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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1.21. 새벽예배 - 정의를 굽게하지 말며1(출애굽기 82)






본   문 : 출애굽기 23장 1-5절




얼마전에 마이클 센델이라는 미국의 정치철학자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펴 내서 우리나라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정의가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세 가지 요소를 행복, 자유, 미덕이라고 보고 정의는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해서 정의되어야지 정의 자체만으로는 무엇이 정의인가를 말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도 정의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정의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바른 것을 말하지 다른 가치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들이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이 말하는 정의가 독선적인 것 같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한다면 성경이 말하는 정의가 가장 완전한 정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미덕의 근원이시며, 모든 질서를 세우신 분이시고, 또 옳고 그름과 가치의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되시는 분입니다.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도 그 분이 알고 계시고 정말 자유로운 것이 무엇인지도 그 분이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분이 정의롭다고 하시는 길을 따라가면 결국 최고의 정의에 도달할 수 있고, 그 정의가 주는 유익을 가장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다루는 문제도 정의에 관한 것인데요. 맨 처음 말하는 정의는 말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성도는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대중을 상대로 잘못된 소문,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는 역할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말들은 분명히 다른 누군가에게는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더욱 더 큰 피해를 입힐 수가 있습니다. 요즘 어떤 자칭 선교사라는 양반이 12월달에 전쟁이 난다고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실제로 서울에서는 어떤 목회자가 그것을 진짜로 믿고서 그 교회 성도들에게 대출을 해서라도 필리핀으로 도망치라는 명령을 내렸고, 실제로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때로는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말도 안되는 바람같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해를 입힐 수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또한 인터넷에 퍼진 잘못된 소문이 아까운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사건들을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말들이 만들 수 있는 악한 열매가 얼마나 엄청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과 결탁해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악한 자는 이미 악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또 거짓증언하기 때문에 악한 사람이 된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재판에는 분명히 악인이 있고 피해자가 있겠지만 둘 중에서 어떤 사람이라도 거짓증언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그 재판에 있어서는 악한 사람이 됩니다. 주님은 또한 재판과 관련해서 ‘다수’가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하셨습니다. 우선은 다수를 따라 악한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 다음에는 재판에서 다수가 어떤 편에 선다고 그 쪽에 서서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수는 항상 큰 압력을 가합니다. 그들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될 것같이 여겨지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럴 지라도 끝까지 그 압력에 굴복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수가 그랬기 때문에 나도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핑계를 받아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의 피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악이 악이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 원칙은 남에게 해를 입히려고 그렇게 할 때 뿐만 아니라 남에게 유익을 주려고 편을 들어주는 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선의에서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재판에서 그 사람의 처지와 형편 때문에, 특히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해서 편을 들어 증언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적어도 법정에서는 그 어떤 이유로건, 그것이 악한 의도이건 또는 선한 의도이건 간에 절대로 거짓말이나 빼거나 덧붙여진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법정이란 무엇보다도 ‘올바름’이 세워져야 하는 곳이고 기울어진 것은 항상 어떤 쪽의 상처나 피해를 만들어 내며, 그것 자체가 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더불어 깨닫게 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편들어 주시는 분이시지만 바른 것을 세우는데 있어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와 약한 자들의 공급자와 보호자가 되어 주시며, 힘 있고 가진 사람들이 그들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율법으로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자의 잘못도 엄정하게 평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다음이 조금 독특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만일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부릴 지니라” 아무리 원수의 짐승이라고 하더라도 그 짐승의 소유권은 엄연히 그 원수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정당한 거래도 없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당한 것이 됩니다. 또 다른 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원수의 짐승은 원수에게로 가져다 주는 것이 가장 바르고 정의로운 것입니다. 또 원수의 나귀가 무거운 짐을 지고 끙끙대고 있을 때는 그 나귀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죄 없는 나귀가 주인 때문에 받아야 할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원수에게 속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원수 때문에 그것에 대한 나의 의무와 세상을 아름답고 바르게 돌아가도록 돕는 나의 행동이 포기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정의는 사랑과는 반대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랑의 기초가 되는 소극적인 최소한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으면서 바르게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은 편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때로는 옳고 그름과 상관 없이 말이죠. 그런데, 사랑이 아무리 편들어 주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난 일이 되어 버리면 안됩니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을 악하고 비뚤어진 행동을 통해 사랑하는 것이고, 그 일 때문에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은 처음부터 포기되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살펴본 말씀들은 우리가 올바름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쉽고 강한 유혹을 받는 그런 부분들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 다수의 압력, 그리고 나와의 좋지 못한 관계…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것들을 주의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부터 정의로우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정의라는 것은 기울어지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정의를 지켜내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주님께서 명하신 정의를 지켜내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고, 또 거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올바름을 하나님의 방식대로 지켜냄으로써 우리의 삶의 자리에 하나님이 맺으시는 바른 열매들이 풍성해져 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