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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4.11.30 주일오전 - 그 날 밤에(에스더 10)


20141130SM.mp3.zip





성경본문 : 에스더 6장 1-14절




저는 밤 잠을 깊이 자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부러워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머리가 땅에 닿으면 곧바로 잠이 드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그만큼  피곤하지 않기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이상하게도 너무 피곤해도 잠을 잘 못 잡니다. 그래서 제가 깊은 잠을 자는 날은 저에게는 정말 복받은 날입니다. 아마도 잠을 잘 주무시는 분들은 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실 듯한데요. 잠을 참 잘 주무시고 그래서 잠 자는 것 때문에 고민해 보지 않으신 분들은 그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정말 커다란 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잠 자리에 들 때, 그리고 아침에 깰 때 여러분에게 잠을 잘 자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꼭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정말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물론 잠이 너무 많아서 잠을 자거나 졸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도 자꾸 꾸벅 거리시는 분들은 여기 해당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밤잠을 잘 이루지 못하다 보니, 얻게 되는 유익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요 근래에는 영 잠이 오질 않으면 저는 아얘 잠 자리에서 일어나 그 자리에 앉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차분하게 기도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얼마나 편해지는지 모릅니다. 잡념도 사라지고, 또 때로는 쿵쾅거리던 심장도 잦아들고… 그래서 다시 자리에 누우면 훨씬 더 수월하게 잠을 자게 됩니다. 제게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들이니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별히 잠을 자기 힘든 날은 하나님께서 저를 일부러 깨우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짧은 기도를 통해서 마음의 평안을 얻게 하시고, 때로는 육신까지 편안하게 해 주심으로써 평안이라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꼭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소한 기도도 무시하지 않으시고 듣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려고 말입니다.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지 모르지만, 저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때로는 불면의 밤 조차도 우연이 찾아오는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기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조금 억지스러운가요? 그렇지만 우리의 인생에 우연이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 조차도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더서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고 또 가장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와서 에스더서의 전체 이야기는 완전히 거꾸로 뒤집히게 되고 속도도 정말 빨라집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렇게 뒤바뀌게 되도록 만드는 사건은 전혀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꼭 그 날 뿐만이 아니라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아하수에로가 밤잠을 설친 것이었습니다. 낮에 에스더에게서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인지 이상하게도 아하수에로는 그 날 따라 전혀 잠을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잠이라도 청할 겸, 내시에게 역대일기를 가져오게 해서 그것을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잠이 오지 않으면 성경을 읽는데 그러면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해서 잠이 온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아마도 아하수에로에게는 왕실일기가 그런 분들에게 성경책과 똑같은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성경이 이런 역할을 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왕좌에 비스듬이 기대서 반쯤 감긴 눈을 하고서 신하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던 아하수에로는 이야기가 어떤 부분에 이르자 눈이 번쩍 뜨이고 자세를 고쳐 바로 앉았습니다.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잊어서는 안되는데, 까맣게 잊어버렸던 정말 중요한 일을 다시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신하가 읽어 준 부분은 바로 유대인 모르드개가 내시 빅단과 데레스의 음모를 밝혀 내어 자신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는 기록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자신이 그 일에 대해서 모르드개에게 아무런 사례를 하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당시 바사의 풍습으로는 왕이 공을 세운 신하나 백성에게는 후하게 사례하고 크게 창찬해 줄 수록 명예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이었는데, 자기 목숨을 살려주고,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 준 사람에게 아무런 상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아하수에로에게는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기억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하수에로는 그 책을 읽어주는 내시에게 자신이 그 일에 대해서 모르드개를 어떻게 치하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일은 아하수에로가 염려했던 대로 였습니다. 아하수에로의 질문에 대해서 되돌아온 내시의 대답은 모드드개에게 아무런 상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하수에로는 갑자기 당황스러워지고 또 고민스러워 졌습니다. 그렇지만 이 큰 공을 어떻게 치하해 주면 좋을지 적절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정황상으로 보면 그러다가 하루 밤이 꼬박 흘러간 것 같습니다. 날이 밝자 마자 아하수에로는 혹시 뜰에 누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일찍 등청한 신하가 있을까 해서 내시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내시가 말합니다. “하만이 있습니다.” 