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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4.12.07. 주일오전 - 또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가니라(에스더 11)


20141207SM.mp3.zip





성경본문 : 에스더 7장 1-10절




이제 연말이 다가오는데 이런 저런 송년 모임도 갖게 되고 그러시지요? 그런 모임들 중에서는 참 가고 싶고 기다려지는 모임들도 있겠지만 아마 부담이 되고 곤욕스러운 송년모임도 있으실 텐데요. 지혜롭게 잘 대처하셔서 연말이 송년모임 때문에 어수선하고 피곤하기만한 연말이 되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며칠 전에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오랫동안 교제하던 성도 몇 분과 송년 모임을 가졌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송년 모임이 한 해 동안 받은 은혜를 나누는 일로 참 풍성했습니다. 정말 감사했던 것은 한 해 동안 각자에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2014년을 한 달 쯤 남긴 시점에서 오히려 그런 어려움들 덕분에 신앙도 더 단단해 지고 하나님의 은혜도 더 많이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서로가 확인하면서 역시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 날 네 사람이 모였는데요. 그 중에서 한 분은 자기는 올해가 시작될 때, 많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선교에 관심이 많아서, 몇 달 동안이나 교회 내의 단기선교팀에 지원해서 열심히 단기선교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가게 될 곳이 이미 한 번 다녀왔던 지역이라서 또 다시 그 곳 사람들을 만난다는 기대로 정말 열심히 그 모임의 주축이 되어서 단기선교를 준비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계획이 수정되어 인원이 축소되었고 다시 세워진 선발기준이 나이가 어린 순으로, 처음 가는 사람을 우선으로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러는 바람에 선교팀에서 일순위로 짤렸답니다. 이미 한 번 다녀왔고 또 나이도 제일 많았으니까요. 너무 속이 상했답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헌신하면서 시간까지 떼어놓고 준비했는데 그런 일을 당하니 화도 좀 나더랍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마음에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생각에 순종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출발을 바로 앞두고 그런 상황이 다시 한 번 뒤집혀서 오히려 자신이 팀장을 맡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기쁘게 단기선교를 다녀오게 되었구요. 그 집사님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도 참 신기한 은혜였지만 그 때 자기 마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하려고 하시면 안되는 일이 없구나’하는 확신이 생겼고, 또 2014년도 한 해 동안에는 이런 일들이 많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올 한해는 그 어떤 해보다도 그런 일들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물론 좋은 일들 뿐만 아니라 하려던 일들이 급작스럽게 막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연초에 했던 경험과 그 때 얻은 깨달음이 생각나서 억지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하지 않고 기다렸더니 아주 부드럽게 다른 쪽의 길이 열렸고, 완전히 닫혀 버렸다고 생각되었던 또 다른 일들이 열려지고 해결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고백을 하는 그 집사님의 얼굴표정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사람의 여유와 행복이 가득해 보였는데요, 저 또한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를 보니 마음이 참 기쁘고 흐뭇했습니다. 


