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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5.01.04. 주일오전 - 예배하는 자는(2015년 첫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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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4장 13-24절




우리는 지금 2015년도 첫번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예배의 자리로 부르셨고 또 우리에게 예배드릴 수 있는 모든 환경과 여건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늘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면서 이 자리로 나아오지만 실은 이렇게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도 큰 은혜인 셈입니다. 결국 예배의 자리에 없으면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은혜는 기대할 수조차 없으니까요. 저는 ‘예배’라는 단어를 들으면 항상 제가 20대의 마지막 3년 동안 드렸던 예배와 그 예배를 통해서 경험했던 은혜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 경험은 저에게 과연 예배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예배가 어떨 수 있는지를 알려준 아주 소중한 스승이었습니다.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고 또 예배를 인도하는 지금도 저는 우리 교회에서 드려지는 모든 예배들이 그 때의 예배와 같은 예배가 되기를 소망하는 소망을 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가 예배에 대한 그런 경험을 했던 곳은 서울에 있는 사랑의 교회입니다. 그 때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옥한흠 목사님께서 그 교회를 섬기실 때였는데, 그 교회에 나가기 전에 저는 고등학고 2학년부터 스물 일곱 살 때까지 10년을 사랑의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른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니고 또 그 교회를 10년동안 다녔지만 저는 사실 예배가 정말로 어떤 것인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제가 매일 드리고 또 경험하는 그것이 예배의 전부이겠거니 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스물 일곱살 때 우연한 기회에 사랑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때 저는  참된 예배가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예배를 드리러 예배실로 들어가 앉을 때부터 함께 앉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지곤 했는데 그것은 정말 저에게는 너무나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마치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한 가족이 그 날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나러 온 것처럼 예배실 안은 따뜻함과 기쁨, 그리고 흥분이 감돌고 있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냥 모인 사람 모두가 한 가족으로 느껴졌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간 중간에는 웃음 소리며, 탄식 소리, 그리고 훌쩍 거리는 소리도 들려왔고, 믿음이 가득 담긴 아멘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예배실 안에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이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고, 예배를 통해 하늘의 영광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예배가 드려지는 동안에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예배가 끝나고 나도 사람들은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예배에 나온 분들은 개인적으로 여기 저기서 기도를 드렸고, 온 가족이 함께 예배에 참석한 분들은 모든 예배가 끝나고 나서도 그 자리에 앉아서 가족끼리 손을 잡고 그 날 주신 말씀과 은혜를 기도제목 삼아 간절히 기도드리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은 제가 처음 보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는 다른 어떤 교회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실 한 동안 화려한 이중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교회 예배가 끝나면 제가 원래 다니던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거기 청년부에 참석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제가 교회에 도착할 때면 거의 항상 그 교회의 예배가 끝나는 시간이어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성도들과 마주치곤 했는데, 그 때 저는 저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올 때, 함께 예배실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은 벅찬 기쁨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다니던 교회로 들어가다가 문득 발견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성도들의 얼굴은 거의가 다 무표정했습니다. 둘 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한 쪽은 얼굴은 무표정하고 걸음걸이는 무거웠지만 나머지 한 쪽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 차 있었고 발걸음은 경쾌하기만 했습니다. 같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나온 사람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어서 정말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사랑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처음 거의 6개월 동안은 예배실에 앉기만 하면 눈물이 흘렀습니다. 슬프고 죄스러워서가 아니라 너무 좋고 너무 기뻐서 말입니다. 그리고,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나면 그 때 들은 말씀의 능력과 은혜의 힘으로 일주일을 정말 신나게 믿음과 기쁨으로 살아 갈 수 있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한 예배가 나머지 일주일을 너끈히 책임져 주는 풍성하고 능력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때 알았습니다. 진짜 예배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참된 예배를 드릴 때, 그 일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며 또 예배의 은혜는 성도들을 얼마나 강력하게 붙들어 줄 수 있는지 말입니다. 이 때 제 마음에 그려진 예배의 그림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 코끝에는 그 때 그 예배당 안의 냄새까지도 생생합니다. 아마 이 모든 것들은 앞으로도 제 마음 속에 사진처럼 박혀 있을 것이고, 계속해서 참 예배의 꿈을 꾸게 해 줄 것입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사마리아는 남쪽 유대 땅과 북쪽 유대 땅 사이에 끼어 있는 땅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래서 위로 또 위에서 아래로 다니러 갈 때, 그 땅을 직접 통과해서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훨씬 먼 길을 빙 돌아 다녔습니다. 