하만도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늘 밤만 지나면 그 꼴보기 싫은 모르드개를 가장 잔인하고 또 수치스럽게 죽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기쁨 반 기대감 반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그리고는 날이 밝자 마자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궁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렇지만 하만은 선뜻 왕에게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섰다가 무슨 꼴을 당하게 될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궁정에서 머뭇 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때마침 내시가 자신을 부릅니다. 왕이 찾는다고 말이죠. 얼마나 기뻤을까요? 아마 하늘도 자기 마음을 알아준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는 하만의 문안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하만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가 꼭 존귀하게 해 주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해 주면 되겠느냐?” 갑작스런 질문이었고 그래서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하만은 곧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들었습니다. 어제 파티에서도 드러났듯이 이제 왕 뿐만 아니라 왕후도 자신을 신뢰했고, 게다가 자신은 이미 바사의 2인자이니 왕이 존귀하게 해 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밖에는 있을 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만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아주 겸손하게 말합니다.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는 왕관을 가져다가 그 왕복과 말을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만은 분명히 이 말을 하면서 왕복을 입고 왕관을 쓰고 왕이 타는 말 위에 올라 모든 사람이 우러르는 동안 성안을 행진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바로 하만의 속마음이었습니다. 하만은 왕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백일몽을 꾸고 있는 하만의 귀에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그래? 그러면 너는 네 말대로 지금 당장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네가 말한 그대로 해 주거라. 네가 말한 것에서 한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된다.” ‘유다 사람 모르드개, 유다 사람 모르드개…’ 하만은 아찔했습니다. 오늘 아침이면 그 지긋지긋한 모르드개를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그렇게 만들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밤잠도 설쳐 가면서 궁으로 달려 왔는데, 그리고 이제 그 일이 눈앞의 현실이 되기 일보직전이었는데, 이제 자신이 그 모르드개의 마부가 되어서 성내를 돌아다녀야 한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자기가 내 뱉은 말이고 또 왕이 꼭 그대로 오차 없이 해야 한다는 다짐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꾸역 꾸역 왕복과 왕관을 받아가지고 왕이 타는 말을 손수 끌고서 모르드개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옷을 입히고 왕관을 씌우고 말에 태우고는 그 말의 고삐를 잡고 앞에서 끌면서 억지로 외쳤습니다.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그 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저게 무슨 일이냐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만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사람들은 키득거리며 하만을 비웃지 않았겠습니까? 그 모든 치욕을 참고 그 넓은 성을 한 바퀴 다 돌았으니 하만은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그러나 하만은 부끄러움도 부끄러움이지만 두려움과 걱정이 더 컸을 것입니다. 자기가 이런 사람을 죽이겠다고 그런 음모를 꾸몄으니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걱정이 되고 두려웠을 테니까요. 억지로 성 안을 한 바퀴 돌고는 고민하면서 머리를 감싸 쥐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마치 구름 위를 걷다가 발을 잘못 디뎌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그런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갑자기 그런 큰 영예를 얻은 모르드개는 말에서 내린 후에 다시 대궐 문으로 되돌아 갔다고 말합니다. 대궐문이 어디입니까? 그의 일터입니다. 언제나 앉아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하던 바로 그 곳입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그렇게 높임을 받고도 여전히 대궐문입니다. 그렇게 높임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킵니다. 그렇게 묵묵히 맡겨진 일을 할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쉽사리 변하거나 왠만해서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지요. 성도는 모름지기 이래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니까요.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게 되면 이런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보고 자신을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르심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하나님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자기 삶에 덧붙여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덧붙여진 것의 특징이 무엇이지요? 그것은 언젠가 그것이 덧붙여졌던 것처럼 언제든지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에 삶을 매어 놓고 사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든든할 때는 큰 소리 땅땅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아가지만 그런 것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삶이 그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어떻게 해야할지 그 방법을 모릅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을 보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의 존재와 삶의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잠시 흔들리더라도 금새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니까 하나님 처럼 신실하고 바위처럼 묵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간 하만은 또 다시 아내와 친구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났던 그 엄청난 일들을 전부 다 들려 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모르드개가 정말로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은 그를 절대로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하만의 이야기는 그 사람들에게 그 동안에는 하만 옆에서 하만의 권력에 함께 취해있었기 때문에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다시 보게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모르드개가 유다 사람의 후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하만의 힘을 등에 업고서 모르드개와 유다백성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세는 이미 그들의 손에 넘어와 있고, 계산대로하면 그 날은 그 승패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세가 갑자기 뒤집혀 버립니다. 