로 자신의 삶을 보고 또 무언가를 선택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사는 일은 절대로 개인적이기만 한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정말로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자기가 속한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면 그는 자신이 공인이라는 생각을 버려서는 안되고 그 틀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분명히 자기 자신의 행복을 찾아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자신이 그 나라의 국민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그 나라의 법의 테두리 안에 머물면서 최선을 다해서 다른 이들의 유익을 존중하고 또 챙겨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때, 그 나라는 참 좋은 나라가 되고 그 나라에 속한 사람들 또한 더 큰 자긍심과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나라가 이런 국민들로 이루어진 좋은 나라가 되기를 진실로 소망합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법과 상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서 이 나라가 정말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고 또 자랑스러워하게 하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도인 우리들은 이 땅에서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들의 경우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으로 이 나라에 소속되어 살아가죠.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우리의 조국보다 훨씬 더 중요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민답게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갈 때, 이미 이 세상에 들어와 있는 하나님 나라를 더욱 더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이 세상에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일을 해야만 자신의 나라를 빛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기가 있는 그 자리에서 그 나라의 법을 존중하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정말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그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상식을 지키며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면서 국가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행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자신의 나라를 정말 영광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없다면 아무리 위대한 영웅적인 사람들도 전혀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영광스럽게 하는 일도 똑같은 일들을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그것은 주님을 위해서 행한 특별한 일을 통해서만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신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법과 정신에 따라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때, 이 세상에 들어와 있는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그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 세상에 속한 나라들이 그렇듯이 하나님 나라도 그 나라의 백성다운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갈 때, 영광스러워 집니다.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지난 주일에는 이 구절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본문말씀을 통해서 우리 개인의 인생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너무 너무 싫어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들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의 삶은 나오미의 삶처럼, 그리고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처럼 텅 비어버린 삶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 곁에 있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을 떠났다면 다시 돌이키고 또 다시 주님 곁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들로 충만한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나오미와 룻, 그리고 보아스의 삶을 가득 채워주신 것처럼 우리들에게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라십니다. 절대로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살지 마십시오. 그러면 인생은 공허함을 이기지 못합니다. 항상 헛헛한 가슴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하나님 곁에 머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삶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복을 얻고 또 누리려면 이것과 더불어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채우시는 구체적인 역할들을 우리 서로에게 맡겨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 그리고 보아스가 그렇게 했듯이 우리가 기꺼이 서로의 부족함과 빈 구석들을 채워주는 일에 헌신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작은 노력들을 그릇 삼아서 서로의 삶을 채우는 복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광현교회가 서로의 삶과 존재 안에 뚫려 있는 구멍을 서로가 매꿔줄 줄 아는 넉넉함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흉내내면서 다른 이의 삶을 채워주기 위해서 힘썼던 세 사람의 삶을 채워주셔서 그들 모두의 삶이 부족함이 없는 흘러 넘치는 삶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자신 보다는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서 먼저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의 서로를 위한 헌신 속에서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채워주심이 이 룻기를 아름답고 풍성한 이야기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채워져 가는 세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정말 크고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나오미가 기업 무를 자를 얻자 이웃의 여인들은 그 아이에게 ‘오벳’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유명해 지기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아이의 이야기를 이렇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이 구절은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사사시대 내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요구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변의 다른 나라들처럼 왕의 통치를 받는 나라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왕이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괴롭힘을 받는 약한 나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와 같은 나라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인간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이 쇠퇴하고 다른 나라의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것은 인간 왕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율법을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에, 주변 나라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고통을 경험하면서 그들이 해야할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강력한 통치자가 되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줄 사람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온전히 되돌아 가는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의 왕이셨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의 갈증을 해결해 주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들에 중에서 이루어갈 선한 왕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다윗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보아스와 룻의 후손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 일이지만 다윗은 이스라엘의 최고 전성기를 일궈냈고 동시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하나님의 칭찬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의 마음의 갈증을 모두 채워 주는 그런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아스와 룻은 서로의 삶을 채워주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몰랐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을 그릇 삼아 사사시대를 지내는 동안 텅비고 완전히 매말라 버린 이스라엘을 채워주시려는 계획을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매마른 시대에 그래도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흉내내어 살아가려고 애썼던 세 사람의 삶을 그렇게 영광스러운 도구로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사람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의 삶을 채워주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통체가 가지고 있는 복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것이 교회만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서로 유무상통했던 사도행전의 교회는 교회의 참된 복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교회생활이 우리에게 그런 풍성함을 알게 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의 삶이 채워져 가는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텅 비어버린 역사도 채우고 계셨습니다. 