갑자기 뒤집혀 버린 상황 때문에 제대로 하만은 근심과 걱정에 빠졌지만 아무런 대책을 세울 겨를도 없이 왕궁에서 사람들이 와서 하만을 데리고 왕궁으로 들어 갔습니다. 하만이 미끄러지는 속도가 겉잡을 수 없이 빨라지고 있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하루 아침에 손바닥 뒤집히듯이 뒤집혀 버릴 수 있다는 것도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그렇게 뒤집혀진 일이 바른 방향으로 진행되어져 가는 속도 또한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겠다고 마음먹고 움직이시기 시작하면 언제든지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이 설쳐 댈 때, 그저 무기력하게 보고만 계신 것 같지만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시면 그 악인들의 계획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어 버리시고 또 그 악인이 정신차릴 수 없게 상황을 몰아 가십니다. 그렇게 악인에게 벌을 주시고 나머지 일들을 제 자리로 돌려놓으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악인들이 인류의 역사를 다 망쳐 놓을 듯이 설쳐 댔지만 결국 흔적도 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버렸고, 역사는 다시 잠잠케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이 세상이 유지되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무대의 장면은 그 이튿날 에스더가 열었던 두번째 잔치 자리로 바뀝니다.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전날과 똑같습니다. 에스더, 왕 그리고 하만. 전날처럼 이렇게 세 사람만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전날과 완전히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만의 표정입니다. 그의 얼굴에서 전날의 기고만장함이나 자신만만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누군가가 웃고 있어도 웃고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했지만 하만의 표정이 딱 그랬을 것입니다. 왕 앞이라 웃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도대체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까하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그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니까요. 하만이 그렇든 말든 잔치 분위기는 무르익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왕은 또다시 에스더에게 묻습니다. “왕후 에스더여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테니까 무엇이든 다 말해 보라.” 하만 또한 에스더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뜸 들이고 말하지 않은 소원이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에스더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그래서 두 사람 모두 분명하게 알아듣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소원이 자기 생명과 자기 동족들의 생명을 자기에게 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왕에게 에스더는 계속 말합니다.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과 진멸을 당하게 생겼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노예로 팔렸더라면 오히려 저는 가만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그래도 잠자코 있어서 저의 동족들이 다 죽게 되었더라면 그것이 왕께는 큰 손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왕은 들으면서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말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런 일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사실 이쯤되면 왕은 이 이야기를 알아 들었어야 했습니다. 하만이 이전에 자기에게 유다백성을 몰살시키는 계획의 허락을 받았던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왕은 에스더의 이야기를 그 일과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그런 일들에 대해서 무관심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에 대해서 왕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무심하고 무감각한 지도자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런 지도자들이 세워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또 세워진 지도자들이 그런 길을 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왕은 에스더에게 물었습니다. “감히 누가 이런 계획을 세웠느냐? 그가 어디있느냐?” 하만이 오고 가는 이야기를 알아 들었을까요? 아마도 반반쯤이었을 것입니다. 그 일이 자기가 추진하고 있는 일과 비슷하기는 한데, 자기가 왕후를 죽이려고 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때 에스더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번 대답은 그 동안 될 수 있는대로 조심스럽게 했던 말들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대답은 아주 짧고 명확했습니다.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입니다.” 지난 밤 그리고 이 날 아침,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고 조심성 없이 날뛰던 하만은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를 통해 마음먹고 날리신 카운터 펀치를 얻어 맞았습니다. 하만은 정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충격이 조금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에는 에스더가 아래서 위로 올려치는 펀치, 그러니까 어퍼컷을 날렸고 하만은 그 펀치도 아주 정통으로 얻어 맞았습니다. 에스더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노발대발했습니다.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씩씩거리며 후원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 동안 하만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뭐라도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얻어맞은 충격이 너무 커서, 살겠다고 한 일이 오히려 자기를 죽이는 일이 되고 맙니다. 에스더가 앉아 있는 걸상에 엎어져서 살려달라고 애걸을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세상에 이런 결례가 어디 있습니다. 여인의 다리, 그것도 왕후의 다리에 머리를 파묻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는 중에 열을 좀 식힌 왕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만이 왕후 에스더의 다리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왕은 하만이 하는 행동이 무슨 행동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상황이 그리 되었으니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이미 화가 날대로 난 왕에게 이미 미운털이 박힌 하만의 행동은 나쁘게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하만이 지금 내 앞에서 왕비를 욕보이려는 것이냐고 한 마디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날린 마지막 펀치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어퍼컷을 얻어맞고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하만에게 온 힘을 실어서 한 방 더 날리셨던 것입니다. 왕의 이야기를 들은 신하들은 하만의 얼굴을 싸서 왕궁에서 데리고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쳐다 보지도 못하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던 그 영광스러웠던 얼굴이 이제 세상에 드러내 놓고 다닐 수 조차 없는 수치스러운 얼굴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일을 지켜보던 내시인 하르보나가 카운트 다운에 들어갑니다. “왕이시여, 왕을 위해서 충성된 말로 모반을 고발했던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기 위해서 하만이 20미터나 높는 나무를 세웠는데, 그 나무가 지금 하만의 집 마당에 있나이다.” 성도 여러분, 악인의 최대 약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악인들은 적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도처에 적 뿐입니다. 자기를 챙기느라고 항상 남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사람들이 악인이고, 또 그것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악한 사람들조차도 다른 악인은 자기 적으로 삼습니다. 결국 그 모든 사람들이 적이 되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그리고 아직 힘이 있을 때는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악인의 힘이 빠지고 또 불리해지는 상황이 오면 그렇게 적으로 만들었던 사람들, 그의 악한 행동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돌아서서 그 악인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악인은 자신이 오랫동안 뿌렸던 악한 씨앗의 열매를 단번에 다 거둬들이게 됩니다. 악인의 말로가 마지막에는 정말로 비참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까 앞에서 말씀드린 그 집사님이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 분은 큰 부자는 아니지만 이런 저런 일에 투자하는 일을 하시는데요. 하나님께서 하시려고 하시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교훈을 배우고는 마음이 많이 너그러워 졌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는 사업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았고 그런 일은 누가 아무리 애원해도 냉정하게 거절했었는데, 올 한 해 동안은 분명히 손해가 된다고 생각되더라도 투자를 받는 사람의 필요가 절실하면, 그리고 그 액수가 많지 않은 경우에는 그저 준다는 심정으로 몇 번은 투자를 하기도 했는데, 그게 엉뚱한 곳에서 더 큰 것으로 돌아오더라고, 하나님이 움직여 가시는 인생은 여기서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거두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니까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더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가 지금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지 그래서 결국 어떤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인지를 심사숙고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신중하게 헤아리고, 선한 씨앗을 뿌리며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나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챙겨 주면서 때로는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선한 길을 따르려고 애쓰면서 그렇게 살려고 힘써야 합니다. 결국은 그 모든 것들은 열매가 되어 나에게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니 결국 좋은 씨앗을 심은 사람에게는 좋은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실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 반대의 열매를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의 삶이 아니면 하늘나라에서 우리에게 그 씨앗에서 열린 그 열매를 되돌려 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10,9,8,7… 카운트 다운이 이제 1까지 왔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왕이 간결하게 한 마디 합니다.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0!” 그리고 하만은 곧바로 자기가 세운 나무에 달렸습니다. “아웃!” 이렇게 해서 이 경기는 하나님의 완벽한 케이오승으로 끝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악한 사람, 자기 힘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한 악한 사람의 결국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내가 지켜보니 꼭 그렇지 만도 않더라고 말입니다. 악하게 사는 사람이 더 잘 살고,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더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런 일이 있기는 있습니다. 사회가 불의한 사회일수록 그런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우리가 더 잘 살고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또 그것이 진짜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히려 이런 악한 사람들의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성경에서도 분명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편 73편에서 아삽이라는 사람은 그런 일 때문에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던 경험을 시로 적어놓고 있는데요. 제가 잠깐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에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 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끌어 질 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이 그들에게는 없나니…” 정말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보며서 열받아 하는 것과 그 옛날 아삽이 보았던 것이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지 정말 놀랄 정도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불평과 의심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느 시대건 아삽과 같이 의롭게 살려고 힘썼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졌던 질문입니다. 아삽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갑니다.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성경이 말하는 악인의 모습은 얼마나 정확한가요? 예나 지금이나 어떻게 이렇게 변함이 없지요? 그래서 성경이 진리인 겁니다. 변하지 않고 언제나 정확하니 성경이 진리인 겁니다. 시대가 변했다고, 사는 게 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기록된 성경은 지금 상황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진리가 변하는 게 아닙니다. 변하는 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지 진리는 항상 그대로 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진리들은 그것이 확실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시험이 됩니다. 그것은 아삽도 마찬가지였죠. 그는 자기가 당했던 시험을 그대로 고백합니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아삽이 보니까 그렇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자기 인생과 신앙에 회의가 생깁니다. 게다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가려고 했던 자신의 삶은 정반대였습니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아삽은 이런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그 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차분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악인의 형통은 언제든지 미끌어질 수 있는 미끄러운 곳에서의 형통이었고 그래서 자신도 놀랄 정도로 갑작스럽게 패망한 악인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의 그들의 운명을 보니 그것은 전혀 부러워할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이것이 아삽이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악인과 악인의 형통은 하나님 앞에서는 실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꾸시는 일장춘몽같은 것이었습니다. 엄청나게 화려하고 대단해 보이지만 깨고나면 아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연기 같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런 이었습니다. 