왜 일까요? 어떻게 해서 일이 갑자기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지금까지 뒤에 숨어 계시던 하나님께서 전면으로 나서시면서 하만에 대한 총공격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만의 측근들은 그제서야 모르드개는 유다 백성이며, 유다 백성은 그 옛날 자기들의 조상인 아각을 일거에 박살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것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들이 모르드개 개인이나 유다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제 하나님의 총공격이 시작되었으니 이 전쟁은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왕궁에서 내시들이 와서 하만은 급히 마치 끌려 가듯이 차비를 마치고 에스더가 마련한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 발걸음을 서두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자기 무덤을 향해 서둘러서 가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전부 다 그야 말로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일들이었습니다. 테잎을 되돌려 보면 변함 없는 모르드개의 태도에 하만은 결국 참지 못하고 다음 날 아침에 모르드개를 나무 꼭데기에 달아 버릴 계획을 확정지어 놓고 있었습니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하만에게 절해야 한다는 왕명이 있으니 그 일로 왕의 허락을 받는 것은 정말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모르드개도 또 에스더도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손을 쓸 수조차 없었고  그 다음날 모르드개는 목숨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드디어 하나님께서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능하신 큰 손으로 하만의 앞을 가로 막으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까요? 그 엄청난 하나님께서 직접 이 일에 뛰어 드셨다면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하만이 급사해야 하겠지요? 그 날 밤 갑자기 집 지붕이 무너져서 하만과 그 집 식구들이 봉변을 당해야 하겠지요? 그래야 이 이야기가 극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날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 밤 아주 작은 일, 있으나 마나 한 일 하나를 하셨습니다. 아하수에로에게서 하루치의 밤잠을 가져 가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잠이 오지 않을 때 항상 하던 대로 궁중일기를 가져다가 수면제 삼아 읽게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날 읽을 부분이 모르드개가 자기 목숨을 건져 준 부분이었고, 그 부분을 듣는 중에 아하수에로는 이 일의 처리에 있어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성품으로 보아서 그렇게 밤잠을 설칠 위인 같아 보이지도 않고, 잘못을 발견했다고 해도 그 일을 바로 잡는 일에 그렇게 밤을 세워가며 고민하지 않을 스타일인데도 이상하게 그 날 아하수에로는 고민하면서 밤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왕궁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때 하만의 집에서는 다음 날 모르드개를 처지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졌고, 날이 밝자 마자 하만은 그 일을 허락받으러 왕궁으로 들어와 왕을 만나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누군가를 찾자마자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만이 아하수에로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다음부터 모든 일들은 하만이 계획했던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아하수에로의 잠을 가져 가셨다고 말씀드렸지만, 이것은 본문에 대한 정황설명이지 사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일에 직접 개입하셨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모든 일들은 얼마든지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니까요. 아하수에로가 잠이 오지 않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왕실일기를 가져다 읽을 수가 있구요. 또 그렇게 읽게 된 부분이 모르드개가 공을 세운 내용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종종 경험하는 것이지만 평상시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일이 그 날 따라 이상하게 신경이 쓰일 수도 있습니다. 기분 좋게 돌아가는 하만을 모르드개가 무시했으니 화가 난 하만이 모르드개의 처형계획을 세울 수도 있고, 또 마음이 급한 나머지 날이 밝자 마자 득달같이 입궁할 수도 있습니다. 또 왕이 신하를 찾았는데, 하만이 제일 먼저 등청해 있었으니 아하수에로가 그를 만날 수도 있고, 하만에게 자신의 고민을 의논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 하나의 일들은 따로 떼놓고 보면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고 또 사람들이 자기 의지로 결정한 일들입니다. 그 어떤 일 하나도 아주 특별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타이밍과 서로 맞물리면서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것을 보면서도 그것 또한 그저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얼마전에 20년만에 만난 후배 이야기를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요? 오늘도 이 아이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겠습니다. 그 때 제가 이 후배를 만나보니 정말 너무 너무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지랖 넓게 도와 주고 싶은 마음에 끼어 들었지요. 그런데, 그 후배는 제 제안을 무시하지 않고 제가 소개해 준 책을 읽기도 하고 저와 계속해서 상담을 하고 양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 기간이 이제 갓 한 달도 안되는 짧은 기간인데요.  사실 이 기간은 그 후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해 동안 쌓이고 쌓여왔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가장 결정적인 시기를 넘어가고 있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만큼 더 힘들고 더 중요한 시기였죠. 자신이 하던 일들과 부모님의 일, 그리고 딸 아이의 일, 또 교회의 일… 제가 들어보니 그 어느 것 하나 간단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그 아이를 도와 주는 중간 중간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타이밍에 꼭 맞는 믿음도 주시고 은혜도 주셔서, 오히려 지금 이 시기를 지금껏 가장 기쁘고 행복하게 지나왔고 또 지나고 있습니다. 