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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7.02.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무엘하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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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 2015년 7월 2일 목요일




    사무엘 상이 사무엘의 탄생에서부터 사울의 죽음까지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면 사무엘 하는 이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다윗이 이스라엘을 하나의 나라로 세워갔던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책이 두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사무엘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것은 이 두 사람을 왕으로 세운 것이 바로 사무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왕은 사람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이라는 왕국의 초대왕이거나 혹은 최고로 위대한 왕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왕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두 책은 특별히 더 모든 역사 뒤에서 그 역사를 이끌어 가시고 섭리해 가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강하고 위대한 왕도 그저 한 시대를 살아갈 뿐입니다. 한 번 왔으면 가게 마련이고 또 한 번 왕위에 올랐으면 언젠가는 그 왕좌에서 내려오고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든 말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요. 우리는 어쩌면 내가 내 인생의 왕이 되어서 영원히 내 인생을 다스리고 싶어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살아 보면 그런 시도는 언제나 실패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비단 나이가 많아져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중간 중간 자신의 힘이 절정에 있다고 생각될 때도 인생이라는 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까요. 저는 인생이 허무하고 덧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의 역사가 그렇듯이 우리 인생사도 그렇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이 세상에 인간 자신이 주인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영원히 다스릴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빨리 이것을 인정하고 그 모든 것의 왕노릇 하는 자리에서 내려와 온전하고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께 그 자리를 내어 드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적하게 순종하며 물 흐르듯 하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삶을 가장 부드럽고 평안한 삶, 그리고 온전한 삶으로 만드는 방법이니까요. 


    다윗이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다시 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 다윗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은 아말렉 사람으로 사울과 블레셋 사이의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다윗에게 사울과 아들들의 전사 소식을 전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다 거짓말 하나를 보탰습니다. 사울의 죽음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는 사울의 부탁으로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사울이 자기를 죽여달라고 부탁해서 자기가 사울을 죽였고 이렇게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왔노라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던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원수를 죽인 장본인이 되고 싶어했던 것이었지요. 그러나, 다윗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다윗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시글락에 머물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반응도 그랬습니다. 모두가 옷을 찢고 슬퍼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사울이 자신들을 죽이겠다고 쫓아다닌 장본인이었지만 그래도 자기 조국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었으니까요. 결국 이 아말렉 사람은 이 일 때문에 졸지에 생명을 잃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왕이 되려고 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거짓으로 채우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스스로 자기 인생의 왕이 되려면 그렇게 할 때, 의지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게 되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욕심을 내고 그것을 취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시도들이 통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도가 통하지 않을 때는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기가 쉽습니다. 이 아말렉 용병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자신이 자기 왕 노릇하려는 시도는 자기 자신의 인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은 고통을 줍니다. 


     사울의 군 사령관인 아브넬은 남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러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의 왕위의 왕, 옥상옥이 될 수 있습니다. 아브넬은 그것을 노린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비극을 불러왔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둘로 쪼개졌고 그래서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 때문에 필요없는 동족 간의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2장 12절부터 32절까지의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이야기인데, 이제 하나님께서 새로 세우신 왕을 중심으로 정말 좋은 나라를 세워가야 할 사람들, 그리고 힘을 합쳐 블레셋과 싸워야 할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이것 또한 아브넬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욕심 반, 애국심 반으로 자기 멋대로 나라를 지켜 보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는 것을 알고도 말이지요. 나중의 일이지만 결국 아브넬은 이 난리 통에 자신이 죽인 아비새의 형인 요압에게 죽고 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야 어떤지 몰라도 우리는 항상 우리의 왕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이 세상, 교회, 그리고 우리 가정과 개인의 삶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신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중간에 하나님의 뜻대로 반대로 가게 되면 그 일의 쓴 열매들은 우리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따 먹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거기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온 세상을 책임질 수 없고, 또 실은 우리 자신의 삶도 온전히 책임질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내 삶에, 그리고 이 세상에 악한 씨앗을 뿌리는 일을 그만두고 선한 씨앗을 심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악인들이 뿌리는 악한 씨앗들이 더 많을지라도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뿌리는 좋은 씨앗, 선한 씨앗을 사용해서 악한 씨앗에서 맺혀진 악한 열매들이 망쳐놓은 것들을 새롭게 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아말렉 용병과 아브넬의 마음으로 움직여 갑니다. 그래서 그 방식을 따르지 않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왕되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