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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6.03.20. 주일오전 -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에베소서 12)



20160320SM (#1).mp3.zip





설교본문 : 에베소서 1장 19-23절





제가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다가 보면 우리 정순화 집사님이 유민이에게 밥을 먹이는 장면을  항상 보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아이에게 밥을 먹는 일은 부모와의 관계 안에서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해 주는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아이는 엄마가 기를 쓰고 자기에게 밥을 먹이려고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다 그렇습니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엄마는 아이에게 밥을 꼭 먹어야 한다고, 얼르고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기도 하지요.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너는 밥도 못 먹어? 그렇게 못 났어? 그렇게 형편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밥을 먹는 일이 그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나는데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너희는 이것만큼은 꼭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에도 이유는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 그것도 몰라? 너 그것도 없어? 그래 가지고 성도라고 할 수 있었어?”라고 핀잔을 주기 위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진짜를,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시기는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자녀인 우리들이 그 은혜와 복을 누리기를 바라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내일 오전 5시에 대신동으로 오면 1억원 짜리 물건을 줄테니 꼭 와서 받으라고 말하는데,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면 우리는 기를 쓰고 거기로 나가지 않겠습니까? 그게 뭔지 몰라도 일단 오늘 저녁이라도 당장 가서 텐트라도 치고서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바로 그런 마음입니다. 성경이 그것에 대해서 절실한 만큼 우리도 그것을 향한 절실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 그리고 주실 때까지 구하고 찾는 열심과 열정을 회복하는 것,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자에게 그 선물을 주시려고 말이지요. 함께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는 동안,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엔가 우리 마음 속에 그런 관심과 열정을 회복시켜 주시고, 또 그 놀랍고 엄청난 은혜로 우리들을 가득 채워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이제 우리에게 성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주는 소망 속에 살아야 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것들을 미리 누리면서 살아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도 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요지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누릴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누리고 또 사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말씀이 너무 복잡해서 제가 제 나름대로 그래도 한국말답게 다듬어 보았습니다. 먼저 19절과 20절 말씀은 대략 이런 이야기가 됩니다. “나는 너희가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쏟아 부어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엄청난지를 알기를 원한다. 그 능력은 정말 어마어마 하다. 정말 헤아릴 길이 없다. 그 능력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그 능력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예수님을 하늘의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실 때 사용하신 능력이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우편에서 이 능력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정말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실 때 행하신 일들만 보아도 정말 대단합니다. 하나 하나가 놀랍기만한 열 가지의 재앙, 홍해를 가르신 일, 광야에서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단 한 끼도 굶기거나 목마르지 않게 하시고 고기와 가장 맛있는 만나로 먹이신 일, 심지어는 신발과 옷도 헤어지지 않게 해 주신 일,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신 것, 가나안 땅에서의 기적같은 승리들,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행하신 기적들. 그리고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들, 베드로와 바울의 이적들… 이런 황당해 보이는 이야기들 때문에 성경을 못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성경은 그만큼 놀라운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외치면서 말이지요.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과연 성경에 나오는 그렇게 많은 놀라운 일들 중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많이 사용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우리는 이 기적이 그렇다, 저 기적이 그렇다 각자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가장 큰 능력이 사용된 사건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실 때, 가장 큰 능력을 쏟아 부으셨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것이 우리 눈에 얼마나 대단해 보이든지 간에 다른 모든 기적들을 행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 중의 지극히 작은 부분만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실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가장 큰 능력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약성경을 읽다가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이 나오는 곳에서는 거의 항상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함께 나오는 것을 보게 되는 데 그 이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적어도 이 세상에 일어난 일들 중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사용된 능력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능력이 사용된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향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냐고 물으면 성경은 항상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일으키실 정도로 대단하다는 대답만을 들려 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실 때 사용하신 능력이 가장 큰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답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실 때 사용하신 능력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그 능력 그 이상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실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재료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역시 전혀 놀라시는 분들이 없는데요. 우리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해서 그렇지 하나님께서 무에서 부터 모든 것들을 만드셨다는 것은 정말 상상할 수 없을만큼 대단한 일입니다.