아삽의 깨달음이 여기에 이르자 아삽은 자신이 마치 생각없고 어리석은 짐승같이 여겨져서 하나님께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 손을 붙드셨나이다” 아삽은 악인의 형통 때문에, 그리고 의롭게 살아가려는 자신의 어려움 때문에 혼란스러워 했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흔들렸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삽의 손을 붙들어 주셨고, 그래서 그는 악인이 가는 길로 가지 않았을 수 있었습니다. 아삽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였다는 것을 그 기도 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믿음이 회복되고 마음에는 감사가 밀려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말 아름다운 고백을 하면서 새롭게 결단합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아삽은 드디어 확실하게 깨닫습니다. 이 땅에서 악하게 살면서 형통하는 것이 복이 아니라 때로는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사는 것이 진짜 복이라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마음의 반석이 되어 주시고 영원한 분깃이 되어 주시는 것, 그리고 하늘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는 것이 진짜 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볼 때, 이 세상의 모든 악인들이 다 갑자기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삽이 말했던 것처럼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부유하게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악인이 정말로 복된 삶을 사는 것일까요? 만약 이 세상에 영적인 복과 하나님 앞에서 잘 되는 복이 없고,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전부라면 하만의 삶이 보여주는 진리, 그리고 아삽이 깨달은 진리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복과 하나님 앞에서 누리게 될 영광이 진짜로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복이라면 아삽의 진리는 우리 길의 빛과 우리 발의 등불이 되어 주기에 충분합니다. 


