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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6.03.11. 금요기도회 - 하나님의 구원?(사도행전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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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23장 12-35절





제 삶을 이렇게 되돌아 보면, 여러분도 그러시겠지만 저의 신앙이나 혹은 삶을 새롭게 만들어 준 굵직 굵직한 계기들이 몇 번 있었는데요. 그 때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 어떤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 때마다 제 손에 우연찮게 들려진 책들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제 인생을 그렇게 이끌어 가시고 다듬어 가시기로 하시지 않았나 할 정도입니다. 가장 최근에, 그리고 저를 가장 극적으로 바꿔놓은 책은 바로 이 책, ‘장래의 은혜’라는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을 다시 믿게 되고 예수님을 진짜로 믿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책을 만난 것은 정말 너무나 우습고 싱겁습니다. 제가 지난 교회를 섬길 때입니다. 그 교회는 부교역자가 많아서 책을 읽거나 설교 준비를 하다가 괜히 심심하면 한 번씩 일어나서 어슬렁 어슬렁 다른 목사님을 참견하러 다니곤 했습니다. 그 날도 어슬렁 거리다가 그래도 평상시에 친하게 지내는 후배 목사의 책상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우연찮게 책상 위의 책꽂이를 보았습니다.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책이 두꺼웠습니다.  그리고 저자까지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분이었습니다.  책 제목은 ‘장래의 은혜’였습니다. 저는 사실 그 때 이 책 제목을 잘못 읽었습니다. ‘장래’ 그러니까 ‘미래’라는 단어를 ‘장례’라고 읽어서 성도의 죽음과 장례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관심이 갔습니다. 대형교회 부목사이니 장례식을 워낙 많이 인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막상 사 놓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손에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푹 빠져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 책을 무려 7번이나 영어로 된 원서까지 구해서 읽었습니다. 그 덕에 저는 신앙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알고 계시다 시피 저희 집안에 청천병력이 떨어졌습니다. 아이엠에프 통에 학교 졸업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큰 빚을 지고 이제 숨을 좀 돌리려던 상황에서 동생이 회사에 출근한 직후에 쓰러져 버린 것입니다. 처음 쓰러졌을 때는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너끈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책이 발견하게 해 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저를 든든히 버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저희 어머니도 위로하고 권면할 수 있었고, 그래서 저희 어머니도 몇 번이나 되는 낙심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2년쯤 지나서 제가 우리 교회에 부임하게 된 것인데요. 사실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그 과정이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그 섭리가 너무나 은혜로워서 기가 막혔던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중에 ‘당한’ 일들이 정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그 때 저는 벼랑 끝에서 뛰어 내려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 벼랑에서 뛰어 내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 책을 통해서 발견하고 연습한 믿음이 저를 그렇게 담대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공회에서 겨우 겨우 목숨을 건져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유대인들 중에서는 비밀 결사대가 생겨났습니다. 4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밥도 먹지 않겠다고 뜻을 모은 것입니다. 이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자신들의 계략을 알려주었습니다. 마치 그들이 바울에게 사정을 자세히 묻는 것처럼 해서 바울을 이리로 오게 하면, 오는 중간에 자신들이 처치해 버리겠다고 말입니다. 계획은 착착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이들이 매복해 있다는 이야기가 바울의 조카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그 계획이 비밀로 남아있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저자거리에서 돌고 돌다가 그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겠지요. 


바울의 조카는 곧바로 영내로 들어가 바울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바울은 백부장 한 사람에게 부탁하여 조카가 직접 그 계획을 알리게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천부장은, 바울의 조카에게 자신이 이 계획을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후에 바울에 대한 긴급 호송 작전을 세웁니다. 그는 백부장 두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은밀히 지시했습니다. 밤 9시까지 가이사랴로 보낼 보병 200명과 기병 70명, 창병 200명을 준비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아무리 살펴 보아도 바울이라는 사람은 죽을만한 죄는 커녕 묶어서 구금할만큼의 죄도 없고 기껏해 봐야 그들의 율법 문제인데, 유대인들이 이 사람을 고발해서 공회에 세웠고 또 암살하려는 음모까지 세웠다, 그래서 보호차원에서 당신에게로 보내니 양해를 바란다는 내용을 적은 편지와 함께 바울을 가이사랴의 총독인 벨릭스에게로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바울은 무사히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후의 그의 이야기를 더듬어 보면 지금 바울을 그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사선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정말 꼼짝 없이 죽을 뻔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연히 그의 조카가 거리에서 떠도는 바울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듣게 되어서 그 덕분에 또 한 번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가족사항에 대한 정보 하나를 얻습니다. 바울에게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아마 그 자매 또한 유월절과 오순절을 지키려고 아들과 함께 다소에서 예루살렘에 왔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예루살렘으로 시집을 와서 아들을 낳고 살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거리에서 자기 삼촌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듣고 알려서 바울을 살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보게 되는 장면이 참 재미있습니다. 천부장은 이 일을 굉장히 신경씁니다. 바울 하나를 호송하기 위해서 무려 470명이라는 숫자의 군사들을 동원합니다. 그것도 보병 뿐만이 아니라 기병과 창병까지 말입니다. 이 정도면 왕의 행차와 맞먹습니다. 게다가 이 호송계획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것도 밤에 진행시킵니다. 그 계획을 알게 된 그 날 밤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천부장은 이 일에 이렇게 호들갑을 떨고 있을까요? 그것은 자칫하다가는 이 모든 일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르고 그런 것이지만 그는 로마 시민인 바울을 마음대로 잡아다가 묶고 채찍질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놓아주었으면 괜찮았을텐데, 호기심인지 책임감인지 그 다음 날 아침 공회까지 소집했다가 바울을 그런 위기로 까지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런 바울이 암살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그것을 숨길 수는 없는 일이었고, 누군가가 문제 삼으면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바울을 철통같이 보호하면서 한 밤 중에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까지 동원해서 가이사랴로 보냈던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 우연찮게 동역자의 책상에 꽂혀있던 책 한 권, 그것도 제목을 잘못 읽어서 실수로 주문했고, 또 샀으니 읽게 되었던 그 책 덕분에 제 인생과 믿음이 어떻게 변했고 또 곧이어 닥친 어려움을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었는지를 말씀드렸는데요. 저는 아마 그 책 제목을 ‘장래의 은혜’라고 제대로 읽었으면 그 책을 사지도 않았고, 그러면 읽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 책이 장례식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분이 쓰신 책이니까 사고 또 읽었던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과연 제가 그 책을 발견하고, 그 책의 제목을 잘못 읽고, 또 그 책을 샀고, 산 다음에 에이 신경질 나 하고 꽂아두지 않고 그래도 곧바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던 그 일련의 모든 일들은 그저 우연이 또 다른 우연으로 이어진 그런 일들에 불과할까요? 그래서, 그 다음에 제가 그 책을 통해 얻게된 그 많은 유익과 능력들 또한 우연찮게 저를 찾아온 행운에 불과할까요? 


