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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6.03.31.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에스겔 28-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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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3월 31일 목요일





그냥 생각하기에는 사람이 가진 것이 많고 아는 것이 많고 그리고 힘도 세면 그만큼 부족한 것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너그럽고 여유있고 남에게 나를 알아달라고 자랑할 필요도 없는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다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남보다 조금 더 가졌다 싶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아는 것이 많다 싶으면 자기 주장이 강해지고 힘이 조금 있다 하면 그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물론 당사자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을 때가 있고, 그것이 더욱 더 안타깝지요. 


사람들이 좋은 것들을 가지게 될 때, 더 선해지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방향으로 가기가 더 쉬운 것은 인간이 그 안에 죄성을 지닌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성이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왕이 되고 싶어하는 욕심이고, 자기가 자기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그러니, 이런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힘이 세지면 세질수록 가진 것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리고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은 자신을 누구 밑에 놓기를 더 싫어하게 되고 심지어는 스스로를 하나님과 동급으로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는 두 나라가 나옵니다. 두로라는 나라와 애굽이라는 나라입니다. 이 두 나라는 아주 특별한 복을 받은 나라였습니다. 두로라는 나라는 해변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배를 만드는데 굉장히 뛰어난 기술을 가지게 되었고 그 배를 이용한 무역을 주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어마 어마한 부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는 그들의 힘과 화려함이 되었습니다. 애굽은 아마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에 나일강이라는 강을 주셔서 주변 나라들은 대부분 척박한 땅에서 양식이 부족한 상태로 살아야 했을 때, 오히려 남는 농산물들을 내다 팔고, 그것을 기반으로 엄청난 군사력을 키웠기 때문에 아주 오랜 세월을 그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먹을 것도 풍부한 나라로 지낼 수 있었구요. 


그런데, 이 두 나라는 바로 이러한 조건들 때문에 만군의 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눈 밖에 나게 되었습니다. 두로의 왕은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있다” 진짜 그러 말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두로 왕의 마음 속에 있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과 확신이었던 것 만큼은 확실합니다. 두로를 중심으로 수많은 배들이 오고 갑니다. 자기 나라에서 물건을 가지고 와서는 꼭 필요한 것을 얻어 갑니다. 그럴 때마다 엄청난 재물들이 쌓여갑니다. 마치 온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여 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자기 지혜와 지식이 하나님과 맞먹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애굽 왕 바로는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여기서 강은 나일강을 말하는데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집트의 모든 영광과 부의 원천이 되는 강이었습니다. 원래부터 이집트의 왕은 신입니다. 신처럼 숭배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자신은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강물 덕분에 살아가던 악어같은 존재인 그가 그 강을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그저 강 속에 들어앉아 있는 악어 한 마리에 불과한데 그 강 덕분에 힘이 세어지게 되자 오히려 그 강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우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로 왕과 애굽 왕의 이런 모습에 대해서 그것은 ‘교만’이라고 아주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만이 바로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은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운명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것이 이 두 나라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인간들이 똑같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참 겸손했습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고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없을 때는 정말 온화하고 친절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이 많아지고 자리가 높아지고 그래서 힘이 세집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같은 사람이 달라집니다. 거칠어지고 딱딱해 집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힘을 자기 뜻을 이루는데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갑자기 사람이 변한 것일까요? 겸손한 사람이 갑자기 교만해진 것일까요? 그런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원래부터 없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선천적으로 교만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변한 것은 환경과 조건입니다. 이전에는 교만할 꺼리가 없었습니다. 환경도 그렇고 위치도 그렇고 힘도 그렇고 교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교만할 꺼리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교만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 사람의 안타까움이 있다면 그렇게 자기 안에 숨겨져 있던 위험한 교만을 보지 못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로와 애굽을 닮은 사람들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항상 아닌 것 같지만 숨겨져 있는 우리 안의 교만을 잘 살피고, 끊임 없이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처리해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 그 어떤 것이든 내가 교만해 질 수 있는 꺼리를 얻으면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두로와 시돈이 간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것들 중에서 우리가 만든 것들은 단 하다 없습니다. 다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것들에 걸려 넘어져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오늘은 가만히 혹시 내가 가지게 된 전에 없던 것들 때문에, 그리고 남들에게는 없는 것들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교만한 자리로 가고 있지 않은지, 그리고 나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묵상해 보시고 내가 두로와 애굽처럼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들이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열매로만 이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