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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3.23.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막1120-12장 고난주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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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3월 23일 수요일




우리 마음은 강건해야 합니다. 또 우리 마음은 믿음으로 충만해야 하지요. 그렇지만 마음이 약해지고 믿음은 바닥을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태생이 마음이 모질지 못하고 근심과 걱정이 많은 저 같은 스타일의 사람들은 그런 변화를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자주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흔들리고 믿음이 약해지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정말 상한 갈대 같은 마음으로 마주 대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느 때보다 위로와 소망이 되고, 그것을 넘어서서 그렇지 않을 때에는 전혀 보여주지 않던 더 능력있고 참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무얼 하시나 했던 것 같습니다. 저주를 하셨는데도 나무는 그저 푸르르게만 서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다음 날 같은 길을 지날 때,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푸르르게 무성한 이파리를 자랑하며 서 있었던 무화과 나무가 바싹 말라 비틀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너무 놀라서 참지 못하고 그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요즘 저는 기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내 기도가 너무 성숙하지 못하고, 또 기도하는 시간도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아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읽은 말씀이어서 그런지 어제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이 말씀이 제 마음을 치고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 이 좋은 말씀이 왜 그렇게 아프게 들려왔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은 또 제 마음을 뜨겁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길을 새롭게 발견한 듯한 그런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제가 기도할 때, 여전히 부족하기만한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 주었고,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정말로 필요하다는 것을 보게 해 주었습니다. 


주님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산더러 바다에 빠지라고 해도 그대로 될 줄로 믿고 기도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누구에게나 산은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커다란 장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산은 어떤 눈에 보이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지만 자기 속에 있을 때가 더 많습니다. 도무지 움직일 수 없다고, 치워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 안에 있는 장애물, 그것이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있는 가장 큰 ‘산’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산’은 우리의 믿음을 약해지게 만들고 또 좌절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것들은 모두 다 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들만 그렇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저 자신의 능력과 신념을 믿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들도 충분히 산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나 부정적인 생각들이나 치워버리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니까요. 


우리의 믿음은 기도로 표현됩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기만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 여전히 온전치 못한 믿음으로 드리는 겸손하고 낮은 기도도 기뻐 받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렇지만 더 기뻐하시는 기도는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게 하고 또 그 기도를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기도를 드릴 때 믿음만큼 중요한 것이 또 한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기도가 응답을 불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응답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도를 하는 일에도 또 그 기도가 응답되는 일에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는 바로 그 관계를 망가뜨립니다. 그 관계가 더럽혀지고 더 멀어지게 만들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항상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용서 받으려면 남을 용서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과 죄를 용서하는 우리의 용서가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용서의 조건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주님의 이 말씀이 우리가 정말로 누군가를 용서하고 싶어하고 그것을 위해서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며 자기 안에 있는 미움이나 원망과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그럴 마음이 없는 사람들, 용서하려는 마음도 없고, 또 용서하기 위해서 기도하며 싸우지도 않는 그런 사람들, 그 미움과 정죄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불완전함이나 부족함은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니까요. 


그런데, 바로 이런 마음 자체가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처리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 그 죄를 단단하게 붙들고 있는 셈이 됩니다. 이런 마음은 회개하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그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어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못하게 가로 막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기도답지 못하게 만들고 또 응답되지 못하게 만드는 커다란 산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과 다른 사람들의 죄와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정죄하는 마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해 주시려고, 그리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십자가를 향해 가셨고, 그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목숨을 화목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믿지 못하는 마음과 싸워야 하며, 다른 이들을 용서해 주지 않으려는 우리 안의 미움이나 정죄와 싸워야 합니다. 


항상 더 깊고 단단한 믿음으로 나아가고, 더 열심히 용서의 싸움을 싸워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기도를 통해 우리 앞의 산을 옮기며 주님을 섬기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