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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0.23. 새벽예배 - 너는 하나님 앞에서(출애굽기 65)





본   문 : 출애굽기 18장 19-27절




어제는 이드로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찌보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았는데요. 오늘은 이드로의 같은 말 속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는 목회자들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참으로 성경적인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래서 자신들의 목회자들에게 요구해야 할 자질과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이 있습니다. 마치 회사를 잘 경영하듯이 교회를 무리 없이 잘 운영해 나가는 능력을 가진 목회자를 좋은 목회자로 여기고 그래서 교회를 잘 키운 목회자를 성공한 목회자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회 리더십에 대한 그런 사고방식이 교회의 교회됨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성도들의 영적인 상처와 영적인 미성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무엇보다도 목사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목사는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이니까요. 그러나, 그 책임은 성도들에게도 있습니다. 만약 성도들이 모든 목회자들에게 성경적인 지도력으로 교회를 돌볼 것을 요구하고 그런 리더십으로 교회를 이끌 때 기뻐하면서 힘들더라도 기꺼이 따라와 준다면 목사는 설사 자신이 그것을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목사가 그렇게 하고 성도가 그렇게 한다면 그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 바르고 은혜로운 교회가 되지 않을래야 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중간지도자들을 세우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모세가 어떻게 해야 마땅한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이드로의 첫번째 충고는 이것입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을 위하여 그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이드로의 첫번째 충고 속에는 세 당사자가 있는데요. 그것은 너, 그러니까 모세와 하나님과 백성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역할은 단지 백성들이 가지고 온 사건들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그 모세의 역할이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종은 자기가 없는 사람입니다. 주인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종에게는 자신의 뜻과 의지나 취향이 아니라 주인의 뜻이 전부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자기의 목회자들을 바라 볼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기준입니다.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하나님을 따르고 있는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목회자들을 판단해야 합니다. 다른 것들은 사실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뜻에 민감해야 하고 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건입니다. 그리고, 이드로는 모세가 일하는 이유가 ‘백성들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목사가 진정으로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서, 그리고 그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기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목사는 다른 것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목사는 성도들의 영혼과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삶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로 성도들을 영원히 영광스럽게 하는 방법이니까요. 이 두 가지를 종합해 보면 목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목사는 성도들을 위해서 일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도들을 돌봄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드로가 중간 지도자를 세우라는 충고를 하기 전에 모세에게 해 준 마지막 말은 그렇게 하기 전에 백성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자의 역할이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고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도록 돕는 일이라면 그 일에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며 꼭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는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서 성도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되면 그것은 결국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망하게 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여러분은 목사가 이 일을 제대로 해 내고 있는지, 제대로 해 내려고 끙끙대고 있는지를 잘 보셔야 합니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또 자기 취향대로 목사를 평가했다가는 자기 영혼에 큰 해를 입게 됩니다. 


이렇게 성경을 살피다 보니 마치 제가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래도 저는 이 본문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인데요. 첫째는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목회자에 대한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시각들이 성경이 제시하는 기준들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고, 심지어는 바른 기준들에 대해서 무지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를 바라보는 기준이 잘못되어 있거나 혹은 없으면 그 사람은 결코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적어도 상당기간 성도들은 목회자들의 지대한 영향 아래에 있으면서 양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은 대중매체의 발달로 이런 분별력이 훨씬 더 중요해 졌습니다. 이런 분별력이 없는 성도는 좋지 않은 영향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그 영향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함께 살폈던 진짜 이유는 이 모든 내용들이 목사인 저를 위한 기도제목들이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니 목회가 얼마나 까다롭고 여러운 일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걸 알았다면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얻어 터지더라도 피해 다녔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목사 일을 하기 싫다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정말 부담스러운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목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돌봄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항상 하나님의 뜻과 사람들의 바램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목회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 끼어있는 상태를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 자체가 목회이니까요. 그러나 그것 때문에 목사는 이중의 유혹을 받습니다. 아얘  사람을 무시하고 하나님만 생각하면서 일하고 싶어 질 때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하나님의 뜻은 접어놓고 사람들에게 맞춰주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둘 다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니 이 시험이 더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는 기준에 비춰 본다면 저는 항상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목사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도 그렇게 보이실 거구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항상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목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들을 돌보아서 하나님 앞에 우리를 제대로 세우는 목사로 일하게 해 달라고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많이 벗어날 때가 있다면 뒤에서 정죄하지 마시고 넌지시 이 말씀을 저에게 들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의 목사인 저를 지켜 주시고 또 그 일을 통해 여러분 스스로도 지켜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일이 아얘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꼭 기도해 주시고 또 이드로처럼 사랑의 충고를 들려 주시기 바랍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듯이 교회는 목사가 성도를 지켜 주어야 하듯이 성도는 목사를 지켜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긋나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로 가득 찬 공동체로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목회와 교회를 바라보며 섬김으로써 우리가 속한 이 광현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로 세워져 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