악인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자기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악인은 자기 인생과 세상을 바라볼 때,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볼 뿐, 거기에 하나님이라는 결정적인 변수를 집어넣어 계산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이 되고 결국 악인에게 어울리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이란, 참 신앙인이란 사실 별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항상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고, 이 세상과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이라는 결정적인 변수를 집어넣어서 계산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것이 1+1이 항상 1이 되는 것이 아니라 100도 될 수 있고 1000도 될 수 있지만, 반대로 1000+1000이 0도 될 수 있고, -100,000 그리고 -1,000,000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변수가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가 되게 할까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변수는 아닙니다. 그 분은 분명히 의인의 편을 드는 분이십니다. 결국 의인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플러스가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때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 보면 악인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 때문에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그 함정에 빠져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하기도 하죠. 그러나 우리가 아삽과 같은 시험과 회의에 빠질 때,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그렇게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영원한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인이 누리는 복은 절대로 사람이 누려야 할 진짜 복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인생에 손을 대기 시작하시면 그 사람의 인생은 하만의 인생처럼 일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결정적인 변수를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서 마이너스 역할을 하실 때에는 속수무책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의인의 인생은 하나님이 편 들어 주십니다. 당장 보기에는 힘만들고 또 별 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인생은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인생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편들어 주십니다. 결국에는 어마어마한 플러스, 영원한 플러스가 되어 주십니다. 


특히 우리 젊은 청년들과 우리 중고등부 지체들에게 권면합니다. 이것은 젊었을 때부터 분명히 해 놓을수록 여러분에게 유익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분명히 믿지요? 그렇다면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은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 같고,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처럼 보여도 세상에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삶은 하나님이 보장해 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들의 삶에서는 진짜 플러스가 되어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장은 답답해 보이고 손해 보는 것처럼 생각되어도 여러분이 항상 하나님을 여러분의 인생에 집어 넣어서 여러분의 인생을 계산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거기에 익숙해 진다면, 그리고 그 답을 따라 살아간다면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이 더해주시는 삶, 많이 더해 주시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나 혹은 계획을 세워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변수이시니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플러스가 되게 하려면 과연 내가, 그리고 우리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그 길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진짜 의미이고 여러분의 인생을 가장 가치있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이 성품에 따라 움직이십니다. 때로 여러분에게 아삽의 고민과 회의가 찾아올 때면 하만을 떠올리고 그의 운명을 여러분의 인생을 위한 답으로 삼으십시오. 하만을 반면선생으로 삼아 하나님 앞에서 정말 지혜로운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더하기가 되어 주시는 삶을 살며 에스더의 잔치와 같은 복된 반전이 이어지는 복을 놓치지 않는 이 시대의 의인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은 의인의 편을 드시는 분이심으로 확신하게 하소서.
  2. 내가 하나님께서 편들어 주시는, 내 인생의 커다란 플러스가 되어 주시는 그런 삶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