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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4.15.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신명기 22-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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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4월 15일 수요일




요즘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신명기는 왕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법입니다. 그런데, 제가 항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을 살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에도 신명기를 살피면서 계속해서 마음에 들어오는 느낌은 “참 다르구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특별한 헌신을 드릴 때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실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그 방식들이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신을 섬길 때, 그리고 살아갈 때 지켜야 하는 법과 다른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는 전혀 하나님에 대해서 지켜야 할 법과 사람들에 대해서 지켜야 할 법이 구분이 없다는 점에서도 다른 나라의 법들과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율법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의무와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의무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마구 섞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인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형태의 법을 주신데에는 것은 아주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는 성과 속을 구분합니다. 그리고 성스러운 영역에 속한 것들에 대한 태도와 속되다고 생각되는 영역에 속한 것들에 대한 태도를 구분합니다. 그래서 성스러운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대할 때는 특별한 태도로 대할 것을 요구하지만 속된 영역에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거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사고방식과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생각을 살펴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우리는 자꾸 자신의 삶을 거룩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누려고 합니다. 그래서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그래도 스스로를 구별하려고 하고 조심하려고 하지만 그 반대의 부분에서는 별로 그렇게 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통해서 그 두 가지를 다시 하나로 만드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종교적인 행위나 신앙적인 행위를 할 때, 어떤 태도로 해야 한다는 원리와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 사람의 일상생활에도 적용되는 원리와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과 다른 신을 섬기는 신앙의 근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차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안에는 성과 속의 구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서는 스스로를 구별하여 거룩하게 행동하고 살아야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그런 가르침이 우리 신앙 안에는 없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적어도 구약성경에서는 그런 구분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가 대하고 있는 대상이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냐 아니면 우리와 동등한 피조물인 인간이나 혹은 그보다 못한 다른 피조물이냐 하는 데서 생겨나는 차이이지 본질적인 차이는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형제들이나 다른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의 다른 피조물들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또 대우해 드리고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한 또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생활은  신앙의 연장이 되는 것입니다. 


22장 처음에는 아주 재미있는 몇 가지 규정이 나옵니다. 형제들, 그러니까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유물을 습득하거든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되며 반드시 주인을 찾아 주어야 한다. 형제의 짐승이 넘어졌을 때, 반드시 도와서 함께 일으켜 세워주어야 한다. 새는 잡을 때, 어미새 함께 새끼새나 알을 취하지 말고 어미새는 반드시 놓아주어야 한다. 집을 지을 때는 반드시 옥상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져 다치거나 죽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이런 법들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나 혹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어울려 살아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율법입니다. 이런 법들은 사람이 인간 공동체 속에서, 그리고 자연 속에서 그 일부로 조화롭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율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율법들이 두 가지를 바꾸거나 섞으면 안된다는 다른 규정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다른 이방민족들과는 달리 매사에 순결과 순수함을 지켜야 한다는 규정들과 번갈아 가면서 뒤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남녀 관계에 있어서의 순결함과 관련된 문제들을 처리하는 방법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공동체 전체의 거룩함과 전쟁을 할 때 군대의 진영의 거룩함을 유지하는 방법들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런 방법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순결함과 순수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리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는 어떤 모양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규정한 율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만 잘 섬긴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만드신 모든 것 안에서 그것들과 함께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자신의 순결함과 거룩함을 잘 지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참 신앙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앙의 영역과 삶의 영역을 따로 나누지 않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하나가 되지 않고 분리되기 시작할 때, 두 가지 모두가 다 위선적인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모습은 우리에게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여전히 천 만 명을 넘는 숫자와 어마 어마한 교회의 숫자, 그리고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기독교를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일원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교회의 영향력은 정말 미미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우리 신앙의 능력을 거의 경험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가 신앙과 생활을 나눠놓고 생활 속에서는 신앙을 지키고 그 속에 신앙을 녹여 넣으려고 많이 노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앙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고 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갈 때 가능해 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의 주인이실 뿐 아니라 우리 삶의 주인이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은 신앙의 표현이기를 원하며, 또한 우리 신앙은 우리 삶을 이끌어 가는 원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만이 삶이 신앙을 세우고, 신앙이 삶을 세우게 하며, 우리들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는 신앙의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과 이방종교가 다른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차별을 두지 못하면 우리 신앙은 능력 없는 신앙이 될 수 밖에 없을 뿐아니라 결국 내용적으로도 이방신앙과 같아져 버리고 맙니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 신앙의 능력을 회복하고, 이 세상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영광스러운 역할을 하려면 다시 삶과 신앙을 하나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삶의 자리에서 그들과 어울려서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그 자리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성과 속의 구분이 없고, 이 두 가지가 온전히 섞여 있는 율법을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메세지이며, 특히 이 한국 땅에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모습은 사람들과 이 세상을 대하는 모습으로 이어져야 하며, 결국에는 하나가 되어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끊임 없이 그 두 가지를 하나로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능력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