문제들이 해결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누그러지는 문제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그대로 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새롭게 뜨여진 믿음의 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고 계시고 그 은혜의 능력으로 그렇게 기쁘고 충만한 상태에서 그 모든 시험들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 후배는 그 모든 것이 제가 소개해 준 책에서 얻는 은혜 덕분이며 또 자기가 요즘 제 블로그에 올려진 설교를 많이 듣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 날 그 날 그리고 상황에 꼭 필요한 진리와 은혜를 거기서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 후배를 우연히 다시 찾고 또 그 아이가 일이 있어서 대구에 왔다가 한 시간이 채 안되는 시간동안 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이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서 다시 서울로 돌아갔던 그 일이 절대로 우연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그 아이를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이고 또 선물이었다고 믿습니다. 또 제가 수 년전부터 제 홈페이지에 설교를 올리게 된 것도, 물론 그것은 제가 그 때 그냥 그렇게 하기 시작한 것을 지금까지 계속해 온 것이지만, 그러한 저의 행위 속에도 이미 그 후배를 돕기 위한 하나님의 섬세한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를 다시 찾게된 것은 정말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 였지만 실은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그 아이를 위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불을 붙이는 발화점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여러 개의 사건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각각의 사건들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에스더서가 들려주는 역사의 흐름이 이 지점에서 정반대 방향으로 바뀌게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수년 전에 모드드개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일을 아하수에로가 아무런 포상도 없이 그냥 넘어갔으며, 그랬으면서도 그 일을 그 때까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 바로 그 일입니다. 그 일이 없었더라면 아하수에로가 잠을 설치다가 왕실일기를 읽었더라도 그냥 잠자리에 들었을테고, 그러면 그 다음 날은 하만의 계산대로 모르드개의 마지막 날이 되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아하수에로가 모르드개의 공을 그런 식으로 처리했고, 또 그 랬다는 것을 기억조차 못했던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가 어려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왕에게 불명예스러운 일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신하들 중 단 한 사람도 그 일에 대해서 왕에게 귀띔조차 해 주지 않았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구요.


하만의 악한 계획이 본격화 되었을 때, 모르드개는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서라고 에스더를 설득하면서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기 까지 모르드개도 에스더도 왜 에스더가 대제국 바사의 왕후가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이 발생하자 그 일이 그저 운이거나 우연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서 사용하시려고 미리 준비하신 일이었다고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아하수에로가 모르드개의 그 엄청난 공을 아무런 치하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 일이 그렇게 처리되고 또 묻혀버린 일은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정말 모르드개 개인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그 순간에 다시 망각의 수면 위로 떠 오릅니다. 그리고는 그야 말로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립니다. 그러면 이 일을 지켜보는 우리들 또한 모르드개처럼 이렇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 이 일이 그렇게 처리된 것이 바로 이 때를 위한 것이었구나!”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 날 밤 아하수에로의 불면을 놓치지 않으시고 그것을 이용하셔서 그동안 꽁꽁 숨겨 놓으셨던 일을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하셨고, 그것을 통해서 그 모든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 세상 역사와 우리의 인생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이렇게 섭리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나라,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도 그 날 밤과 같은 날들이 많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분명히 그래야 하고 또 그것이 우리 인생의 참 소망이며 우리 믿는 자들의 든든함과 확신의 이유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참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또 우리 개인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그렇구요. 그리고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은 계속해서 그저 우연히 우리가 복이 없거나 혹은 운이 나빠서 하필이면 우리가 경험하게 된 그런 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당하는 부당한 일들도, 또 억울한 일들도 분명히 기가 막히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재료가 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아~ 그 때 그래서 그랬구나!”하면서 무릎을 치게 될 것이며, 우리가 언젠가 우리의 인생을 마감하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 전체를 조망할 때, 그래도 이해할 수 없었던 모든 일들의 의미들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에 놀라고 또 놀라게 될 것입니다. 


불면과 망각을 사용하셔서 모르드개를 살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셨던 하나님이 지금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꼭 이 하나님을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들만 바라보며 일 하나 하나 때문에 전전긍긍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런 일들을 통해서 나의 인생을 그런 기쁨과 놀라움으로 채워가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힘들고 억울한 일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하소서.
  2.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뿌리 내리게 하셔서 세상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지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