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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0.17. 새벽예배 - 여호와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출애굽기 62)


* 오늘은 녹음파일이 누락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문 : 출애굽기 18장 1-12절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출애굽기 4장 18절 이하에 나오는데요. 그 때 모세는 아내 십보라와 미디안에서 얻은 두 아들과 함께 애굽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에게 할례를 주지 않은 일 때문에 모세가 죽음을 당할 뻔 하는 일을 경험하게 되면서 아내와 두 아들은 다시 미디안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4장이 그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상황이 그렇게 되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의 손에서 진짜로 건져 내셨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들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손수 모든 것을 정돈하고 딸과 손자들을 이끌고 모세에게로 왔습니다. 이드로가 달리 미디안의 제사장이 아니었죠. 그에게는 제사장 다운 감각이 있었습니다. 이제야 말로 정말 하나님만 의지해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영적인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여러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을 향해 온전한 뜻을 정할 수 있는 영적인 지혜와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18장은 이드로가 모세에게로 오게 된 일과 관련된 일화 몇 가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경은 이드로가 데리고 온 모세의 아들들의 이름에 대해서 말해 줍니다. 첫째 아들은 게르솜이었고 둘째 아들은 엘리에셀이었습니다. 게르솜은 모세가 광야로 도망쳐서 결혼한 후 처음으로 태어난 아들이었지만 아마도 그 때까지 모세는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되어 광야를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처음 얻은 아들에게 나그네라는 처량한 이름을 붙여 준 것이었겠죠. 그렇지만 둘째 아들의 이름은 전혀 달랐습니다. ‘엘리에셀’ 그러니까 ‘나의 하나님은 도움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첫째를 낳을 때는 몰랐지만 둘째를 낳을 때 쯤 되니 이제 모세는 지금 자신이 광야에서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이 처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있는 것이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서슬퍼런 바로의 칼날을 피해서 그 때까지 살아있었고 게다가 가정까지 이루고 아들을 둘씩이나 낳은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지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당장 힘들 때는 한탄합니다. 그러나 숨 좀 돌리고 나면 이내 그래도 견디게 하시고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앙하게 되지요. 그런데, 신앙의 성숙이란 그런 반복을 줄여나가는 일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당장의 현실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신실함을 키워가면서 엘리에셀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 바로 믿음이 성숙해 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신앙을 가진 지가 오래 되었는데도, 여전히 게르솜과 엘리에셀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일을 너무 쉽게 반복하고 있다면 우리의 믿음은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연륜이 쌓여갈수록 게르솜으로 사는 시간은 줄어들고 엘리에셀로 살아가는 시간이 늘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능력이며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모습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이 부분을 묵상하다가 문득 이 두 가지는 구별된다기 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실 게르솜에 되었다가 엘리에셀이 되었다가 하는 것이 아니죠. 우리는 항상 게르솜입니다. 이 세상이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항상 게르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참 믿음은 우리를 게르솜으로 살면서도 동시에 엘리에셀의 은혜 속에서 살게 해 줍니다. 그러니까 나그네로 살기 때문에 한숨짓고 처량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그네로 살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생생하고 능력있는 도우심을 경험하며 사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생각해 보면 광야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게르솜이지만 엘리에셀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게르솜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만나와 메추라기의 은혜를 누렸고, 엘림과 므리바의 은혜도 누렸습니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은혜를 누렸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들은 이스라엘이 광야의 게르솜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경험할 수 없었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땅의 게르솜으로 산다고 해서 힘겨워 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엘리에셀의 하나님이 계시니까요.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복되고 넉넉하며 든든한, 엘리에셀과 동행하는 게르솜들이 될 것입니다. 


게르솜을 맞이해 들인 모세는 장인인 이드로에게 그간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해 준 것은 그 동안 자신을 힘들게 했던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한 일이나 전쟁이 일어나 죽을 뻔 했던 일 같은 그런 일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사람들에게 행하셨던 모든 일들과 길에서 그들이 당한 모든 고난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들을 말해 주었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일들이었지만 직접 그 상세한 이야기를 모세에게 전해듣는 이드로는 너무 너무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제사장이었지만 직접 자신의 소유에서 제물을 가지고 와서는 그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청해서 함께 잔치를 벌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성도의 교제이며 또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성도는 은혜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며 축하하고 또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의 믿음이 더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고 또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실 수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 삶의 어려움이나 고민, 그리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도 함께 나눠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를 위한 중보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나누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렇게 은혜를 나누고 함께 즐거워 하며 함께 축하하는 성도의 교제가 꼭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들려 줄 때 그것이 자칫 자랑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듣는 사람도 그것 때문에 질투가 생겨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서로 서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해서 은혜를 나눠서 그 나눔이 서로에게 유익하고 즐거운 그런 나눔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듣고 너무 기뻐서 자기가 제물들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린 후에 그것으로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교제의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것은 이드로의 영적인 기쁨이 다른 사람들을 향한 섬김과 사랑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사는 사람은 그 기쁨을 형제 자매들,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자기 소유를 내어놓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꽉 찬 마음이 있으니 자기 바깥을 향해 너그러운 마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함께 떡을 먹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모두 게르솜들입니다. 이 세상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신다는 확신입니다. 엘리에셀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이 여행은 홀로 하는 여행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우리는 그 여행의 은혜로운 경험들을 함께 나누며 축하하는 사람들, 그래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나의 믿음은 너의 믿음이 되고, 너의 믿음은 모두의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그 안에는 반드시 구체적인 나눔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 나눔을 통해 은혜의 기쁨을 함께 하며 서로를 섬기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엘리에셀을 아는 게르솜들이 모인 공동체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은혜를 나누고, 필요를 나누며 기쁨을 나누며 함께 하는 여행은 행복하고 풍성한 하늘가족의 여행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이와 같은 은혜와 물질의 넉넉한 나눔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비록 이 땅의 여행자로 살더라도 이 공동체 안에서 은혜를 누리고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여행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