이 평범한 세 사람의 만남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의 탄생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이 세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이루어 가고 계셨던 일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세 사람의 인생을 채워 가시면서, 또 그들을 통해서 텅 빈 이스라엘의 역사를 채워 가시면서 동시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만한 계획을 이들의 삶을 통해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나오미가 손자를 얻었을 때, 이웃의 여인들이 나오미를 축복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먼저 네가 기업 무를 자를 얻었고 생명의 회복자와 봉양자를 얻었다고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에게 오벳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면서,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유명한 이름이 되게 해 달라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축하와 축복 속에 어떤 놀라운 의미가 담겨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여인들의 진심어린 축복 속에 성경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복스러운 예언을 담는 그릇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인들이 아이에게 붙여준 오벳이라는 이름은 '섬기는 자' 혹은 '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인들은 이 섬기는 자라는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유명한 이름이 되게 해 달라고 복을 빌어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오벳은 후에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그 또한 굉장히 유명해 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에 나오는 '섬기는 자' 그리고 '종'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모든 참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사랑하고 영광을 돌리는 종과 섬기는 자는 따로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성경 중에서 예수님에 대해 가장 아름답고 정확한 예언을 들려주는 책이 있다면 아무래도 이사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서가 알려주는 메시야의 모습은 놀랍게도 종이신 분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항상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섬기는 삶을 사시다가 당신의 목숨까지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섬기는 자와 종, 그러니까 오벳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오벳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이 오벳에게 주었던 축복도 모두 이루셨습니다. 여인들은 오벳에게 ‘기업무를 자’라고 했습니다. 실제로는 그가 기업 무를 자가 아니라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였는데 말입니다. 이상하게 여겨지지만 사실 기업 무를 자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구속자’라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첫번째 오벳이 나오미 집안을 구하고 세우는 구속자가 되었듯이 마지막 오벳인 예수님께서는 우리들과 온 세상의 구속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회복자요, 또 그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양육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를 건져 주시고 또 붙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 그 은혜 덕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 세상에 온 세상의 구세주를 보내실 그 위대한 계획을 평범한 세 사람의 인생을 통해 이루어 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은 다윗이라는 이름으로 끝납니다. 다윗이 룻과 보아스, 그리고 나오미 세 사람의 후손이라고 증언하면서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 사람이 자신들의 인생을 통해서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 나올 줄 알고 있었을까요? 세 사람은 전혀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룻과 보아스 사이에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군가에게 나눠주면서 살려고 애썼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오벳을 주셔서 세 사람의 삶을 빈 구석 없이 꽉 찬 인생이 되게 하셨고, 결국 이들의 혈통에서 다윗이 나게 하셨으며, 메시야를 그 다윗의 후손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만 잘 챙기면서 살면 그것이 가장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요 이상의 사랑을 베푸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 그런 사랑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 우리들의 삶은 좁디 좁은 자기라는 틀 안에 갇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무엇을 더 베풀고 더 채워줄 수 있을까가 아니라 덜 주고 더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모두가 궁핍하게 되고 모두가 비어버린 인생만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는 이 시대보다 이런 아픔과 공허함을 진하게 가지고 있는 시대는 일찌기 없었습니다. 그래서 룻기는 이렇게 궁핍하고 텅 비어버린 시대 속에서 그런 시대의 정신을 그대로 흉내 내면서 살게 되기 쉬운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룻기는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도 별 것 아니라고 여기기 쉬운 우리의 인생, 그래서 별 생각 없이 그저 우리의 본능과 이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습을 따라서만 살게 되기 쉬운 우리에게 하나님 안에서의 우리의 삶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풍성할 수 있는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얼마나 놀라운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룻기는 우선 우리의 삶은 스스로가 전부를 채우도록 디자인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다른 이들의 삶을 채워주려고 애쓸 때, 비로소 채워질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디자인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결정적인 은혜를 주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이렇게 이기적인 시대, 자기 밖에 모르는 시대, 그러면서도 여전히 목 말라하고 배고파 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믿음을 더해야 할 중요한 메세지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텅 빈 삶과 삶의 빈 구석을 채워가시는 하나님의 방식임을 믿습니까? 그래서, 내가 다른 이들을 채워주는 사람이 될 때 나 자신의 삶 또한 가득 채워지게 될 것을 믿습니까? 그것이 서로의 인생이 풍성해지게 하는 하나님의 이치임을 믿으십니까? 이 진리를 꼭 믿으시고 이 진리에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을 가득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하나 룻기는 우리의 인생은 단순히 개인적인 의미만 가지고 있는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움직여 가실 때, 반드시 사용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세상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개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있는 피조물 중에서 우리들 보다도 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 분의 뜻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살게 될 때, 그 삶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이야기가 담기게 되고, 또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세상은 더욱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 가게 되고, 그렇게 해서 작은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의 가장 크고 위대한 계획을 이루는 영광스러운 도구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가지고 있는 참된 영광입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그저 우리 개인의 삶으로 끝난다면, 그게 우리 삶의 전부라면 우리의 인생은 영광스러운 삶도 참으로 의미있는 삶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삶은 아무리 훌륭하게 보여 봐야 그저 우리 자신에 머무는 좁고 이기적인 삶 밖에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와 룻, 그리고 보아스… 이 세 사람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의미를 가지게 될 지, 자신들의 삶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라운 열매들을 맺히게 하실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만들고자 하는 욕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가장 선한 자신의 자리를 찾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서 애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의 삶 속에 이스라엘을 위한 복을 담았고, 온 세상을 위한 복을 담으셨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의 인생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텅 빈 구멍을 메꾸어 주셨습니다. 그들의 일상이 온 세상을 위한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헤세드를 흉내내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성도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 세상으로 흘려 보내고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를 들려 주시려고 말입니다. 성도들의 헤세드는 자신의 삶과 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이며, 이 세상에 구원의 소식이 들려지게 하는 하나님의 확성기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웃 안에서, 그리고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우리는 이런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일상은 절대로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하찮은 일상 속에 하나님의 메세지를 담으시며, 그 일상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시니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오미의 하나님, 룻의 하나님, 그리고 보아스의 하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작은 삶, 평범한 일상 속에도 영원히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이야기와 사랑을 담으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항상 이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면서 사셔서 우리의 삶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며 놀라운 하나님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 영광스럽게 사용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