아마 성도 여러분도 알파고와 이세돌 9단 사이의 대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셨을텐데요. 이번에 알파고를 보면서 모든 사람들은 알파고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정말 대단한 것은 알파고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알파고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 알파고를 만들어 낸 것은 사람이니까요. 학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앞으로 몇 십년 안에 이런 저런 정보를 다루는 직업들 중에서 상당수가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 때문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직업들 중에서 대표적인 직업이 회계사, 기자, 증권투자 전문가 같은 소위 말하는 고급 전문직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무엇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무리 대단하고 해도, 인간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낸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있는 것들을 이것 저것 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이미 있는 것들을 찾아내거나 약간 변형시키고 발전시킬 뿐입니다. 정말 대단하고 놀라운 것들을 많이 만들어 낸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은 항상 거기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모든 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어둠에서 빛을 끌어내시고, 생명이 없는 곳에서 생명을 만드셨고, 혼돈 속에서 질서를 끌어 내셨으며, 그 모든 것들이 지금까지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우리가 우리의 생명 한가지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흙도 만드셨지만 그 생명 없는 흙으로 두 사람을 만드셨고, 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두 생명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또 태어났으며, 그 생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졌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지금까지 지구상에 태어나 살아간 사람들이 무려 1080억명이라고 하는데요. 놀랍게도 이 엄청난 숫자의 생명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단 두 개의 생명으로부터 나왔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생명’이고 그 생명 속에 담겨져 있었던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구상에는 정말 무수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종류의 생명들이, 우리가 이 세상에 생겨나고 살아온 똑같은 원리로 생겨나고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셨다고 말할 때, 그 짧은 한 마디 속에 담아 표현하고 있는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그 동안 태어났던 생명의 숫자와 똑같은 숫자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태어난 생명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모든 죽음 중에서 가장 무겁고 어두운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진 죽음이었습니다. 그 모든 죄의 어두움, 그 모든 죄의 무거움을 모두 짊어지고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 분의 죽음이 드리운 어둠의 무게 앞에서 태양도 빛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단지 있던 생명이 없어지는 죽음, 육신이 빈 그릇이 되어 버리는 그런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죽음은 천국과 지옥의 거리만큼이나 생명과 멀리 떨어져 있는 깊고 어두운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죽음 한 복판에서 예수님을 생명으로 끌어 올리셨습니다. 그것도 믿는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는 그런 생명으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온전한 생명을 주는 능력 있고 풍성한 생명으로 다시 불러 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활이라고 부르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위해서 처음 없는 것에서 모든 것을 만드시고 생명 없는 것들에게 생명을 주실 때 사용하셨던 그 능력 이상의 능력을 사용하셨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항상 부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큰 능력으로 예수님을 살리신 후에 그 예수님을 하나님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왜 하필 왼쪽이 아니라 오른 쪽일까요? 그곳이 바로 왕의 모든 힘과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 앉아서 그 왕의 나라를 대신 다스리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실 때 사용하신 모든 능력과 권세는 이제 모두 다 예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 앉으셔서 바로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가장 큰 능력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습이 어떻든지 그것 때문에 세상이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힘과 권력들이 있습니다. 오바마, 푸틴, 김정은, 아베, 그리고 또 어떤 분… 우리가 보기에 이 세상은 마치 이런 힘들의 손에 붙들려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곧 망해버릴 것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이 우리를 많이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지요.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아무리 크고 대단한 힘도 우리 예수님의 보좌가 드리운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그 사람들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우리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능력으로,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신 그 놀라운 능력으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우리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악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그들의 통치가 더 선한 통치가 되게 해 달라고, 그들이 바른 판단을 해서 사람들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믿는 우리는 너무 호들갑 떨 필요가 없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그 능력으로 이 세상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모든 악한 것들과 불완전한 것들과 죽음을 제거하시고 이 세상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으로 가득차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삶이 흔들린다고 느껴지실 때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고 주님의 능력 가운데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제 본문의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2절과 23절인데요.