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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1.14. 새해특별새벽기도회 8.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특새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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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13장 53-58절




우리가 무언가에 익숙해 지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고 아주 유익한 일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걷는 일에도 익숙해지고, 밥을 먹는 일에도 익숙해 지고, 옷을 입는 일에도 익숙해 져야 합니다. 조금 자라면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익숙해 져야 하고, 말하는 일에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에 대해서 익숙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을 통해서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무언가에 익숙해져 간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큰 유익이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실 그렇게 하나 하나 우리가 새롭게 만나는 것들에 대해서 익숙해져 감에 따라서 그런 일들이 주는 경이로움과 아직도 더 남아있는 풍성함들을 놓치게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을 ‘익숙함의 저주’라고 부르는데요. 특히 이 익숙함의 저주는 영적인 영역에서 우리에게 큰 손해를 끼치곤 합니다. 그 익숙함이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을 흐려지게 만들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서 계속해서 주시는 새로운 은혜들을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고향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고향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회당은 예수님에게 굉장히 익숙한 곳입니다. 어려서 부터 아버지 요셉과 함께 매 안식일마다 왔던 곳이고 또 예수님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곳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아마도 그 어느 곳에서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그 날 회당에 모여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은 모두들 너무 너무 놀랐습니다. 그 가르침이 너무나 탁월하고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권능이 어디서 났느냐?” 그러나 이 놀라움은 순수한 놀라움이라기 보다는 빈정거림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이 아는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입니다. 어려서 부터 자라나는 것을 익히 보아온 아이였습니다.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형제들, 그러니까 야고보, 요셉, 시몬, 그리고 유다는 지금도 자기들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여동생들은 다 자기가 아는 사람들의 아내가 되어서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특별한 것도 없이, 그리고 어떻게 보면 자기들보다 훨씬 못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도 예수님의 가족들도 너무 너무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익숙하다 못해서 아무런 기대도 가지게 해 주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서 생겨난 놀라움은 금새 의심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도무지 그 목수의 아들, 자신들과 같은 동네에서 주욱 자라났던 그 예수가 그렇게 지혜롭고 권위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니 그들로서는 들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의심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배척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다른 곳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동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그 동네 사람들은 그저 예수님의 탁월하고 권위있는 가르침에 놀라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움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곳에서는 그들의 순수한 놀라움에 응답하셔서 많은 이적들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편안함은 실망과 슬픔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사람들은 항상 그랬습니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어떤 사람이 나타나 똑같은 말을 하면 그 말을 존중하고 그 사람을 인정해 주어도 익숙한 사람,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그 사람을 무시하고 배척했습니다. 선지자는 자신의 고향동네에서는 존중도 대접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고향 동네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오래된 고질병이었고, 사실 모든 사람들이 앓고 있는 질병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58절을 잘 보아야 합니다. 58절은 그 결과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동네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익숙함은  결국 배척과 불신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록 그곳이 그 어느 동네보다 사랑하는 곳이었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지만 그 곳에서는 별다른 능력을 행하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으셨기 때문도 아니었고 또 그 능력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능력을 베풀고 싶어하셨지만 동네 사람들이 ‘익숙함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서는 별다른 일을 행하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도 그렇지만 우리가 교회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 중에서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도도, 예배도,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도, 심지어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일들도 모두가 다 늘상 익숙하게 해 오던 일들이고 이것은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간혹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하면 조금은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또한 얼마가 지나면 익숙해 지거나 아니면 그저 지나간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익숙함은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더 깊어지면, 똑같은 일들에 대한 차갑고 부정적인 편견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 것들이 아직도 무한정으로 남아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가로막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익숙함의 저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무언가에 익숙해 질 수 밖에 없고 익숙해 져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익숙해지는 일은 우리에게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익숙함의 저주만큼은 꼭 막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익숙함이 주는 유익은 누리면서도 그 부작용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휴대폰이나  혹은 컴퓨터를 쓰다보면 자꾸 문제가 생깁니다. 느려지고 얼어붙고 때로는 키보드도 먹통이 되고… 아주 불편해 집니다. 이럴 때, 기계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계속해서 기계를 켜 놓은 채로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보느라고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사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데도 계속 그렇게 합니다. 그러다가 어렵게 기계를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러 가면 대부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완전히 껐다가 다시 켜 보세요.” 그래서 완전히 껐다가 켜 봅니다. 어떻게 될까요? 대부분의 문제는 그렇게 완전히 껐다가 켜는 일로 해결됩니다. 사실 기계를 잘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그렇게 해서도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는 전문가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만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기계를 아예 껐다가 다시 켜는 일을 ‘리셋’이라고 부르는데요. 저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리셋이 반드시 필요하고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자주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미 수없이 반복해서 경험했고 그래서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일들을 실제로 처음으로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익숙해진 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그 일을 향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리셋하는 것입니다. 또 다시 하게 되는 일, 그 일은 이전에도 수없이 했던 일일 것입니다.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똑같은 일이라고 항상 같은 결과만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도, 성경을 읽는 일도,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일도 혹은 항상 만나던 어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열매를 맺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을 통해서 일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은 날마다 새롭게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같은 일을 하거나 혹은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껐다가 다시 켜야 합니다. 그래야 날마다 반복되는 일 속에서도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누리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방법은 의도적으로 우리 마음과 생각을 똑같은 일을 향해서 새롭게 여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마치 그 일을 처음 대하는 사람처럼 어색하게, 그렇지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그 일을 하고 또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이미 익숙해져 있는 것들이 만들어 놓는 은혜와 놀라운 일을 가로 막는 장벽을 허물려면 그 방법 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는 새로운 일들이 아니라 익숙해져 있는 일들을 통해서 옵니다. 예수님의 고향마을에서 목수의 아들 속에서 메시야를 볼 수 있었는 사람들만이 예수님께서 가져다 주시는 구원을 얻고 또 놀라운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날마다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일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를 발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기대할 것 없어 보이는 일들을 통해서도 날마다 더욱 더 풍성해져 가는 영혼을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기도제목을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굳어져 있고 고정되어 있는 마음과 생각을 부드럽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익숙해져 있고 그래서 기대없이 대하는 모든 일들을 어색하게 대할 수 있는  초심을 주셔서 날마다 새롭게 공급해 주시는 은혜 속에 살게 해 달라고, 그렇게 익숙함이 주는 유익은 누리면서도 익숙함의 저주는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하셔서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일들, 신앙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들이 올 한 해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고 또 새로운 은혜를 전달하는 하나님의 선물들로 사용되는 도구가 되게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