사도 바울의 경우, 그가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오해받아서 천부장에게 불법으로 묶이고 채찍에 맞을 뻔했던 것, 그리고 우연하게 바울의 암살소식을 들은 조카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이 두 가지 일 덕분에 거의 왕을 방불케 하는 경호 속에서 안전하게 가이사랴로 갔던 것,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다 우연이었을까요? 바울은 그저 그런 우연들이 맞아 떨어지고 또 맞아 떨어져서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우연이란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런데요, 정말 그렇습니까,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들에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까? 우연이 없다는 말은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전부다 필연적으로 일어나야만 했던 일들이었고,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나야만 하는 그런 일들이었다는 이야기는 그 모든 일 하나 하나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일어나게 하신 일들이라는 뜻인데, 우리는 정말 이 사실을 인정하고 믿을 수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우리의 삶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굳이 믿는 사람들의 인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똑같이 적용되는 그런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전체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전부가 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섭리 가운데서 움직여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일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중에 우연은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연은 없다’는 말을 사용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일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말하는 우연은 그야 말로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는 그저 일어난 일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연은 없다’고 말할 때는 이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 말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고 또 일어나게 내버려 두시는 일들 중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이 일어나게 하시는 일은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의지와 상관 없이 일어나는 일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일이 대표적인 일입니다. 우리의 실수나 불가항력의 사고도 재앙도 거기에 포함됩니다. 그런 일들은 우리의 죄성 때문에 우리가 선택하는 것들이고, 혹은 우리의 불완전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생겨나는 일들입니다. 또 그저 일어나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은 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요. 그러나, 이런 일들이 우리 삶에 일어날 수 밖에 없고, 또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꼭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들 중에서 하나님이 모르고 계시는 일이 없고, 바로 잡을 수 없는 일이 없으며, 또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는데 꼭 필요한 재료로 사용하실 수 없는 그런 일들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삶에서는 비록 그것이 우연히 일어났거나, 우리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우리 삶에 끼어들어온 일들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그렇게만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 우연도 믿는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우리 삶을 위한 필연이 되며, 우리의 실수 조차도 우리 삶을 빛나게 하는 하나님의 신의 한 수가 됩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능력이 충분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 삶이 최선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우연히 집어든 책, 잘못 주문한 책으로 제 믿음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제 믿음을 준비시키신 후에 저에게 그러지 않았다면 감당하지 못했을 어려움들을 주셨습니다. 사실 지금도 제 동생만 생각하면 한 숨이 나옵니다. 나으리라는 보장도, 일어나리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어쩔 수 없이 허리가 많이 아프신 팔순 넘은 노모에게 그 아이를 맡겨놓은 상태이니까요. 삶의 나머지 부분들을 보면 사실 편안한 구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넘어지고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저는 제가 결국 그렇게 될 것을 믿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무슨 근거로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제가 그 책을 통해 마음에 새기게된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은혜로운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말씀드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약속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는 약속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주셨기 때문에 제가 이 약속을 믿고 붙드는 한 저는 완전히 넘어지고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에게 그런 위험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네가 예루살렘에서 그런 것처럼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전해야 하리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주시고서 그 다음에 그런 어려움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분명히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 일이 어떻게 보이든지 간에 결국 그 과정 중에 일어나는 일들일 수 밖에 없고,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일들 때문에 더 수월하게 로마에 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약속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나에게만 주시는 특별한 약속이 없다고 해서 붙들 약속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든 말씀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이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설 그 날까지 모두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들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으로 이 약속을 붙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우연도 악연도 우리의 범죄와 실수 까지도, 불행과 어려움까지도 우리를 하나님 앞에 가장 영광스럽고 복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무기 삼아 싸우는 믿음의 싸움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그 약속을 붙들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이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 믿음 안에서 너끈이 이겨 낼 것입니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고, 실수와 범죄까지도 좋은 재료로 사용하시는 하나님,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 까지도 선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그 목적지까지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