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 출애굽기 18장 19-27절
흔히들 인사가 만사라고 말합니다. 틀림 없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그들 중에서 몇 사람을 세워서 전체를 대표하게 하고 이끌어 가게 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면 그렇게 세우는 사람을 제대로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으니까요. 특히 교회는 일의 효율이나 성공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제대로 교회답게 세워지려면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능력’이 아닌 전혀 다른 기준으로 사람을 골라야 하고 또 세워야만 합니다. 물론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완전하게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어떤 것이 교회를 교회답게 지켜내고 이끌어 가는데 합당한 능력인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사람을 평가해야 하고 세워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지도자를 세우는 일이며, 또한 그 지도자가 다른 사람들과 권한과 역할을 적절하게 나누는 ‘위임’입니다.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이 세상에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고 그래서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면 그 때부터 그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드로는 모세에게 중간 지도자들을 세우라고 말하면서 모세에게 백성들 중에서 ‘능력’있는 사람들을 세우라고 말합니다. 이 단어만 보면 이드로도 결국 일을 효율적으로 잘 처리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세우라고 말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곧 이어서 이드로가 그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 덧붙이는 내용을 보면 이 능력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능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어찌 보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지도자에게 요구하지 않는 그런 것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드로가 첫번째로 제시한 조건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드로가 이것을 중간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한 이유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 아닐 때 그 사람은 결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에 맞게 행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선 교회 안에서만 한정해서 보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을 잘 하고 못하고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가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정말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담고 있고, 그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해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해졌다면 그 일은 어떤 결과를 남겼더라도 실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럴 듯한 결과를 남겼더라도 그 동기나 과정이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에서 어긋나 있다면 그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실패입니다. 그러니 적어도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지도자로서 행한 모든 일을 들고 서야 한다는 엄중한 사실을 잊지 않고 그 사실에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드로가 제시한 두 번째 조건은 그가 진실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이 진실하고 또 신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사랑하고 한결같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면 이 두 가지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바른 것을 사랑하며 그런 태도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애쓰는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바른 것을 사랑해야 하지만 그 사랑이 쉽사리 식거나 변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조건은 바로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불의한 재물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게 돈이든 무엇이든 정당하지 않은 이익은 미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지도자들은 단순히 불의한 이익을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워한다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굉장히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련 누가 이렇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불의한 이익을 미워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 자신이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실 그 영광을 진실로 사모하고 즐거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어야만 그 영광을 나에게서 빼앗아 가고 멀어지게 하는 불의한 이익을 미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드로가 두 번째로 제시한 진리를 사랑하는 신실함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이 불의한 이익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지도력을 사용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이런 영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한 편으로는 하나님의 꾸중을 두려워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을 사모하고 즐거워 할 줄 아는 영적인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의한 재물을 미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만약 네가 이렇게 행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면 모두가 유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세는 이드로가 말해 준 그 기준대로 지도자들을 세웠고, 그래서 그들 덕분에 모세도 백성들도 커다란 유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드로가 말한 세 가지 기준이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했음을 보여 줍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원리에 합당한 사람들이 세워질 때,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유익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커다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모두가 다 어느 정도의 권위를 위임받아 교회를 섬기고 있는 우리들은 위에서 이드로가 말해 준 세 가지 기준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애쓰고 또 헌신해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 안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도 그런 지도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만이 아니라 이 세상도 결국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나눠 받아서 세상을 돌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뿐만 아니라 이 세상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림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이렇게 어수선하고 항상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능력’있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고, 진실한 사람이 없으며, 불의한 재물을 미워할 줄 아는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능력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자리에 두시면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똑같습니다. 심지어는 그 곳이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리더십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고 또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있는 그 곳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든지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할 줄 알아서 이 세상을 참으로 유익하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누릴 영광을 더크게 만들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