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질서 속에서 예수님이 어떤 위치에 계시고, 성도와 교회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만물의 질서가 있습니다. 머리 속에 땅을 밟고 서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 질서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땅을 밟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 사람의 맨 위쪽부터 아래쪽까지 훑어 본다고 생각해 보시면요. 가장 먼저, 맨 위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사람의 머리일 것입니다.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리면 거기에는 그 사람의 몸이 있겠지요. 그리고 나서 맨 아래로 내려오면 그 사람이 밟고 있는 땅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만물의 질서입니다.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이 그 머리입니다. 그러면 그 머리의 몸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들, 그러니까 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발 아래에 있는 땅은 모든 만물들을 포함한 이 세상입니다. 이 그림은 정말 놀라운 그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 안에 있을 때,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로 부름받고 또 역할을 하게 되는지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는 무엇입니까? 또 성도는 누구일까요? 왜 성경은 교회와 성도를 예수님의 몸과 지체라고 부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성도들을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신 것은 단지 예수 믿고 천국가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머리 되신 예수님의 몸과 지체가 되어서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을 세상에 전달하는 것, 머리의 충만함이 몸을 타고 흐르게 해서 그것이 이 세상 구석 구석까지 전달되게 하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서 몸된 교회에 속하게 된 이 은혜는 얼마나 엄청난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에게는 정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단순히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몸된 교회가 되고 또 그 교회의 지체가 되는 순간부터 예수님의 모든 생명과 능력이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우리 앞에 그 생명을 누리며 그 능력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길이 열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이 세상에 그것을 흘려보내는 일을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 예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그 능력이 전부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다(?)’ 사실 너무 엄청난 이야기여서 믿겨지지도 않고 실감도 잘 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말씀이 허황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이 힘이 빠져 있는 우리를 얼르고 달래기 위해서 그저 기록해 놓은 듣기 좋은 이야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저와 여러분, 교회가 새롭게 들어가 살게 된 새로운 현실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 덕분에 닫혀있던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렇게 열려진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맡기신 그 귀한 사명이 거두어 들여지지 않는 한, 열려진 하늘도 닫혀지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도 거기 있어서 우리가 그 능력을 충분히 사용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올해 표어는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중에서 가져 왔습니다. “하늘처럼 이곳에도 주님의 뜻 이루소서” 이것이 우리의 표어이자 올해 우리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이 표어로 우리에게 도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너희들은 정말 너희들이 기도하면 너희가 사는 그 땅 위에서도, 너희가 모여 있는 그 교회 안에서도 나의 뜻이 충만하게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믿느냐고, 그 믿음으로 이 기도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이지요. 사실 이 기도는 우리가 감히 드릴 수 없는 그런 기도입니다. 응답될 것을 함부로 기대할 수 없는 엄청난 기도제목이지요. 그렇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다시 살리실 때 사용하신 그 능력,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금 온 세상을 다스리시면서 사용하고 계시는 그 능력을 전부 다 우리에게 주셨고, 그 능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을 세상에 흘려 보내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충분이 이 기도를 드릴 수 있고, 또 기도가 응답될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고 진심과 기대를 더해 기도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이 땅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능력있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부활의 능력이 우리 안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죽음도 끝이 아니라는 것, 죽음도 끝이 되지 못하게 하는 능력,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실 때 사용하신 그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절기상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일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날 어떤 신분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지요? 왕입니다. 그 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 거리 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그 왕을 환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종려주일을 우리의 참되고 새로운 종려주일이 되게 한다면, 그 분을 우리의 참된 왕이요, 머리로 받아들여 우리 자신을 기꺼이 그 분의 몸이 되게 하여 그 분 밑에 놓는다면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 그리고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우리 안에 다시 흐르며 힘있게 역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능력이 우리를 풍성하게 하고 이 세상을 예수님의 능력과 생명으로 채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이것을 기대하십시다. 이 일을 소망하면서 사십시다. 그 소망이 아직은 저 멀리 손톱만하게 보이는 비구름보다도 더 작게 보여도, 그 구름이 큰 비가 되어 우리 삶과 온 세상을 적실 그 날을 기대하며 사십시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 능력을 믿는 믿음 안에서 평안하고 능력있게 살며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부활의 능력을 믿음으로 취할 수 있게 하소서.
  2. 지금도 우리 주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다스리심을 확신하며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