그 이유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포로기에 이방인들과 결혼해서 생겨난 혼혈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그들이 어기면 안되는 율법을 어겼다는 것이고 부정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처럼 취급하면서 상종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실 때, 다른 사람들처럼 먼 길을 돌아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사마리아를 통과해 가셨습니다. 물론 그것은 예수님에게는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악감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꼭 그렇게 하셔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을 마을로 보낸 후 예수님께서는 정오의 뙈약볕이 내리 쬐는 야곱의 우물 곁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마치 누군가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저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 계시기만 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사실 그 시각은 사람들이 우물로 오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대낮의 제일 강한 햇빛을 뚫고서 먼 길을 걸어와야 하는데, 당장 마실 물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례적으로 나타난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대뜸 ‘물을 좀 달라’고 말을 건네셨습니다. 여인은 너무 당황했습니다. 유대인 남자가 여인에게 그것도 사마리아인인 여인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물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한 예수님께서는 이야기를 한 번 마시면 다시는 목 마르지 않는 생수 이야기로 이어가셨고 여인은 그런 물이 있다면 자기에게도 달라고 했습니다. 무슨 마법의 물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여인을 데리고 목적지를 향해 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 여인은 대답합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말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전에 다섯 번이나 남편을 갈아치우고 지금은 다른 여인의 남편인 한 남자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엄밀하게 말하면 남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고 하는 말이 맞다. 너는 이전에 다섯 번이나 남편을 바꾸었고 지금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지만 그 또한 네 남편은 아니다.” 


말 해 준 적도 없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예수님을 이 여인은 선지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여기 그리심산에서 지금까지 예배해 왔는데 유대인들은 예배는 예루살렘에서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맞는 것입니까?” 이것은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 간의 아주 오랜 논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진 이후 그들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서로 자신이 맞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특히 스스로도 정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사마리아인들에게 자신들이 그리심산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지만 아킬레스의 건처럼 신앙적으로 볼 때는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올 것이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 그것은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는데 그 때가 곧 지금이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니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여인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인 동시에 진짜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시는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이 대화 끝에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자신들이 기다리던 구세주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 들어가 자신이 구세주를 만났다고 전했습니다. 


얼마 전에 북아프리카 지역의 식수난에 대한 동영상 하나를 보았습니다. 물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가뭄도 계속됩니다. 그래서 아무데서나 물을 쉽게 구할 수가 없습니다. 물을 구하려면 푸석 푸석한 흙길을 몇 시간이나 걸어가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무거운 물통을 들고 물을 길으러 나섭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찾아가는 곳은 시원한 물이 솟아 오르는 우물이 아닙니다. 그저 더러운 물이 고여 있는 작은 물 웅덩이입니다. 그 웅덩이의 물을 길어 먹으면 병에 걸린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 물을 길어다 먹습니다. 거기 밖에는 달리 물을 구할 곳이 없고, 그 물로라도 마른 목을 축여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목마릅니다. 항상 목이 마릅니다. 그래서 물을 얻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도 나가지 않는 뜨거운 볕이 내려 쬐이는 한 낮에 물동이를 이고 우물가로 나가기도 하고, 처음 만나는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라도 물을 구해야 그나마 마른 목을 잠시라도 축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목이 말랐습니다. 너무 목이 말랐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다섯 번이나 남편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미 아내가 있는 다른 남자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갈증은 해결될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목이 말랐습니다. 오늘도 그 여인은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그 뙈약볕을 뚫고서 그 무거운 물동이를 들고서 거기까지 왔습니다. 다 갈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갈증을 예수님께 들켰습니다. 그 속깊은 갈증, 해결할 길 없는 갈증을 예수님께 들켰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돌렸습니다. 가장 거룩한 질문, 가장 신앙적인 질문, 그래서 자신의 치부를 가릴 수 있는 예배에 대한 질문으로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에 답해 주셨습니다. 