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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3.26.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마가복음 1301-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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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3월 24일 목요일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으니까 우리와는 전혀 겹치는 모습이 없는 그런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사셨을 것 같이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고통도 없고, 힘도 들어하지 않으시고, 고민과 슬픔도 없이 이 세상을 살다 가셨을 것이라고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동시에 한 명의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항상 예수님이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더 크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때, 적잖이 당황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십자가를 지시는 시간이 가까이 다가 올 수록 더욱 더 분명해 졌고, 예수님께서 체포되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신 예수님의 모습 속에는 초조하고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적어도 기도를 시작하시기 전에, 그리고 기도하시는 동안에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제자들이 함께 깨어 있길 바라셨고, 또 자신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라셨습니다. 마지막 기도 장소로 갈 때,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야고보와 요한 두 사람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성경은 그 때 예수님께서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셨다’고 정직하게 예수님의 마음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두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라고 말씀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마음이 이렇게 까지 되고, 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잘 믿겨지지 않는 게 사실이지만, 성경은 분명히 그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얼마나 무겁게 생각하셨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외람되지만 마음이 짠 해졌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마음과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십자가는 예수님께 산 이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로 옮길 수 없고, 또 옮길 수도 없는 그런 거대한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단 한 분, 하나님께 그 산을 옮겨달라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가장 깊은 애정을 담아 간구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기도를 드리신 것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옮겨 주실 것을 기대하셨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실 것이며 또 그렇게 하지 못하실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 분의 나라를 위해서 말이지요. 그렇지만, 그래도 예수님의 심정과 고민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실 분은 아빠 아버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런 기도를 드리신 후에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또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날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 있는 그런 신뢰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고, 또한 두 분 사이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기도를 드리시는 예수님도 하나님이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그런 기도를 드리셨고, 또한 하나님도 그런 심정으로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셨을 테니까요. 하나님의 침묵은 그런 아픔과 슬픔, 그리고 안타까움을 모두 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온전한 기도이기도 했지만 가장 아프고 안타까운 기도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가 그런 기도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 덕분에 평안과 기쁨을 되찾으실 수 있으셨고, 십자가를 향해서 더 다가가실 수 있는 힘을 얻으실 수 있으셨습니다. 비록 앞으로 닥쳐올 상황이 바뀔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 고통과 불안을 넘어가실 수 있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완전히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생각하게 되고 또 그렇게 믿게 되면서 위로와 소망이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주님을 믿으면서 감당해야 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통들, 고민과 스트레스들은 그것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만들어 낸 생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고, 바울 사도도 누누히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당하는 고난이나 어려움이 우리 홀로 당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끝나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 어려움이 우리의 신앙과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면,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그 분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고난과 고통 속에는 이미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럴 때 예수님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미 완전한 한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 보셨기 때문에, 그런 고난의 아픔과 무게가 어떤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두렵게 하고 또 당황스럽게 하는지 너무나 잘 아시는 예수님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아픔, 우리의 슬픔… 그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할 때, 아빠 아버지 우리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평안과 확신 가운데 그 짐을 지고 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도 십자가는 정말 정말 지기 싫은 것이었고 또 지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민하고 죽게 되었다고 표현하실 정도로 무겁고 힘든 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도 우리 몫을 주신 십자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아마 그게 무엇이든 십자가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십자가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정직의 십자가, 오해의 십자가, 섬김의 십자가, 인내의 십자가, 손해의 십자가… 이런 십자가들을 피하고서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십자가들이 우리 앞을 막아서는 산이 될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그 기도가 우리의 위로가 되며, 확신이 되고, 능력과 담대함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앞에서 마음을 드러내놓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의 기도가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 주님처럼 겟세마네의 기도를 드리며 기꺼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와 기도 속으로 찾아오시는 아빠 아버지의 사랑과 함께 하심을 누리며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