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6년 6월 13일 월요일
예전에 제가 어떤 사람에게 정말 말도 안되는 오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같으면 그 정도 오해를 그냥 넘어가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어렸었기 때문에 그 오해가 정말 큰 상처가 되고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많이 힘들어 하고 있는데 저를 알고 또 저를 오해했던 사람도 알고 있는 전도사님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그런 사람으로 볼 수 있지요?”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 전도사님이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자기가 그러니까 남도 그런 줄 아는 거니까 신경쓰지 마세요.”라고 말이지요.
사람은 그러면 안되는데, 무언가를 바라보고 평가할 때, 거의 자기 자신의 수준에서 바라보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떤 경우에는 그래도 괜찮을 때도 있지만,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신앙의 영역 안에서는 이런 일이 안됩니다. 그것은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아주 많이 오해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딱 자기 수준에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2장은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안식일에 밀밭에서 밀을 비벼 먹은 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일부러 안식일에 손이 마비된 사람을 앞에 놓고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귀신이 들려서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시니까 예수님이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의 힘으로 그렇게 한다고 모함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적을 한 번 보여 달라고 무례하 요구를 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다 예수님을 딱 자기 수준으로 생각하고 또 딱 자기 수준만큼 대우한 예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이렇게 그저 자기 수준에서, 자기 눈으로 보려는 일만큼 예수님께 큰 무례가 없고 자기 자신들에게 치명적인 일이 없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중간 중간에 자신에 대한 아주 중요한 말씀들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윗에 대한 말씀, 제사장들에 대한 말씀,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 요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솔로몬에 대한 이야기 등등이 모두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언뜻 보면 이 이야기들이 그저 예로 든 이야기들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다윗보다 나은 분입니다. 제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자신이 영원한 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 요나이셨구요.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던 하나님의 지혜 자체이기도 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시려고 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첫째,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거듭나지 않은 인간의 눈으로, 그냥 보이는 대로 보고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이것이 정말 중요한데,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저런 평가할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저 자신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믿음의 대상의 커녕 심각한 오해할 수 밖에 없고 혐오하거나 정죄할 수 밖에 없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참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12장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미 예수를 믿고 나서도 이런 비슷한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나 하고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물론 예수님 당시 사람들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비슷한 부분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예수님은 알아도 알아도 끝이 없는 분이시고,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사랑하게 되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는 수준은 어떻습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예수님을 아는 일이 더 이상 발전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정말 좋고 행복했는데 이제는 아무런 감정 없이 무덤덤합니다. 예수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은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누리는데 진전이 없습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얕아집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게 그저 그러려니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어찌보면 저는 이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것은 더 이상 예수 믿는 일에 대한, 예수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기대가 없고, 예수님께서 새로운 일을 행하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셔도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알아보지 못하고,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의 영혼이 무뎌져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내 생각 안에 묶어 놓아서는 안됩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은혜의 크기를 자신이 결정하려고 해서도 안되고, 또한 우리의 신앙의 모양과 수준을 스스로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신앙에 관한 한, 판단자나 평가자가 될 수 없으며 단지 믿고 순종하며 소망하는 사람으로 남아있어야 하고 그럴 때에만 우리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점점 더 깊게 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신앙적인 교만에 빠지지 않을 수 있구요.
항상 마음을 열고, 나 자신을 고집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또 신앙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더 제대로 그리고 더 풍성하게 주님을 알아가며 더 깊은 은혜를 알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