예배는 어디서 드리느냐 하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지금까지는 그것이 중요했지만 앞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한다고, 지금이 그렇게 예배드려야 할 때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예배드리는 자녀들을 찾는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 끝에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 여인의 목마름은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평생 이고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목마름을 해결해 준 적이 없었던 그 물동이를 그냥 버려두고 성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부정한 여인이라고 욕하고 비웃는 그 사람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영원한 생수를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사람은 생수의 근원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목이 마릅니다. 목이 마르니 웅덩이를 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헛수고 입니다. 그 웅덩이는 결코 물을 가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생의 실체입니다. 목이 마르고, 그래서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애쓰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는 것 말입니다. 여인도 목이 말랐습니다. 그래서 웅덩이를 팠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더 많이 팠습니다. 여인이 선택한 웅덩이는 바로 남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였습니다. 파고 또 파도 힘만 드는 그런 웅덩이, 그러면서도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없는 그런 웅덩이 말입니다. 모든 인생이 이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목이 마릅니다. 그래서 그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특별한 웅덩이를 선택하고 열심히 그 웅덩이를 파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그 웅덩이는 그가 버리고 떠나온 샘 근원이 아닙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말라 버릴 수 밖에 없고, 또 계속해서 물을 가두어 둘 수 없는 터진 웅덩이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길은 샘 근원으로 되돌아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파고 있는 돈이나 명예, 성공이나 안락함의 웅덩이보다 못하다고 생각했기에 버리고 떠났던 그 샘근원으로 되돌아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은 그 샘근원으로 돌아갈 때까지 속깊은 영혼의 갈증은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샘 근원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거기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길어 먹을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은 예배에 있습니다. 물론 오늘 우리가 드리는 주일예배처럼 시간을 정하고 절차를 정해서 드리는 예배가 예배의 전부가 아닙니다만 그래도 인생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그 목마름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만큼은 너무도 확실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것을 통해 참된 만족과 평안을 얻으려고 애쓰며 살아갑니다. 그런 노력들 자체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노력들 중의 절대다수는 열매 없는 노력으로 끝나 버리고 맙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로 그런 노력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 중에서 우리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하고 고귀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숨쉬고 있습니다. 우리들 안에는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취향, 하나님의 욕구가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사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만 기뻐할 수 있고,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것으로만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일시적인 것으로는 도저히 만족을 느끼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것에서만 만족을 느끼십니다. 하나님을 닮은 우리 안에도 영원한 것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영원한 것으로만 만족시킬 수 있는 그런 엄청난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만이 영원하실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진짜 만족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배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는 그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만나며 또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항상 일시적인 것들에만 둘러싸여 살아가다가 영원하신 분에게 집중하고 다시 그 분을 그 분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시간, 그 영원하신 분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는 그 시간이 바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기 때문에 성도의 삶에 있어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은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인이 예수님께서 들려 주신 예배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 참된 예배의 대상이신 구세주를 발견한 후에야 비로소 물동이를 버릴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제서야 그가 진실로 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예배는 절대로 그저 그런 일이 아닙니다. 일년이면 최소한 52번, 십년이면 520번, 30년이면 1560번이라는 주일예배가 반복되지만 그래서 이 예배가 가치 없고 무의미한 형식적인 예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한 번 한 번의 예배가 다 우리의 신앙과 삶을 채워주시고 힘주시기 위해서, 또 우리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 준비해 놓으신 우리를 위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에 윌리엄 윌버포스라는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평생을 영국 노예해방을 위해서 헌신하셨고, 결국 그 일을 이루어내신 분이신데요. 그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의 주일은 모든 것이 제 크기를 찾는 날이다. 사람들과 섞에서 세상에서 살다가 보면 이 세상은 거대한 바위처럼 커지고 나는 흔적도 없이 작아지지만 주일날 예배를 드리면 세상은 자기의 원래 크기로 되돌아 가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크기로 되돌아 가신다.”라고 말입니다. 그는 바로 주일을 주일답게 지켜냄으로서, 그 날 참된 예배자가 됨으로써 노예해방이라는 위대한 일을 이루어 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도로 사는 능력, 만족과 기쁨 속에 살 수 있는 능력, 죄와 싸우고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일의 시작과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드려지는 이 예배에 달려 있습니다. 


올해도 여러가지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세우셨겠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올해에는 참 예배자로 서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무엇에 성공하기 전에 성공적인 예배자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장담합니다. 여러분이 예배자로 성공하게 될 때, 여러분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영광과 만족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한 번의 예배가 가져다 주는 능력으로 한 주를 너끈히 살고 더 살 수 있는 기적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그 예배를 중심으로 여러분의 모든 삶이 질서 잡히며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배자를 찾으시고 그런 예배자에게는 특별한 은혜 주시기 때문입니다. 올 2015년도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예배자가 되어 참된 예배자에게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미 보셔서 아시겠지만 올해 우리 교회의 가장 큰 목표는 우리 모두가 참 예배자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앞을 보시고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된 예배 / 풍성한 삶 / 하나님께 영광” 다시 한 번 이요. “참된 예배 / 풍성한 삶 / 하나님께 영광” 이제 이 쪽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올 한 해 동안 예배를 예배답게 드리기 위해서 꼭 실천했으면 하는 것 세 가지를 적어 놓았는데요. 


첫째, 우리는 준비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위한 준비가 있는 경우와 준비가 없는 경우에는 그 은혜와 영광이 확실히 다릅니다. 우선 주일은 토요일 밤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토요일날 너무 늦게 잠자리에 들거나 너무 과격한 오락은 삼가해 주시고, 다음 날 예배를 통해 주실 교훈과 은혜를 기대하면 짧게라도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전날 너무 늦게 잠자리에 들거나 과격한 오락을 즐기면 몸이 너무 피곤하거나 정신이 너무 흐트러져서 다음 날 예배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지게 됩니다. 그러면 예배의 참된 은혜도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쉽지 않으시더라도 주일을 토요일부터 준비하셔서 주일날 예배 만큼은 맑은 정신으로, 그리고 최대한 좋은 몸 상태에서 드리시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 부탁드립니다. 예배시작 적어도 5분이나 10분전부터는 옆에 계신 분들과의 정상회담을 멈추시고 예배드리는 여러분의 영혼과 주실 은혜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시다가 예배에 임해 주시기를 꼭 부탁드립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우리의 믿음을 더해야 합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먹이시고 건강하게 하시기 위해서 주시는 하늘의 성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영혼에 설교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이 담기지 않으면 영혼은 굶주리고 병들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들으면서 거기 믿음을 더해야 비로소 삶 속에서 실제로 사용가능한 능력으로 변하게 됩니다. 설교라는 것은 참 신기한 점이 있습니다. 똑같은 설교를 듣는데도 듣는 사람들 각자가 자기에게 필요한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게 바로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지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전혀 상관없는 말씀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한 번 한 번의 설교를 무시하지 마시고 거기 여러분의 마음을 기울이십시오. 거기서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를 넉넉히 살아낼 능력이 나온다고 믿으면서 말씀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면 한 주간 살면서 그것이 분명히 여러분을 위한 능력이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세째, 예배를 드리러 오실 때 그 날 예배를 통해 주실 은혜에 대해서 기대를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열린 마음과 열린 생각으로 오십시오. 하나님께서 오늘도 은혜와 진리로 나를 가득 채워주실 것이라고 믿고 기대하면서 예배의 자리로 오십시오. 그 은혜가 다가오는 한 주를 든든하게 붙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 중에서 그런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올해에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꼭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런 예배자가 되고 우리 광현교회는 그런 예배자들이 모인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참 예배가 얼마나 능력있고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맛보아 아는 놀라운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 이제 제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온전한 예배자로 서겠습니다. 
  2. 준비하는 예배자, 말씀에 믿음을 더하는 예배자, 주실 은혜를 기대하고 예배드리는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예배의 참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